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시작하자
야당·시민단체 ITLOS에 등 제소 요구
총리 “양국 합의를 안 지키면 제소”
승소 여부는 전문가도 의견 엇갈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 오염수 해양 방류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가 지속하는 가운데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나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25일 ‘검찰독재·민생파탄·전쟁위기를 막기 위한 전국비상시국회의 추진위원회(전국비상시국회의)’는 ‘일본 정부는 핵 오염수 해양 투기를 즉각 중지하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정부에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 등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저지할 수 있는 실질적인 노력을 실행할 것을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같은 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 ▲런던협약·의정서 총회에서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중단 요구 ▲유엔 인권이사회 진정 등 국제법적 조처를 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이보다 앞선 18일에는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공동행동’과 야 4당은 187만여 명의 국민 서명을 대통령실에 전달하면서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를 주문한 바 있다.
독일에 있는 국제해양법재판소는 해양 분쟁을 다루는 국제사법기구다. 시작은 해양 영토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만든 기구인데, 국제연합(UN) 해양법에는 해양 환경보호 의무를 담고 있어 이번 오염수 방류 문제도 제소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의견이다.
정부도 제소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 4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국제원자력기구 검증 동향이나 일본 측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모든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조 장관은 “해양법 협약상 본안소송과 잠정조치는 같이 들어가야 한다”며 “잠정조치를 요청했을 때 저쪽(일본)의 방류를 오히려 더 정당화해 줄 수 있는 부분 등에 대해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2001년 아일랜드가 영국의 우라늄·플루토늄 복합산화물(MOX) 생산공장을 대상으로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잠정조치를 요청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기도 했다.
당시 아일랜드는 국제해양법재판소에 공정허가 중지 및 핵폐기물의 해상운송 중지 등 잠정조치를 요청했다. 하지만 국제해양법재판소는 영국과 아일랜드가 협력해 정보공유, 감시, 오염방지 조치를 협의하라는 취지의 잠정조치를 내렸다. 아일랜드가 요구한 해상운송 중지 등 핵심 사안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근 정부 기류로 미뤄봤을 때 실제 제소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정부는 오염수 처리 과정이 계획대로, ‘과학적’으로 이뤄지면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23일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 가능성을 내비치면서도 ‘오염수 방류가 한일 양국 합의를 벗어나면’이라는 단서를 단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제소 자체만으로도 정치·외교적 효과 있다”
제소할 경우 승소 가능성은 의견이 엇갈린다.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2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 최종보고서의 문제점과 국제협약을 통한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방안’ 토론회에서 국제해양법 위반으로 일본을 제소하고, 강제분쟁절차를 활용해 재판을 성립시키면 일본 정부가 동의하지 않아도 방류를 중단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일본 국가기관의 원전수 방류 결정은 국제법 주체 불법행위이고, 일반국제법상 의무와 실정국제법상 의무위반, 국제환경관습법 위반으로 국제법 위반행위”라며 “방사능 오염수 방출과 인근 국가 결정적 피해의 인과관계 입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환경문제는 사후 구제보다 사전 예방이 우선이라 무과실 국제책임 원칙이 있고, 국제환경법상 사전주의원칙이 사전예방원칙보다 더 엄격하고 중요하다. 승소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제소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오염수 방류 피해 여부 등을 입증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패소했을 때 오히려 일본에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박병도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소할 경우) 우리 정부에서는 오염수 방류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환경 훼손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만약 패소한다면 우리로선 더욱 최악의 상황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에 소송제기는 신중해야 한다. 다만, 재판 준비를 통해 국제사회 여론을 환기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제소 외 다른 방법으로 국제해사기구(IMO)에서 오염수 방류 문제를 다루자고 한다. IMO 협약 가운데 하나인 ‘런던 의정서’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것이다.
런던 의정서는 쓰레기를 배에 싣고 가 바다에 버리는 행위를 금지한다. 민주당은 오염수 역시 바다에 쓰레기를 투기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IMO 논의 또한 애매한 대목이 있다. 우선 오염수를 ‘쓰레기’로 인정하느냐다. 일본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만큼 IMO가 쓰레기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방류 방식도 1㎞에 달하는 관을 통해 바다로 배출하기 때문에 이를 ‘투기’로 볼 수 있는지도 따져야 한다. 내던져 버린다는 의미의 ‘투기(投棄)’와는 관을 통해 배출하는 것은 다른 방식이란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이상웅 아는사람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국제사법재판소(ICJ)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ICJ는 전형적인 영미법, 즉 판례를 가지고 적용하기 때문에 우리와는 법제가 아예 다르다”며 “러시아가 과거 체르노빌 사태 때 오호츠크해 인근에 폐기물을 버려서 일본이 제소한 게 있는데 (ICJ가) 그런 것들을 두고 판단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일단 제소 행위 자체만으로도 정치, 외교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승소 여부와 관계없이 제소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치·이념 공방에 묻혀버린 숨은 노력들 [오염수 방류⑤]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