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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 어투에 발등 찍힌 홍준표


입력 2023.07.31 07:07 수정 2023.07.31 15:05        데스크 (desk@dailian.co.kr)

“그런다고 내가 기죽을 사람이냐”

징계 분위기에 반성·사과 모드로

자신은 사자, 중앙당은 하이에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2022년 3월 4일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에서 열린 유세에서 홍준표 의원과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나는 이 나라로부터 참으로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입니다. 사마귀보다 존재감이 없던 나를 대한민국 검사도 시켜 주고 국회의원, 당 대표, 도지사, 대통령 후보까지 시켜 주었습니다. 이제 나머지 내 인생은 내 나라가 부국강병한 나라가 되고, 선진강국이 되도록 진충보국(盡忠報國)하는 일만 남았습니다”(나무위키에 소개된 홍준표 저 『당랑의 꿈』 한 대목.)

“그런다고 내가 기죽을 사람이냐”

홍준표 대구광역시장이 이 같은 겸손과 결의로 공직을 수행해 왔을까? 언어는 제대로 고를 줄 아는 것 같은데 말투는 아주 다른 느낌을 줄 경우가 적지 않다. 그의 말에서는 겸손보다 교만이 더 자주 묻어 나온다. 남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 인색한 경우가 많다. 비틀기 비아냥거리기는 습관을 넘어 체질화된 인상이다. 그 때문에 보수정당 대통령 후보, 당 대표(2번)를 역임하고 대구광역시의 시장으로 있음에도 무게감이 정치경력에 많이 못 미쳐 보인다.


지난 15일, 특히 경북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호우 피해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그는 팔공cc에서 라운딩을 즐겼다. 주말에 개인생활을 하는 게 무슨 문제냐는 심정으로! 그 화려했던 정치경력은 떡 사 먹고 말았는지 모르겠다. 경북지역에 엄청난 수해가 났지만 “나는 대구시장이니까”라는 식으로 배짱을 부렸다. 1시간 만에 골프를 접었다지만 수해 걱정 때문이 아니라 비가 너무 쏟아져 라운딩 자체가 불가능해진 탓이었다.


다음 대선에 출마하고 싶어 하는 욕심의 크기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보다 절대 덜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라도 전국적 범위의 자연재해 국면에서는 국민 걱정부터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는 ‘폭우 골프’에 대해 그 흔한 ‘유감 표시’도 없이 되레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자들에게 호통을 쳤다.


“쓸데없이 트집 하나 잡았다고 그래 벌떼처럼 덤빈다. 그런다고 해서 내가 무슨 기죽고 잘못했다 그럴 사람입니까? 난 그런 처신한 적 없어요.”

“기자들 여러분이나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좀 질문하세요.”

“주말에 공무원들이 자유스럽게 개인 활동을 하는 겁니다.”

징계 분위기에 반성·사과 모드로

기고만장한 태도를 보이던 그는 당내 분위기가 징계 쪽으로 흐르자 18일 바로 반성과 사과 모드로 돌아섰다.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고 “수해로 상처 입은 국민과 당원 동지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국민 정서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점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라는 말도 했다. “아직도 국민정서법에 기대어 정치하는 것은 좀 그렇다”라고 하던 그가 이렇게까지 엎드리는 것을 골수 지지자들은 어떻게 봤을까?


그 선에서라도 멈췄으면 그나마 창피를 덜 당했을 텐데, 언제나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홍 시장은 다음날 페이스북에 ‘과하지욕(袴下之辱)’이라는 글을 올렸다. 곧 지우기는 했다지만 윤리위가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고 해서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이라는 한신(韓信)의 고사를 들먹인 것은 깃털처럼 가벼운 처신이었다. 자존자대(自尊自大)가 너무 과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당 지도부와 윤리위원회가 웅지를 품은 한신을 몰라보고 행패를 부린 동네 건달들이라는 건가?


26일 당 윤리위는 그에게 당원권 정지 10개월의 징계를 결정했다. 말을 조심하지 않은 점도 감안되었을 법하다. 하긴 그게 아니라도 전국적 자연재해 속에서 주요 광역시장이 우중 골프를 강행한 것만으로도 중징계는 불가피했을 것이다. 큰 정치인이라면 당의 결정을 겸허히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할 텐데, 홍 시장은 또 말을 참지 못했다.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앙앙불락(怏怏不樂)하는 심정을 그대로 표출했다.


“내 일찌기(일찍이) 정치판은 하이에나 떼들이 우글거리는 정글과 같다고 했다. 그것에서 살아 남을려면(남으려면) 사자가 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사자는 하이에나 떼들에게 물어 뜯겨도 절대 죽지 않는다. (중략) 나를 잡범 취급한 건 유감이다. 모두 힘을 합쳐도 어려운 판에 나까지 내치고도 총선이 괜찮을까? 황교안이 망한 것도 쫄보 정치를 했기 때문이다.(후략)”

자신은 사자, 중앙당은 하이에나

징계당하자 금방 태도를 바꿔 당 지도부와 윤리위를 하이에나 떼에 비유했다. ‘잡범 취급’에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왜 제명을 해주지 않았느냐는 항변으로 이해해도 된다는 뜻인가? ‘모두 힘을 합쳐도 어려운 판’인 줄을 알면서 버젓이 일탈 행동하고 궤변을 거듭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다. ‘쫄보 정치’를 면하려면 자신의 그 같은 안하무인 격 행태를 덮어줬어야 했다는 말인지도 알 수 없고…. 그러면 윤리위는 어떤 기구여야 하나? 사자 같이 큰 동물은 말고 가젤이나 임팔라같이 연약한 동물이나 물어뜯는 (눈치 보는) 하이에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홍 시장처럼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아무에게나 오만방자하게 굴면서 호통치기, 이죽거리기를 일삼는 정치인은 대통령 꿈을 접는 게 옳다. 젊은 검사 시절의 모습이 어떠했을지 능히 짐작게 하는 행태를 70 문턱에 이르러서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홍카콜라’에 매료된 과잉 충성의 팬덤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은 행여 갖지 않기를 바란다. 그건 문빠(골수 문재인 지지세력), 명빠(이재명 추종세력) 혹은 개딸 정치의 다른 이름이 될 뿐이다. 단언컨대 이런 무조건적 지지 세력에 의존하는 리더십으로는 미래를 준비할 수도 이끌 수도 없다. 말이 끄는 수레를 몰고 현대전에 뛰어드는 장수의 운명은 지켜보나 마나다. 이제라도 ‘독고다이’인지 ‘독불장군’인지의 골목대장 이미지를 벗고 겸허하게 국민을 섬기는 정치리더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미래형 정치언어와 리더십으로 재무장해야만 장래의 승리를 기약할 수 있는 것이다.


곧 죽어도 그렇게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라면 종전 모습으로 사시든가.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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