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
국민 분열 증폭 소재로 악용도 안될 일
정치권, 이를 계기로 극한 대립 자제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부산 일정 중 60대 남성으로부터 피습당했다. 예상치 못한 일에 여야 할 것 없이 "있어선 안 될 일이 벌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총선을 100일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제1야당 대표, 나아가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를 겨냥한 '테러'라는 점에서 충격은 쉽사리 가시지 않고 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 대표는 부산 강서구 가덕도 신공항 부지 현장 시찰을 마치고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던 중 지지자로 위장한 60대 남성 김모 씨가 휘두른 흉기에 왼쪽 목을 찔려 쓰러졌다. 이 대표는 의식은 있지만 출혈이 심한 상태로 부산대병원 외상센터로 실려갔다가, 경정맥 증상이 의심돼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고 그곳에서 수술을 받았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씨는 범행 당시 상의 재킷에 길이 18㎝ 흉기를 숨기고 있다가 꺼내 이 대표를 찔렀다. 김 씨는 지난해 인터넷에서 흉기를 구입했고 별다른 전과는 없었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력 정치인을 노린 피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건 2006년 5월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 당시의 일이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서울 신촌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지원유세를 위해 단상에 오르다 50대 남성이 휘두른 문구용 커터칼에 11㎝의 오른쪽 뺨 자상을 입고 봉합 수술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의 그 유명한 "대전은요?" 발언은 이 때 나왔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20대 대선 직전인 2022년 3월 6일 '표삿갓'이라는 명패를 단 60대 남성에 의해 둔기에 머리를 가격 당했다. 향후 경찰 조사에서 해당 남성은 구독자 100여명의 정치 유튜버로 드러났다. 송 전 대표는 인근 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봉합치료를 받은 후에도 유세에 나서는 등 '붕대 투혼'을 펼쳤다.
치안 안전을 자랑했던 일본에서도 총리를 겨냥한 테러가 두 차례나 있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지난해 4월 와카야마현에서 중의원 보궐선거 지원 연설 중 폭발물 피습을 당했다. 이 폭발물은 기시다 총리가 몸을 피한 지 50초 만에 터졌다. 이보다 9개월 전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어떤 이유라도 이 같은 테러는 정당화될 수 없다. 정치가 경쟁을 동반하는 일이라지만,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에서 이뤄져야 한다. 생각이 다르다고 벌이는 극단적인 행동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이 대표 피습 사건이 총선을 앞두고 국민 사이에 분열과 적의를 증폭시키는 소재로 악용되는 것도 안될 일이다. 당장 이 대표 피습 사건을 백색 테러(White Terror)로 의심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백색 테러는 좌파 정치인에 대한 극우·우익 인사 혹은 단체의 테러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암살 시도를 의미한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배후설'과 '자작극' 등 각종 음모론이 나돈 건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징후들로 볼 수 있다.
총선을 앞두고 진영 간 대립이 격화되면 또 다른 테러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은 이번 일을 계기로 진영 간 대립의 자양분이 되는 극한 대립, 상대방에 대한 갈라치기 등을 자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