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법 85조 자사 부동산 펀드와 임대거래 불가
리츠는 미적용...차별 철폐 위해서라도 법 개정해야
그동안 시대에 맞지 않은 낡은 규제들이 기업들의 경영 활동에 제약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어 왔다. 그래서 매번 정부가 들어설때마다 ‘전봇대 뽑기’, ‘손톱 밑 가시 제거’, ‘규제 샌드박스’, ‘킬러 규제 혁파’ 등을 내세우며 규제 개혁에 앞장서겠다는 포부를 밝혀 왔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미흡한 적이 많았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1990년대에 만들어진 낡은 법 조항으로 인해 자산 운용사들이 본사 건물을 두고 다른 건물에 입주해야 하는 촌극이 펼쳐지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미래에셋 센터원 빌딩을 소유하고 있지만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빌딩 타워1 빌딩에 본사를 두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등 그룹 계열사들이 모두 센터원 빌딩에 입주해 있지만 나홀로 떨어져 셋방살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BNK자산운용은 지난 2020년 여의도 삼성생명빌딩(현 BNK금융타워)를 매입하고도 파이낸스타워로 이전했고 KB자산운용도 2015년 여의도 유진투자증권빌딩(현 KB금융타워) 매입 이후 사옥 이전을 포기했다. 이 외에도 대신자산운용과 베스타스운용 등 부동산 펀드를 운용 중인 다수의 자산운용사도 자사 사옥에 입주하지 못했다.
이들이 자신의 집을 두고 남의 집을 전전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제 85조 때문이다. 이 법의 5호 ‘고유계정과 신탁계정 간 거래 금지’ 조항에 따르면 특정 집합투자재산을 집합투자업자의 고유재산 또는 그 집합투자업자가 운용하는 다른 집합투자재산, 투자일임재산 또는 신탁재산과 거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부동산 펀드가 투자한 건물에 운용사가 입주하는 것은 위법이다. 임대료(고유재산)를 자사 펀드에 내는 것은 불법으로 회사가 운용하는 부동산 펀드와 임대거래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본시장법 85조의 이 조항은 지난 1990년대 투신사들이 고유계정과 신탁형 저축계정간 불법 편출입을 통해 우량자산은 회사에게, 불량자산은 고객에게 넘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법 제정의 취지는 이해할만 하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 사회에 맞게 법 조항도 바뀔 필요가 있듯이 이 법도 이제 개정이 필요하다. 지금은 과거와 달리 펀드 간 자전거래, 고유자산과 펀드 간 거래가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어 이러한 규제는 더 이상 불필요해진 상황으로 합리적으로 법 적용을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규제 적용 일관성 측면에서도 필요하다. 해당 법 조항에 따른 규제는 부동산 펀드에만 적용되고 리츠(부동산투자회사·REITs)는 예외다. 리츠는 ‘자본시장법’ 하의 펀드와 달리 ‘부동산투자회사법’의 적용을 받는데 이같은 규제가 없다. 운용사가 리츠로 빌딩을 매입해 입주하면 합법이고 부동산펀드로 매입해 입주하면 불법이 되는 좀처럼 이해하기 위한 차별적 규제다.
또 펀드로 건물을 매입한 운용사가 타 입주자와 차별 없이 합리적으로 임대료를 낸다면 공실율을 줄일 수 있어 투자자들에게도 유리할 수 있고 이는 오히려 일반 펀드 투자자를 보호하고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자본시장법 85조 고유계정과 신탁계정 간 거래 금지의 취지에 더 맞다는 업계의 목소리도 충분히 합리적이다.
금융당국이 시대 착오적인 법과 제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하는데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올 한 해도 벌써 다 가고 며칠이 남지 않은 이 시점에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부디 내년에는 운용사의 손톱 밑 가시 같은 자본시장법 85조 개정에 적극 나서 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