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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시대’는 당신들이 만들었다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입력 2023.09.18 07:07 수정 2023.09.18 07:07        데스크 (desk@dailian.co.kr)

목숨을 담보로 한 도박 같은 투쟁

자기 혐의를 남에게 덮어씌우기

김만배·신학림의 간도 컸던 인터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실에서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이 19일째다. 어제, 17일에는 ‘긴급입원’을 해야 한다는 의료진의 의견이 있었으나 본인은 단식 계속을 고집했다. 지도부의 요청에 따라 출동했던 119는 철수했다고 당 측이 밝혔다. 아직은 견딜만하다는 뜻이겠다. 생명은 위대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사례다. 그래서 더욱 의문스럽다. 이 위대하고 소중한 생명을 이 대표는 왜 학대하지 못해 안간힘을 쓰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가?


그날 단식의 이유로 내걸었던 정치현안들은 아무리 봐도 ‘목숨을 건 굶기’ 결행해야 할 정도로 절박한 것이 아니다. 이 대표라고 국정혼란, 일본의 핵 오염수(처리수) 방류 같은 게 목숨을 걸고 투쟁해야 할 문제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위험한 단식 게임을 이어가는 데는 가려진 본심이 있게 마련이다. 그게 뭔지는 세상 사람들이 다 안다.

목숨을 담보로 한 도박 같은 투쟁

이 대표 자신을 조여 오는 사법적 책임추궁과 맞장 뜨겠다는 심산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워낙 혐의가 많다. 아무리 일부 판사들의 이념적 동질성, 변호인단의 동지적 유대에 기대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중범죄 혐의 어느 하나라도 인정된다면 자신의 정치생명은 끝이다. 시민으로서 생활에도 엄청난 고초를 겪을 수가 있다. 지금이야말로 사생결단(死生決斷: 죽고 사는 것을 돌보지 않고 끝장을 내려고 함)의 각오가 필요하다. 그래서 목숨을 담보로 도박 같은 투쟁을 시작했다고 보인다.


지금처럼 의술이 발달하고, 후송 체계가 잘 갖춰진 사회에서 유력 정치인이 단식으로 목숨을 잃는 일은 물론 없을 것이다.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할 것도 아니다. 위중한 상황이 되면 강제적으로라도 응급실에 실려 갈 수밖에 없다. 이 대표 자신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때까지 의연히 버티는 것이다. 그 이후엔 바통이 당내 친명계 의원들과 개딸 등 극렬 지지세력에 넘겨진다.


이들이 윤석열 정부와 검찰을 악마화하는데 성공할 수 있다면 상황은 반전된다. 내년 총선의 승기(勝機)를 미리 확보할 수 있고, 그 이후엔 대반격이 가능해진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대표 자신도 사법적 족쇄를 풀고 다시 대권 도전 가도를 달릴 수 있게 된다.


민주당은 이미 정권에 대해 ‘잔인’ 낙인을 찍었다.


“참으로 잔인한 시대입니다. 정권이 바뀐 뒤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수사를 집요하고 지루하게 끌고 가는 모습에서 국민은 수사가 아니라 정치를 봅니다. 더는 지루하게 끌지 말고 신속하게 마무리하길 바랍니다”(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 17일 이 대표에 대한 네 번째 검찰 조사에 대해).

이들은 우리의 정당사상 특정 개인의 친위대 역할을 하는 최초의 집단이 되었다. 민주적 정당정치의 의의를 지워버린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바로 자신들에 의해 ‘잔인한 시대’가 열렸음을 깨달아야 했다. 정당정치가 아니라 도당(徒黨)정치로 역행해 간 세력은 자신들이지 않은가. 이점이 이 대표와 친명계의 특이한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피의자가 자신에 대한 혐의를 부인하는 것은, 비양심적이긴 해도 이해해줄 측면은 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그 선에서 멈췄어야 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상대방에 덮어씌워 악마로 만드는 잔인성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자기 혐의를 남에게 덮어씌우기

작년 2월 25일 법정 대선후보 2차 TV토론에서 이재명 당시 민주당 후보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따졌다.


“부산저축은행은 왜 불법 대출을 알고도 봐줬나. (대출 브로커) 조우형한테 커피는 왜 타줬나?”

타줬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하고 그 이유를 추궁하는 식의 공격이었다. 그는 그 이틀 전 MBC라디오에 출연,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 대해 “이건 검찰 게이트고, 윤석열이 몸통이라고 100%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범죄집단에 종잣돈을 마련하도록 수사해놓고 봐준 사람이 윤석열이다. 제일 큰 공헌을 했다. 특검은 반드시 누가 (대통령이) 되든 끝까지 파헤쳐서 책임지워야 한다.”

이 후보는 이렇게 쐐기를 박기까지 했다.


‘커피’이야기는 그 전해 9월 15일 김만배-신학림 인터뷰에서 나왔다. 김 씨는 부산저축은행 대출 브로커 조 씨에게 전화로 “(부산저축은행 수사 때) 윤석열이 커피 타줬다고 말할 테니 (네가) 양해해 달라”라고 말했다. 김 씨는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에게도 유사한 발언을 했었다고 언론들이 검찰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렇다면 이 후보는 ‘윤석열 커피’ 조작을 주도하거나 관여한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그게 조작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세간에 ‘대장동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되던 자신이 되레 윤 후보를 몸통이라고 몰아세웠다. 그냥 모함이 아니라 자신의 혐의를 그대로 경쟁 상대에게 덮어씌운 것이다.


김-신 인터뷰 녹음파일은 작년 3월 4일 신 씨에 의해 뉴스타파에 건네졌다. 당시 신 씨는 이 매체의 전문위원이었다. 뉴스타파는 대선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3월 6일 이를 보도했다. 인터뷰에서는 김 씨가 ‘윤석열 커피’라고 말하는 부분이 없었으나 뉴스타파 보도에서는 ‘윤 검사’가 조 씨에게 커피를 타줬고, 이 사건은 무마되어 버린 것으로 들리도록 짜깁기가 되었다. 이 내용은 다음날 MBC가 보도했다(그 이전 2월 21일에는 JTBC가 남 씨의 검찰 진술을 인용, 유사한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같은 날 윤 후보 캠프에서 이 주장이 허위임을 증거를 들어 반박했으나 타격을 만회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김만배·신학림의 간도 컸던 인터뷰

앞으로 수사를 통해 전모가 드러나겠지만 김 씨와 신 씨는 정말 간도 큰 짓을 저질렀다. 그 과정에 김 씨가 신 씨가 쓴 책 3권의 값이라며 1억 6500만원을 지급했다. 판권도 아니고 책 3권 값이었다.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혼맥지도』라는 제목의 책이다. 권당 5000만원에 부가세를 더한 금액이었다. 공상소설 속에서도 매겨지기 어려운 책값을, 신 씨는 제 값을 받은 양 우겼다. 전국언론인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낸 기자출신의 신 씨는 뉴스타파 보도시점이 대선 3일 전이었음을, 그러니까 절묘한 시점을 택했음을 자신의 지인에게 페이스북을 통해 자랑하기까지 했다.


민주당 이 대표의 자기 과오 떠넘기기, 덮어씌우기는 호가 나 있다. 그의 사건에 연루된 인사 가운데 3명이 검찰조사를 받던 중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스릴러 소설이나 드라마 작가들의 상상력도 뛰어넘은 미스터리다. 그러나 이 때문에 이 대표가 사법적으로 책임을 추궁당한 적은 없다. 자신을 도왔던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도 그는 모르쇠로 일관했다(경기도지사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전 모 씨에 대해서만은 유족이 꺼려하는데도 기어이 조문하는 열성을 보였지만).


당 대표의 충성스러운 친위조직은 그를 사법리스크에서 구해내기 위해 국정 마비 상태 연출도 마다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16일 비상의원총회를 열어 정부에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고,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을 제출하기로 결의했다.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이 무얼 못하겠느냐는 배짱이다. 정치를 희생시켜 이 대표를 구해내겠다는 충성의 열기가 당을 휘감고 있다.


대의민주정치 및 민주적 정당정치의 의의와 양상은 ‘이재명 전과 후’로 구분될 듯하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헌정사 70여년은 대의민주정의 발전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재명 현상’ 이후엔 그 흔적 및 파편만 남겨질 개연성이 높다. 민주주의 전통을 너무 쉽게 훼손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 대표 혼자서 만들어 놓은 구조는 아니다. 그를 중심으로 뭉친 극렬지지세력, 어느 한편에 속함으로써 안도를 얻으려는 대중이 더욱 강화시켜놓은‘진영정치’가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와 전통을 해체시키는 주요인이라 할 수 있다.


“대체로 동질적인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집단에 속해 있고, 그 집단을 신뢰하는 사람의 사회적 정체성은 단순해진다.……이런 종류의 정체성의 덫에 걸리고 나면 우리는 ‘우리와 다른’자들과 경계선을 긋고 그들을 배제하기 위한 이유를 찾아 나선다. 우리는 다양성에 대해 덜 관용적이고 근친교배적인 집단이 되며, 다른 이들에 대해 고정관념을 품는다. 우리의 사회적 세계를 흑백으로 칠함으로써 편안함을 보장 받고자 하는 것이다”(토드 로즈, 『집단 착각』, 노정태 역).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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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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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현석 2023.09.21  07:11
    저들의 이념적 동질성, 동지적 유대.. 그리고 열린 '잔인한 시대'
    
    멋진 칼럼 감사합니다..
    
    저들에게는 민주도 없고, 정의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고.. 그러하기에 사과하거나 반성할 줄도 모르고.. 단지 자기들 끼리라는 '끼리'유대감.. 떼놈의 정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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