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업주,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 전혀 입증하지 못 해…객관적 물증 제시했어야"
"'속여서 알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실제 고의 과실 없더라도…무조건 면책되진 않아"
"신분증 위조해 업주 속인 학생들에 대한 처벌도 필요…음식점 업주도 일종의 피해자"
"주류 구매하는 손님들의 신분증 무조건 확인하고…얼굴과 신분증 대조하는 작업 필수"
음식점 업주가 신분증을 위조한 미성년자들에게 속아 주류를 판매했다 하더라도 영업정지 처분은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업주가 본인이 속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기에 재판부를 설득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했다. 학생들이 위조 신분증을 제시했다는 것을 증명할 증거와 업주가 신분증 확인 절차를 꼼꼼히 했다는 것을 입증했다면 승소했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전문가들은 또한 음식점 업주도 일종의 피해자로 볼 수 있는 상황이기에 신분증을 위조한 학생들에 대한 처벌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9단독 박지숙 판사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A 씨가 서울 서초구청을 상대로 낸 영업정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 씨는 지난해 4월 15∼16세 미성년자 4명에게 주류를 판매한 사실이 적발돼 2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A 씨는 이들이 성인 신분증을 제시했고 여성은 진한 화장을 하고 있어 미성년자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나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이 제시한 성인 신분증은 다른 사람의 것이거나 위조된 신분증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A 씨는 '식품접객영업자가 신분증 위·변조나 도용으로 청소년인 사실을 알지 못해 불송치·불기소되거나 선고유예 판결을 받은 경우에는 행정처분을 면제한다'는 식품위생법 조항을 근거로 행정소송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무법인 일로 정구승 변호사는 "재판부의 판단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업주는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전혀 입증하지 못한 것으로 보여진다"며 "약식명령을 받았다는 것은 형사 절차에서 유죄를 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정 변호사는 "형사 절차에서부터 업주가 행정처분을 면제받기 위해 객관적 물증을 제시하며 다투었어야 했다. 원고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위조 신분증을 제시했다는 것을 증명할 증거와 해당 신분증을 확인한 것을 입증할 증거 등이 있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을 것이다"라며 "아울러 만약 업주의 주장이 사실이었다면, 경찰은 미성년자들의 위조 공문서 행사 혐의를 수사했을 것이다. 이후 조사 결과 업주가 정말 기망당할만 했다면 약식명령이 아닌 무혐의 결론이 나왔을 확률이 높다"고 강조했다.
법률사무소 태룡 김태룡 변호사는 "신분증을 위조해 업주를 속인 학생들에 대한 처벌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음식점 업주도 일종의 피해자로 볼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라며 "음식점에 대해서만 영업정지라는 처분을 내려 책임을 지도록 한 것은 부당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다만 현재 사용되고 있는 신분증들은 고등학생들이 쉽게 위조할 수 있는 정도의 신분증들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조금만 신경을 썼다면 위조됐다는 것을 라 수 있었을 것이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점에서 신분증 확인 절차에 대해 세심히 주의를 기울였지 않았기에 이같은 판결이 나온 것으로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에이앤랩 신상민 변호사는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매해서 형사 처벌을 받는 업주들이 주로 '이들이 속여서 알 수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단순히 업주의 고의나 과실이 없다고 면책이 무조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얼굴을 대충 확인하고, 민증도 제대로 확인 안했기에 재판부에선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행정처분이 적법하다는 판단도 같은 맥락에서 유지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신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음식점을 운영하는 업주라면 주류를 구매하는 손님들에 대한 신분증은 무조건 확인하고, 얼굴과 신분증을 대조하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이같은 최소한의 확인 절차를 거친다면 이같은 행정처분이나 형사처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