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과 맞선 자객 공천의 원조 ‘손수조’
-신당 창당이냐, 국민의 힘 잔류냐 주판알 튕기는 ‘이준석’
2011년 하반기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를 하자 홍준표 대표가 이끌던 새 지도부는 출범 다섯 달 만에 문을 닫고 ‘박근혜 비대위’가 출범했다. 당시 박근혜 비대위는 기존 정치 문법에 파격이었다. 보수 정치에서 불온 사상을 상징하던 붉은 색을 당을 상징하는 색깔로 변경하고 진보 진영의 전유물 처럼 여겨지던 ‘경제 민주화’를 경제 정책으로 내세웠으며 당명 또한 새누리당으로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소위 철밥통으로 불리는 현역 의원 중 하위 25%를 공천 배제 하는 등 과감한 혁신으로 100석도 어려울 것이라는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152석을 확보하며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박근혜 스스로 박근혜 대통령 시대를 여는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쇄신 가운데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은 바로 소위 ‘박근혜 키즈’로 불린 인적쇄신, 즉 젊은 피의 수혈이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이준석과 손수조이다. 이후 이준석은 보수당의 당대표로 선출되는 파란을 일으키며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성장하였으나 작년 대통령 선거때부터 내재된 집권층과의 갈등으로 인해 올해 하반기부터 신당 창당을 염두에 두고 정치의 보폭과 외연을 확장중이다.
반면 이준석과 함께 대표적 박근혜 키즈로 화려하게 정치에 입문한 손수조는 정치적 부침을 겪으며 와신상담, 내년 총선에 경기 북부에서 출마를 준비중이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손수조 후보는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부산 사상구에서 맞붙어 43.75%라는 놀라운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전했으나 문재인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도 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했으나 공천에 불복한 장제원 의원이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를 강행, 당선되면서 다시 한 번 낙선의 쓴 맛을 봐야했다. 두 번의 패배 후 한동안 정치 무대에서 잊혀진 원조 민주당 ‘자객 공천’ 당사자인 손수조를 데일리안이 이메일과 전화로 인터뷰하며 그의 향후 정치 일정과 야심, 소회 등을 싣는다.
# 이준석과 함께 대표적인 박근혜 키즈의 상징이었다. 당시 발탁 과정과 소회를 말씀해달라.
- 이준석은 발탁이 맞고, 저는 제가 이력서를 들고 당을 찾아 다니며 자력으로 시작한 경우이니 시작부터 달랐습니다. 당시 제 나이 스물 일곱 살로 문재인 후보가 출마하는 지역구에 거주하던 저는 공천심사위원회에 이메일을 수십 통 보내고 전화하고 찾아가고 할 수 있는 것은 다했습니다.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하루 두세 시간 자면서 지역을 샅샅이 누볐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을 하는 가운데 중앙당에서 저를 공천하였습니다. 당시에는 혁신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지도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처럼 어미닭이 밖에서 껍질을 쪼아주고 안에서 병아리가 꿈틀거려야 알이 부화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말해도 들어주는 귀가 없으면 말짱 헛일인데 당시에는 새누리당 중앙당에서 청년과 약자의 목소리를 들어주던 시스템이 잘 작동되었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제가 당이 정해 놓은 민주적 절차의 혜택을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 같은 박근혜 키즈의 대표였던 이준석은 당대표를 거쳐 지금은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성장했고 마침 오늘(인터뷰는 2023년 11월 26일 일요일 이루어짐) 이준석 전 대표는 대구에서 1천여 명의 지지자들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우리의 고민’이라는 주제로 신당 창당 내지는 세과시를 위한 본격적인 외부 행보를 시작했다.
이러한 이준석의 지난 10여 년을 지켜보는 소감은 어떤가?
- 제 소감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선출직에 대한 평가는 국민들께서 후보의 됨됨이와 인생 역정, 언행 등을 보고 냉정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중간에 잠시 정치를 떠난 적이 있습니다. 무슨 이유였고 다시 정치의 틀로 되돌아 온 계기는?
-현실 정치의 벽을 느꼈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일이 너무 힘들다는 무력감을 느껴 잠시 떠났습니다. 짧은 정치 이력이지만 정치라는 것이 몸과 정신을 갉아먹는 일입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정치는 자신을 돌아보며 충전과 학습, 휴식을 반복하며 긴 호흡으로 해야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에만 몰두하다 보면 정치인이 아니라 괴물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정치로부터 단절하고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 정치물을 좀 빼야겠다는 마음에 잠시 떠나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국회의원들도 자치단체장처럼 3연임으로 임기를 제한하고 안식년 등을 제도화 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렇게 소위 정단녀(정치 단절 여성)로 지내며 장례지도사라는 보람된 일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하더라도 한 번 정치인이 된 손수조에게 정치는 늘 따라다니는 꼬리표, 디폴트 값(default value, 설정 값) 같은 것이 되어 버렸음을 체감했습니다. 장례지도를 하며 만난 많은 분들이 ‘수조씨 같은 사람이 다시 정치하면 좋겠다’는 격려의 말씀을 계속 주셨고 3자의 시각에서 살펴봐도 정치가 너무 후지게 타락하고 있는 것이 마치 제 일인 듯 답답했습니다.
예를 들어 LH의 부동산 불공정, 태양광 관련 비리, 양당 극혐 속에 협치의 실종, 검수완박과 같은 일당 독재와 폭주 등등… 이렇게 방치한다면 ‘머지않아 제 자식들이나 후배들이 살아갈 세상이 정의와 공정, 상식, 그리고 협치 등이 사라진 끔찍한 야생이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힘이나마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데 일조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하였고 이렇게 현실 정치로 복귀했습니다.
# 2012년 총선에서 문재인과 겨루어 석패했으나 소위 ‘원조 자객 공천’의 당사자로서 당시 상황에 대해 말씀 부탁드린다.
-당시 문재인 후보와의 격돌은 순전히 저의 결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떠밀거나 제안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정당 조직을 전혀 몰랐고 공천의 매커니즘도 알지 못해서 제가 직접 밑바닥부터 정보를 취합해서 중앙당에 연락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만, 모르는게 창피한 것은 아니잖아요? 묻고 길을 개척해야죠. 그러면서 공심위를 설득했죠.
“열정과 패기를 가진 젊은 피 손수조가 박근혜 비대위 성공의 적임자입니다” “낡은 정치 교체의 적임자는 손수조입니다” “누구를 내보내도 저 손수조보다 더 많은 득표를 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 손수조가 최상의 카드입니다, 상대 문재인 후보의 허점을 파고들 비장의 무기들을 제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논리로 일관되게 설득하여 결국 공천을 따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큰 무기는 역시 자객으로 나서겠다는 ‘용기’와 ‘자신감’이었습니다. 서른 일곱의 손수조가 스물 일곱의 손수조를 보니 그렇더라고요.
#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동두천·연천 출마를 준비 중으로 알고 있다. 이 지역을 선택한 이유와 지역민들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장례지도사를 하면서 회사로부터 경기북부담당 팀장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3년 정도 장례지도사로 활동했고 그러다 동두천으로 이사하여 주민이 되었습니다. 몇 년을 살면서 동두천과 연천 곳곳을 보면서 느낀 점은 이 지역에 대해 두 마디로 정리가 가능했습니다. 바로 ‘정치 소외 지역’, ‘정책 소외 지역’입니다.
이른바 접경지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국가 안보를 위해, 수십 년간 무조건적인 희생 만이 강요된 지역이지만 정치가 이를 풀어주지 못하고 있고 정치가 무능하니 정책이 발현되지 않아 국가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되고 고립된 채 70년 넘게 큰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력이나마 제 역량과 젊음을 모두 쏟아 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생각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단계는 아닙니다만 중앙 정부의 협력과 외자 유치 등을 통해 동두천을 ‘한국의 뉴올리언스’, '동두천 프리덤'으로, 연천을 ‘수도권 관광 성지’로 만들어 산업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어 이들 지역을 경기 북부 제1의 지역으로 성장시키는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 다소 민감한 질문입니다만 지난 주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의 여성 비하 발언 후 손수조 전 위원장에 대한 성적 비하로 비칠 만한 내용이 온라인 상에 확산하며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이런 문제가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것은 정치라는 영역에 유독 남성 위주의 기득권과 권위주의 문화가 아직도 가장 후진적으로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불합리에 대해 잘못은 지적하고 비뚤어진 인식과 문화는 과감히 바꿔가야 합니다. 저는 정치인 이전에 불의에 목소리를 내고 분노하는 평범한 한 시민이기도 합니다. 두 번 다시 이런 후진적이고 천박한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