'최연소 보좌관 출신 젊은 정치전문가'
"21대 국회는 좀비국회, 맹목적 탐욕만"
"86의 기득권 사수와 셀럽 정치만 남아"
"세대교체 바탕으로 시대교체 이뤄야"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말해 큰 파장을 일으켰던 1995년 '베이징 발언'으로부터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과연 그 사이에 우리 정치는 4류에서 조금이라도 랭크가 올랐을까. '헌정사상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21대 국회의 모습을 보며, 일말의 기대마저 내려놓는다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과연 우리 정치, 우리 국회, 우리 정당은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해야 '4류 정치'를 청산하고 선진 정치로 나아갈 수 있을까. 데일리안은 '4류정치 청산'을 주제로 하는 연속 인터뷰를 통해 그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여덟 번째 순서로 이승환 전 대통령실 정무수석실 행정관을 만났다. 무급 국회 입법보조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 전 행정관은 정병국 국민의힘 전 의원의 보좌관을 거쳐 국회 최연소 보좌관으로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2021년 8월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가 국민의힘 입당을 선언한 뒤 곧바로 캠프에 영입됐고,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실 행정관에 임명됐다.
Q. 30대 후반이라는 나이에 비해 국회 보좌진 경력이 상당하다. 수년간 국회를 경험했는데 21대 국회는 어떠한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18대 국회부터 국회에서 일을 했는데 지금까지 동물국회 혹은 식물국회라는 평가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21대 국회는 '좀비국회'라고 표현하고 싶다. 좀비의 특징이 생명력이 없고, 목적성도 없고, 무엇보다 수치심이 없다. 지금 170여 석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은 생명력도 느껴지지 않고 목적성도 없는, 갈증과 탐욕에 의해 무언가를 쫓는 모습이다."
Q. 왜 국회가 그런 모습이 됐을까.
"21대 국회의원을 보면 교체율이 상당히 높았다. 그런데 초선 의원들을 보면 우리 국민의힘이나 민주당 모두 공통적으로 두 가지 문제가 보인다. 첫째는 정치인이 국가의 지도자가 돼야 하는데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이 많았다는 점이다. 자신의 언론 노출 빈도, 유튜브 계정 구독자 수, SNS 팔로워 수 같은 것에 집착하면서 지지자들의 갈채 속에서만 머물러 있으려 했던 것 아닌가 생각한다.
다른 부류는 직장인 같은 국회의원이다. 능동적으로 정치가 국가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쟁해야 하는 게 아니라, 수동적으로 당이 시키는 것만 열심히 하는 것이다. 시키는 것만 잘하면 대변인·원내부대표 하고 또 공천 받겠지 생각한다. 그저 조직 안에 수용돼 코스 밟듯이 나가는 모습들도 솔직히 많이 보였다."
Q. 그렇게 생각했던 구체적인 사례가 있었나. 이건 정말 '4류 정치다'라고 할 만한.
"올해 4월 말에 민주당이 민형배 무소속 의원을 복당시킨 일이다. 그분이 탈당을 한 이유는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다. 대선에서 지고 이재명 대표 방탄 목적의 검수완박 처리를 위해 무소속을 자처해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시켰다. 70년 동안 이어진 우리 형사사법체계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일을 안건조정위에서 불과 14분 만에 처리해버린 것이다.
이런 분을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가 퇴임 하루 전 비공개회의에서 특별 복당을 결정해버렸다. 이건 민주당의 수치일 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 역사에 남을 수치라고 생각한다. 국회의 입법 권한을 남발하고 국가의 법질서 체계를 유린한 전무후무한 사례다.
더 문제인 것은 민주당 내에서도 일부 비판이 있었지만 당은 전격적으로 복당을 결정하고 민 의원은 부끄러움도 없이 마치 개선장군처럼 들어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 어떠한 수치심도 느껴지지 않는다. 당에 충성하면 복당은 물론이고 공천까지 받는 전례가 생겨 제2, 제3의 민형배가 나올 것이다."
Q. 민주당을 꽤 오래 취재했는데, 비판은커녕 지지자들은 칭찬하고 그걸 또 부러워하는 의원들도 있어서 충격을 받았다. 국회의 입법 시스템과 합의 관례를 모두 무너뜨렸다는 데 대한 인식조차 없더라.
"소속 정당을 떠나 비판하고 부끄러워해야 하는 게 당연한데, 진영논리로 가버리니 그런 게 없다. 그래서 끝에는 노이즈 마케팅 마저 이용하려는 인플루언서처럼 귀결되는 행태가 반복되는 것이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교체 밖에는 답이 없다."
Q. 21대 국회는 역대 가장 초선이 많고 교체비율이 높았다. 그럼에도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를 받는데, 교체가 능사는 아니지 않나.
"맞다. 단순 교체나 물갈이를 목적으로 하는 세대교체는 의미가 없다. 따지고 보면 86 운동권 세대들도 세대교체를 외치면서 등장했지만 결국은 똑같이 됐다. 세대교체 자체는 목적이 될 수 없고, 세대교체를 바탕으로 시대교체를 이뤄야 한다.
올해가 문민정부 출범 30주년인데, 인간의 한 세대를 보통 30년으로 규정한다. 정치의 한 세대도 마찬가지다. 86세대는 김대중과 함께 등장해 노무현 때 성장하고 문재인 때 권력의 정점을 잡았다. 대한민국 민주화에 공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존중하지만 지금 86세대가 상징하는 가치는 기득권 사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22대 총선은 미래담론을 시작할 장을 마련하는 선거가 돼야 한다. 미래담론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고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교육·노동·연금 개혁과 같이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려 있는 담론에 대한 실질적 논의가 필요하고 절실한 시점이다."
Q. 국민의힘 최연소 보좌관으로 지내다가 윤석열 캠프 초기에 참여를 했다. 지금이야 대통령이 됐지만 당시로써는 상당한 모험이었는데.
"문재인 정권 5년도 힘들었는데 이재명 정권 5년을 만나게 될 수 있다는 절박감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2021년 8월에 보좌관을 그만두고 캠프에 참여한 뒤 대통령실 행정관으로서 봉급을 받기까지 11개월이 걸렸다. 가족을 설득하기도 힘들었다. 그만큼 국민의 열망이 간절했고, 10년 넘게 정치권에서 밥을 먹은 사람으로서 책임과 열망이 있었다."
Q. 왜 윤석열이었나. 국민의힘 내에 다른 유력 대선주자들도 많았는데.
"한국 정치사에서 이름 뒤에 '현상'이라는 단어가 붙는 경우가 많지 않다. 국민의 강한 열망이 한 명의 인물에 투영되는 것인데, 그 인물이 상징하는 모든 가치에 시대정신이 반영돼 있다고 생각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보여준 공정과 법치, 그리고 뚝심에 많은 국민이 감동하고 공감했고 저도 동참하고 싶었다."
Q. 김영삼 전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비정치인 출신 대통령이 나왔고, 앞으로도 이런 일은 없을 것 같다. 여의도 정치문법에 실망한 국민들의 열망도 반영된 것 같은데.
"유일무이한 단 한 번의 선거로 대통령이 된 처음이자 마지막 분이 될 거다.(웃음) 검찰총장에서 대선 출마, 제1야당 대선 후보, 당선까지 과정을 보면 드라마틱 하다. 중요한 것은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시류에 영향받지 않는 뚝심을 보여줬기 때문에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고 본다.
지금도 그러한 뚝심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노동개혁을 할 때 지지율 같은 정치적 요인을 배제하고 본질에 집중해 뚝심 있게 밀고 나가니 국민이 그동안 노동시장이 얼마나 비정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 않았나."
Q. 반일감정이라는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도 이뤄지는 것 같다.
"맞다. 외교도 마찬가지다. 미국·일본과의 관계 가 정상화 되어가는 것을 보며 그동안 우리 외교가 잘못됐다는 것을 국민이 알고 이제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단계다. 여의도 정치처럼 인기나 지지율을 생각하면 감히 추진이 어렵지만, 국가 미래를 위한 중요한 요소라는 믿음을 갖고 뚝심 있게 밀고 가니 성과가 나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Q. 인기영합주의는 나쁘지만, 국정동력을 위해서나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도 중요하지 않나.
"아쉬운 점은 있다. 우리가 닭백숙 같이 조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보양식을 먹으러 가면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에 도토리묵이나 파전 같은 밑반찬이 나온다. 허기진 배도 채우면서 메인 요리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인데, 그런 밑반찬 같은 정책들이 부족했던 것 같다.
다만 본질에 집중해 굵은 선으로 나아간 것이 이제 성과가 나오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노동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처음에는 사람들이 몰랐지만, 지금은 비정상의 정상화로 이해하고 있다. 교육개혁도 마찬가지다. 불합리하고 비상식적인 것들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보여줬고 이제는 준비 작업을 마치고 성과가 나올 타이밍이라고 본다."
Q. 그동안 실무진, 그리고 또 생활인으로 살다가 내년에는 '선수'로 출마를 준비 중이다. 어떠한 정치를 하고 싶은가.
"인생을 맛으로 표현하면 저는 쓴맛·똥맛·매운맛 보면서 살았다. 못 배워서 억울하고 돈 없어서 서러운 사람들을 정말 많이 봤다. 그럼에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거창하고 뜬구름 잡는 얘기일 수도 있는데, 모두가 공부하고 싶은 만큼 공부하고 일한 만큼 근로소득으로 먹고사는 나라를 만드는 거다."
Q. 국민의힘을 보면 각 분야에서 성공한 고스펙 인사들이 주로 공천을 받는다. 민주당에 비해 바닥부터 성장한 인물이 적다 보니 바닥 민심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 그러니 기득권인 민주당 86 정치인들이 국민의힘을 기득권이라 주장하는 것 아닌가.
"둘 다 기득권 맞다.(웃음) 차이가 있다면 국민의힘은 분야별·직능별 측면이 있다. 주로 각 분야 권위자나 성공한 분들을 공천해 국회의원으로 영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당은 정치적·사회적 기득권이다. 언론이든 기업이든 교육이든 86세대가 지금 사회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국회가 가장 심하다.
분명한 것은 정치는 정치전문가가 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는 고도화된 기술과 감각과 이해조정 능력, 문제해결 능력, 입법 프로세스, 조직관리까지 다 필요한 고도화된 영역이며 종합예술이다. 각 분야별 전문가들을 데려오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존재한다."
Q. 같은 맥락에서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나. 어느 집단이든 갈등은 존재한다. 갈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갈등 관리가 중요한 데 국민의힘이 실패한 부분이다.
"세대교체를 통한 시대교체가 22대 총선의 시대정신이라고 봤을 때 이준석의 역할은 분명히 있다. 다만 자신이 큰 역할을 할 때까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선을 지켜줬으면 좋겠다. 당대표를 역임한 인물다운 무게감을 보여준다면 그간의 갈등을 포함해 시간이 많은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Q. '세대교체를 바탕으로 한 시대교체', '86 운동권 청산'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나 비전이 있나.
"다음 총선의 성패를 가르는 곳은 다 알다시피 서울과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에서는 어려운 지역인데 승리를 하려면 바람이 불어야 한다. 바람은 서울 강남과 같이 우리 당 강세지역에서는 불지 않는다. 서울 서쪽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동북벨트가 상당히 중요하고 유심히 보고 있다.
서울 동북부에서는 강동을에 이재영 전 의원, 광진갑에 김병민 최고위원, 도봉갑에 김재섭 위원장, 노원에 이준석 전 대표, 중랑을에서 내가 각각 준비하고 있다. 공통점은 3040 세대에다가 지역 연고가 확실하며 정치권에서 트레이닝을 받았던 정치전문가라는 점이다.
또한 공교롭게도 상대가 박홍근 의원, 이해식 의원, 인재근 의원 등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고 재선·3선을 해서 지역의 피로감도 상당하다. 동북벨트에서 시대교체 상징성을 가져갈 수 있고, 바람이 분다면 경기도 남양주, 구리, 의정부 등 경기 동북부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Q. 일부를 제외하면 서울 지역 대부분이 험지가 됐고 정권은 가져왔음에도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대통령실을 나와서 중랑을에 간다고 했을 때 어렵기 때문에 모두가 말렸다. 그래도 정치에 낭만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가능성이나 표 계산을 하기 전에 이상을 제시하고 그 과정을 설계하려면 지역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서울 중랑을에서 출마를 결심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노자는 최선의 정치는 백성들이 군주가 있는 것은 알되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무위의 정치다. 후순위는 백성들이 지도자를 좋아하는 것이고, 그다음이 백성들이 지도자를 두려워하는 정치다. 최악은 백성이 지도자를 조롱하는 정치다.
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자기 지지층에게는 셀럽이 되길 바랐고, 반대 진영에는 공포감을 줬다. 또한 모든 것에 개입하는 최악의 통치를 보여줬다. 각료들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왜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아닌 법무부 장관들의 이름을 줄줄 외고 그들의 발언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문 전 대통령을 비롯해 각료들까지 그런 셀럽의 정치를 보여준 게 국회로 넘어가 정치인의 인플루언서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의 국회는 문제 해결은커녕 마치 훌리건과 훌리건이 싸우는 모습과 같다. 통치 측면에서 문 전 대통령은 최악이었고 그래서 정권 재창출도 실패해 조롱까지 받고 있지 않나. 그런 점을 정치권이 명심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