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거미, 광주·대구·서울·부산 이어 성남에서 콘서트 투어 마무리
한층 아름다워진 음색과 외모·창법으로 ‘가수로서의 성장’ 확인시켜
개성 줄이고 우주 최강 ‘보편성’ 과시…세계적 발라더로 사랑받기를!
거미가 달라졌다. 한층 여성스럽고 ‘섹시’해졌다, 노래도 외모도 무대도. 이유가 뭘까.
2023년 마지막 날,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3개 충은 가수 거미의 노래를 만나러 온 관객 ‘3,000명’으로 빼곡했다. 지난해 11월 광주를 시작으로 대구, 서울, 부산을 거쳐 조정석과의 보금자리가 위치한 성남에서 마무리되는 대장정의 마침표 공연이었다.
공연의 시작은 게스트 가수도 입담 넘치는 진행자도 아니었다. 예정된 오후 6시, 무대에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밖에 없는 거미의 목소리와 창법으로 노래 ‘지금 행복하세요’가 들려왔다. 이럴 일인가, 급 눈물이 터졌다. 좋아하는 가수의 얼굴을 봐서도 아니고 경이로운 무대가 펼쳐져서도 아니다. 단지 목소리다. 너무나 잘하는 노래, 소름 돋는 연기를 듣고 볼 때 터지는 ‘감탄의 눈물’이 솟았다, 예상치 못한 석유 시추의 순간처럼 무방비로 솟구쳤다.
리프트를 타고, 여전히 노래를 부르며 등장하는데 영화 ‘미녀는 괴로워’(감독 김용화)의 제니가 무대에 오르는 듯 아름답다. 제니가 아니다 거미다. 영화에선 무대 아래 강한나가 노래하고, 무대 위 제니는 입만 뻥긋거린다. 거미에겐 무대 아래 ‘히든 싱어’가 없다.
가수가 반드시 예쁠 필요가 있나, 당연히 없다. 예뻐야 한다면 영화처럼 ‘무대 위 아바타’를 두는 비극이 현실이 된다. 그렇다, 예쁨은 필수조건이 아니다. 인류 누구나와 소통할 수 있는 보편적 감성에 자신만의 소울, 우수한 가창력과 개성적 창법이 중요하다. 거미는 우리가 모두 알 듯 다 갖췄다. 그런데 이제 미모마저 가졌다.
미모가 중하지 않다며 미모 얘기를 한다고? 앞뒤 맞지 않지만, 핑계를 거미에게 대고 싶다. 분명 흠뻑 빠져 콘서트를 즐겼다.
‘러브 레시피’ ‘아로하’ ‘혼자만 하는 사랑’ ‘사랑하지 말아요’ ‘혼자’ ‘날 그만 잊어요’ ‘낮과 밤’ ‘어른 아이’ ‘사랑했으니…됐어’ ‘그대 돌아오면’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 등의 노래를 들으며 ‘콘서트 장인’다운 압도적 가창력, ‘이별 장인’다운 먹먹한 감성, 이별과 짝사랑의 아픔에 필히 선행되는 ‘사랑 장인’의 따스함에 젖었다. 이번 콘서트 투어의 주제가 ‘LOVE’, 사랑이기도 하다.
김범수의 ‘보고 싶다’를 거미의 노래인 듯 듣고, 거미판 ‘꽃’(지수) ‘하입 보이’(뉴진스) ‘Seven’(세븐, 정국)을 아이돌이 아니라 거미가 불렀을 땐 이런 색과 향이 되는구나, 입이 벌어졌다. 특히 ‘세븐’에서 라토가 하는 랩마저 거미가 소화했을 땐 객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2023년 챌린지 열풍을 일으킨 ‘스모크’, 이로부터 13년 전인 2010년을 강타한 이효리의 ‘치티치티뱅뱅’, 그로부터 17년 전인 1993년 발표돼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까지, 시대를 풍미한 대표곡들은 다 함께 일어나 춤추며 소리 지르며 즐겼다.
분명 흠뻑 빠져 거미의 무대를 즐겼는데, 자꾸만 거미의 외모에 눈길이 갔음을 인정한다. 임신과 출산을 겪은 게 맞나 싶을 만큼 더욱 가녀려진 몸매와 뛰어난 의상 소화력, 똑같이 스모키 메이크업을 했음에도 ‘무섭기는커녕’ 아름답게 빛나는 이목구비.
어, 어디서 봤더라, 누구랑 닮았는데, 아! 배우 나탈리 포트만! 길게 늘어뜨린 짙은 머리칼에 깊게 들어간 눈, 자신감 넘치는 섹시한 눈빛이 똑 닮았다. 뇌가 그렇게 생각하면 눈은 더욱 그렇게 본다. 긴 머리칼은 그대로 앞머리 조금을 빼도, 특히 살랑이는 원피스를 입고 앞가르마에 정수리 양쪽으로 머리핀을 꼽고 피아노를 칠 때는 영락없이 나탈리다.
더욱 여성스럽고 매력적으로 변한 건 창법이다. 가수 거미 특유의 머스크 향취 도는 분위기는 그대로 간직하되 음색도 창법도 깔끔해졌다. 음색은 중성적 느낌이 사라지고 더욱 아름다워졌고, 창법은 걸쭉한 끈적임 대신 촉촉함이 배가 됐다. 강한 개성이 줄고 우주 만민의 귀와 목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노래가 됐다고 할까.
개인적 추정을 전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내가 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내면의 여성성이 충만하여 폭발하면서, 사람으로서 가수로서 거미의 모든 게 아름다워졌다. 보고 듣기에 턱턱 걸리는 허들, 거슬림이 없다.
모든 아티스트에게 있어 형식적 개성이 능사가 아니다. 모난 데 없이,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기란 너무나 어렵다. 가수 거미가 한층 완성도 높게 성장한 느낌, 국내 가창력 3대 여성 가수가 아니라 세계적 발라더로서 손색이 없는 유니버셜 싱어로서의 ‘보편성’에 한 발 더 다가갔음을 확인시키는 콘서트였다.
덧붙여, 함께한 밴드와 공연 제작진에게도 찬사를 보낸다. 밴드는 거미 음악의 수준을 충실히 보존해 주었고, 제작진은 ‘미디어아트’를 활용해 무대를 멋지게 꾸몄다.
관객 입장으로 보면, 가사를 알려주는 건 노래를 이해하고 공연을 즐기는 데 큰 도움이 되는데, 이번 거미 전국 투어 콘서트에서는 노래 가사가 미디어아트를 이용해 찬란하게 제공됐다. 노래 내용에 맞춰 글자가 연기처럼 사라지고 하고, 금빛 가루로 부서지기도 하고, SNS 메신저 대화창처럼 전달되기도 했다.
관객은 뮤지션과 제작진의 정성을 알아보고, 섬세한 노력에 감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