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연동형 비례대표제·위성정당 방지 수차례 약속했지만
총선 앞두고 "선거는 승부…이상적 주장 무슨 소용 있겠나"
불체포특권 포기 대국민 약속했다가 체포동의안 부결 호소
박정희·전두환 비난해놓고 TK 겨냥한 공과 발언해 논란도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인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 한 마디에 민주당이 발칵 뒤집혔다. 이 대표가 최근 강성 지지층과 소통하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병립형 비례대표제' 또는 '위성정당 활용'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되면서다. 이 대표가 민주당의 '꼼수 위성정당' 창당을 비판하며 선거제 개혁을 주장하고, 지난 대선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위성정당 방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말 바꾸기' 논란은 한동안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일 민주당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의원총회에서 선거제 개편 문제를 논의했지만 이날 현재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당시 의총에서 30명에 가까운 의원이 발언을 했는데, 이 대표의 '멋진 패배 무용론'에 대해 반감을 표출한 의원들이 상당수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지난해 대선과 전당대회 전후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위성정당 방지를 수 차례 약속한 바 있다. 특히 민주당은 대선을 열흘 앞두고는 '연동형 및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포함된 국민통합 정치개혁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이 대표도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드리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8일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선거는 승부인데 이상적 주장을 멋있게 하면 무슨 소용있겠냐"며 "정상적인 정치가 작동하는 사회라면 우리도 상식과 보편적 국민 정서를 고려해 타협과 대화를 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 "총선에서 1당을 놓치거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지급의 폭주와 과거로의 퇴행을 막을 수 없다"며 "지금은 어느 정도 막고 있지만 국회까지 집권여당에 넘어가면 상식이 통하지 않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이 대표가 말을 바꿔 공약을 파기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전환이나 위성정당을 전제로 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사실상 마음이 기운 것 아니냐는 것이다.
혁신계(비명계) 모임인 '원칙과 상식'은 입장문을 통해 "말 바꾸고 약속 뒤집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대놓고 거꾸로 갈 작정이냐"며 "역사와 국민 앞에 부끄러운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느냐"라고 이 대표를 비판했다.
이낙연 전 대표도 "당장 할 일은 위성정당 포기를 전제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는 것"이라며 "양대 정당이 의석 독과점을 위해 합의했던 것으로 알려진 병립형은 정치 양극화의 폐해를 극심하게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야권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이 대표를 향해 "자기가 무슨 놈의 노무현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인가"라며 "노무현의 삶을 진짜 바보라고 생각하는 게 이재명"이라고 힐난했다.
이 대표의 '말 바꾸기 행태'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리더십에 또 한 번 흠집이 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표는 지난 6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대국민 약속을 한 바 있다. 원고에 없었던 발언으로, 대여 공세를 위한 '승부수'로 해석돼 당 안팎의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9월 자신의 체포동의안 표결 직전 페이스북에 "명백히 불법부당한 이번 체포동의안의 가결은 정치검찰의 공작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며 부결을 호소했다.
유 전 사무총장은 "이 대표는 지금 다른 것보다 신뢰의 위기"라며 "지난번에 불체포특권 그렇게 (포기)한다고 해놓고 또 부결 호소를 하고 (대통령) 선거 때 후보 시절부터 또 의원총회까지 거쳐서 정치개혁을 했는데 이걸 헌신짝처럼 내버리면 앞으로 무슨 말을 해도 누가 믿어주겠냐. (신뢰를 잃는 게 총선에서) 훨씬 더 큰 손해"라고 지적했다.
대선 후보 시절인 2021년 12월엔 이른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공과' 발언으로 '말 바꾸기' 비판이 제기됐다. 이 대표는 당시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찾은 뒤 즉석연설에서 "전두환도 공과가 공존한다”며 "전체적으로 보면 전두환이 삼저 호황(저금리·저유가·저달러)을 잘 활용해서 경제가 망가지지 않도록, 경제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건 성과인 게 맞는다"고 평가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칭찬받을 만한 일이 하나 있다. 바로 농지개혁을 한 것"이라며 "그 이후 대한민국 경제가 정말 급속하게 성장했다. 지금처럼 양극화가 심하고 경제가 침체될 때 배워야 될 역사적 경험이다. 그 점에서는 인정을 할 만한 부분도 조금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대구·경북이 낳은, 평가는 갈리지만 매우 눈에 띄는 정치인이 있었다. 박정희다. 모든 정치인은 공과가 병존한다"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산업화의 성과를 냈다" "명백한 과오가 있긴 하지만 대한민국을 산업화를 통해 경제 대국으로 만든 공이 있는 사람" 등 사흘 연속 언급했다.
이는 TK(대구·경북) 민심을 겨냥, 보수 진영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공과 관련 입장을 밝히면서 외연 확장을 노린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이 대표가 그간 보수 진영 대통령을 맹비난해왔던 것과 맥을 달리해 논란이 됐다.
이 대표는 2017년 1월 31일 민주당 대선 경선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뒤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지만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은 방문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우리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곳에 묻혀 있다고 한들 광주학살을 자행한 그를 추모할 수 없는 것처럼 친일매국세력의 아버지, 인권을 침해한 독재자에게 고개를 숙일 수는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과 노태우, 이명박과 박근혜로 이어지는 친일 독재·매국·학살 세력이 이 나라 다수 국민을 힘들게 하고 있다"며 "소수의 불의한 기득권자로부터 다수의 약자를 지켜지는 그야말로 정확한 의미의 민주공화국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제 몫을 다하려고 한다"고도 말했다.
이 대표는 당시 공과 발언으로 비판받자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병폐가 흑백논리다. 진영논리"라며 "다원적이고 실용적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있는대로 객관적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굳이 모든 게 100% 다 잘못됐다고 할 수 없는 한 부분들이 있을 수 있다"며 "예를 들면 그 중 하나가 3저(底) 호황을 그래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름 능력있는 관료를 선별해 거기다 맡긴 덕분에 어쨌든 경제가 성장한 것도 사실이다"고 했다.
다만 "그런 작은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역사적 죄인이라고 말했는데 그 중 일부만 똑 떼서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