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경찰관, 신분 밝히지 않고 갑자기 들이닥친 것은 영장주의 의무 위반"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사용할 수 없어…적법한 절차 거치는 것이 중요"
"음주 측정하고 싶었다면 피고인에게 체포영장 제시하거나 긴급체포했어야"
"차량 시동 끄고 집에 들어간 것은…현행범으로서 음주운전 행위 종료된 것"
음주운전 의심 신고를 받고 집으로 찾아온 경찰이 음주 측정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한 40대 운전자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법조계에서는 경찰관이 신분을 밝히지 않고 갑자기 들이닥쳐 "음주 측정을 하겠다"고 한 것은 영장주의 의무 위반이기에 위법이며 이 때 수집된 증거는 사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만약 경찰관이 음주 측정을 하고 싶었다면 피고인에게 체포영장을 제시하거나 긴급체포를 했어야 했다며 적법한 절차를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12일 청주지법 형사3단독 김경찬 부장판사는 도로교통법상 음주 측정 거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49)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지난 9일 밝혔다. A 씨는 지난 1월 오후 8시께 음주운전 의심 신고를 접수하고 자신의 거주지에 찾아온 경찰관의 음주 측정을 수차례 불응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A 씨는 음주 감지기에서 음주 반응이 나타났지만 "술은 집에 도착한 뒤 마셨다"고 경찰에 진술하며 측정을 거부했다.
법무법인 일로 정구승 변호사는 "피고인의 퇴거 요구를 경찰이 거부하고, 음주 측정을 요구한 것은 절차적으로 위법하기에 음주 측정 결과를 증거로 쓸 수 없다. 만약 경찰이 음주 측정을 하고 싶었다면 체포영장을 제시하거나 긴급체포를 해야 했다"며 "만약 적법한 절차를 거친 후 집에 들어가 음주 측정 요구를 했다면 음주측정거부죄가 성립했을 것이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정 변호사는 "피고인의 음주행위에 대해서도 증거가 불충분한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 애초에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음주행위 여부를 파악할 수 없기에 혈중알코올농도 0.03 이상의 상태에서 운전했다는 사실도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법률사무소 태룡 김태룡 변호사는 "음주 측정 거부죄는 음주 운전을 했다는 걸 전제로 판단하기에 기본적으로 형량이 낮은 편은 아니다. 가벼운 음주 운전을 했을 때보다 형량이 세게 나오는 편"이라며 "음주 측정은 호흡해서 확인하는 방식과 혈액을 측정하는 방식 두 가지가 있다. 일부 운전자들이 형 감량에 도움이 될까봐 혈액 측정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으므로 경찰에 최대한 협조하는 게 제일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변호사는 "음주 운전을 한 사람이더라도 집에 들어가 있다는 것은 음주 운전을 마친 행위로 분류된다. 그렇기에 이런 경우 집까지 찾아가 확인을 하기 위해서는 영장을 비롯한 다른 조치가 필요하다"며 "차량 시동을 끄고 집에 들어갔다는 것은 현행범으로서의 음주 운전은 종료됐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주원 최상혁 변호사는 "운전자가 도로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측정하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거부한다면 제3의 요인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서 음주 측정 거부죄가 성립한다. 교통의 안전과 위험방지를 위해 음주 측정 요구는 필요하고, 이를 진행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며 "다만 이 사건에서 경찰은 신분을 밝히지 않고, 갑자기 들이닥쳐 '음주 측정을 하겠다'고 했기에 영장주의 의무를 위반했기에 위법사항에 해당한다. 이때 수집된 증거는 증거로 사용할 수조차 없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최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에는 '한 명의 죄가 있는 범죄자를 풀어주더라도 10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지 말자'라는 대원칙이 있다. 그렇기에 수사기관이 절차를 준수하도록 까다롭게 규정할 수밖에 없다"며 "이 사건을 살펴보면 피의자에 대해 야간에 음주 측정을 집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야간 집행을 할 수 있다'는 기재가 구속영장에 적시되어 있지 않을 경우 영장을 집행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