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퇴설' 유력했지만 거취 표명 미뤄지며 '3연임 도전' 무게
19일 이사회에서 '셀프연임' 규정 개편시 연임 도전 명분 생겨
정부와 불편한 관계, 사법 리스크 여전…'2연임 완주' 명예 택할 수도
포스코그룹의 최고경영자(CEO) 선임 관련 규정 개편이 임박하면서 현 CEO인 최정우 회장의 거취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 내년 3월 연임 임기까지만 마무리하고 용퇴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했으나, 최 회장의 거취 표명이 늦어지면서 3연임 도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포스코그룹 지주사 포스코홀딩스는 19일 이사회를 열고 CEO 선임 관련 규정을 개편하는 내용을 정식 안건으로 올릴 방침이다.
기존 규정에서는 현직 CEO가 연임 의사를 밝힐 경우 단독으로 우선 심사를 받을 기회를 부여했었다. 이후 CEO 후보추천위원회가 한 달간 심사를 한 뒤 적격 판단을 내리면 단독 후보로 주주총회에 참여해 안건이 통과되면 연임이 확정되는 방식이었다.
이를 두고 ‘셀프 연임’ 논란이 불거지자 포스코그룹은 지난 3월 선진 지배구조 태스크포스(TF)를 발족시켜 개편 작업에 돌입했다. 이후 현직 CEO에 대한 우선 심사 기회를 없애고, 연임 의사를 밝히면 다른 후보군과 동등하게 경쟁토록 하는 내용의 개편안이 마련됐다.
19일 이사회에서 이 안건이 통과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개편 작업이 최 회장의 제안으로 시작됐고, 사외이사들도 대부분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의 거취 표명은 이사회 이후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이사회를 앞두고 3연임 도전 여부를 밝힐 것으로 관측돼 왔으나 최 회장의 침묵이 이어지면서 그가 내릴 결론도 기존 예상과는 다른 분위기로 흘러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 회장은 그동안 대통령 해외 순방이나 국내 경제인들과의 회동 등의 자리에 초대받지 못하며 ‘패싱’ 구설에 휘말렸었다. 포스코홀딩스 물적 분할 과정에서 본사 소재지 논란이 일면서 포항 시민들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아오기도 했다. 포항 지역 시민단체가 최 회장을 회사차 사적 유용 혐의로 고발하며 사법 리스크로까지 이어졌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올 상반기만 해도 최 회장의 연임 임기 완주까지도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3연임 도전은커녕 2연임 임기만 무사히 마쳐도 다행이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차기 CEO 선임 절차에 돌입해야 할 연말까지 최 회장이 자리를 지키며 분위기는 달라졌다. 최 회장의 재임 기간 이뤄진 포스코그룹의 기업가치 확대와 배터리(이차전지) 소재, 친환경 인프라 등 신사업 분야로의 포트폴리오 확장 성과가 부각되며 일관성 있는 경영전략 추진을 위해 최 회장이 한 차례 더 포스코를 이끌어야 한다는 여론도 나오고 있다.
차기 CEO 선임 관련 규정 개편도 오히려 최 회장의 3연임 도전의 명분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 ‘셀프 연임’ 논란이 사라지고 다른 후보군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심사를 받게 되는 만큼 ‘도전’ 자체가 비난받을 이유도 없어진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정우 회장이 (CEO 선임 관련 규정 개편 안건이 다뤄지는) 이사회 이후로 거취 표명을 미룬 데는 먼저 공정한 룰을 만들고 도전장을 던지겠다는 의도가 깔린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물론 최 회장이 전격적으로 사퇴 의사를 밝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와의 관계가 개선될 여지는 여전히 희박하기 때문이다. 최 회장의 3연임이 이뤄질 경우 임기는 2027년 3월까지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2027년 5월) 마지막까지 정부와의 불편한 관계를 이어갈 우려가 있다는 게 최 회장에게는 부담이다.
사법리스크도 여전하다. 최 회장은 회사차 사적 유용과 관련해 업무상 배임 혐의로 지난 9월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여기에 포항 지역 시민단체는 최근 최 회장을 비롯한 포스코 이사진 16명을 업무상 배임 및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고발인측은 최 회장 등이 지난 8월 캐나다 벤쿠버에서 이사회를 열며 사외이사 등을 상대로 ‘접대 골프’를 하는 등 경비를 부정하게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에 대한 포항 지역의 반감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라 앞으로도 각종 소소한 사안들을 놓고 고발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선대 회장들이 하나같이 ‘연임 후 중도 퇴진’이라는 전철을 밝은 배경도 정부와의 불편한 관계나 사법 리스크였다. ‘3연임 후 중도 하차’ 보다는 ‘포스코 회장 최초 2연임 임기 완주’라는 명예를 안고 용퇴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최 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힐 경우 다음 절차는 ‘CEO 승계 카운슬(협의회)’ 가동이다. 포스코홀딩스 이사회 의장과 전문위원회 위원장 등 사외이사로 구성된 CEO 승계 카운슬은 회장 후보군 명단을 만들어 CEO 후보추천위원회에 제출한다. 추천위가 1명의 최종 후보자를 선정한 후 내년 3월 주총에 올려 승인받으면 차기 회장이 최종 확정된다.
승계 카운슬이 가동될 경우 이에 포함될 후보군으로는 내부 인사로 김학동 포스코 부회장과 정탁 포스코인터내셔널 부회장, 정기섭 포스코홀딩스 사장, 유병옥 포스코홀딩스 친환경미래소재총괄 부사장 등이 거론된다.
이사회에서 퇴직 3년 이내 인사 중에 회장을 선임하는 후보군 제한이 풀릴 경우 장인화 전 포스코 사장과 황은연 전 포스코 인재창조원장까지 물망에 오를 수 있다.
외부 인사로는 LG그룹에서 다양한 계열사 CEO를 거치며 뛰어난 경영능력을 보여준 권영수 전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이 꾸준히 거론돼 왔다. 권 전 부회장은 지난달 1일 ‘제3회 배터리산업의 날’ 행사에서 포스코 차기 회장설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부인했지만, 당시는 현직이었고, 지난달 22일 LG그룹 인사에서 회사를 나온 지금은 야인(野人) 신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