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 무대를 선보이는 공연계에선 무대 세트나 소품 폐기 문제가 난제로 꼽혀왔다. 기후위기의 시대에 맞아 공연계도 심각성을 알리고, 직접 행동에 나서는 등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기후문제를 다루는 작품은 대부분 어린이극이 주를 이뤘다. 최근에만 해도 김문정 감독이 음악슈퍼바이저로 참여한 ‘오마이어스: 핑크버블의 습격’이 뮤지컬로 제작되고 있다. 작품은 펭귄과 곰이 인간들과 함께 지구를 구하는 히어로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콘텐츠 비즈니스 기업 오마이어스가 만든다. 이밖에도 해양환경뮤지컬 ‘플라스틱 몬스터’, 친환경 가족뮤지컬 ‘북극곰 로라’ 등 교육적 의미가 강한 어린이극이 뮤지컬로 제작되어 왔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일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환경 관련 작품들의 제작이 부쩍 늘었다. 적극적인 기후행동을 통해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도록 하고, 작품 제작과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들 역시 최소한으로 배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추세다. 그중에서도 국립극단은 기후문제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공연단체다.
지난 2020년 11월 취임 당시 김광보 국립극단 신임 예술감독은 ‘적극적인 기후행동’을 국립극단의 운영 가치 중 하나로 꼽은 만큼,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기후위기 문제 작품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2021년 시작한 ‘창작공감’ 사업 중 ‘창작공감: 연출’ 부문은 해마다 국립극단에서 제시한 주제에 관심 있는 연출가 2명을 뽑는데 지난해에는 그 주제를 ‘기후위기와 예술’로 지정했다.
같은 해 5월에는 작가 겸 연출가 전윤환의 신작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을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작품은 기후 비상사태로 지구가 멸망 위기에 처한 상황을 다큐멘터리 형식과 극적 구성으로 보여주면서 호평을 얻었다.
올해에도 환경문제를 주제로 한 연극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멸종위기종 갈라파고스 땅거북을 소재로 삼은 연극 ‘스고파라갈’을, 지난 10월 28일과 29일에는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기후위기를 다룬 강의형 연극 ‘에너지…보이지 않는 언어’를, 지난 10월 5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선 2023년에서 시작해 2043년 인류의 마지막 날을 담아낸 재난 연극 ‘당신에게 닿는 길’을 공연했다.
한 공연 관계자는 “최근 공연계에선 무대장치나 조명 등의 미장센 사용을 최대한 절제해 무대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최소화하거나, 기후위기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는 대학로 소극장이나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어린이극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아직 공연계가 기후위기를 다루는 데 있어서 걸음마 단계이지만, 앞으로 이 같은 극이 더 활성화될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기후위기 대응이 일상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감수성이 중요하다. 무대라는 공간과 공연이라는 예술적 언어를 잘 활용한다면 더 없이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