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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천명한 "지방시대", '고향사랑기부제' 보면 길 잃은 느낌 [기자수첩-정치]


입력 2024.01.04 07:00 수정 2024.01.04 23:44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지자체, 자발적으로 고향사랑기부제

살려보려 해도 '벽' 넘기가 쉽지 않다

日, '라쿠텐' 등 민간에 문호 열었는데

'고향사랑e음' 독과점, 대체 언제까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7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차 민선 8기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행정안전부가 최근 광주광역시 동구와 전라남도 영암군 관계자들을 접촉했다고 한다. 광주 동구가 진행 중인 광주극장 보존 및 발달장애인 청소년 야구단을 돕기 위한 기부행위와, 전남 영암군의 공공산후조리원 개원 지원을 위한 기부행위에 대해서 각각 중단을 종용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행안부는 이들 2개 지방자치단체가 고향사랑기부금을 행안부의 독점 플랫폼 '고향사랑e음'이 아닌 민간 플랫폼을 이용해 기부 받은 행위가 위법이라며, 새해부터는 모금을 보류하도록 요청했다고 한다. 행안부 입장에서는 '요청'이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지자체 입장에서는 단순한 '요청'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사실이다.


행안부가 '위법'이라고 적시한 법적 근거는 고향사랑기부금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8조 1항에 있다. 시행령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고향사랑기부금의 모금·접수 업무를 지원하는) 정보시스템의 구축·운영 업무를 한국지역정보개발원에 위탁한다'고 돼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21년 정기국회에서 통과된 모법(母法)은 제8조 1항에서 '고향사랑기부금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지정한 금융기관에 납부하게 하거나, 정보시스템을 통한 전자결제·신용카드·전자자금이체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청사, 그밖의 공개된 장소에서 접수해야 한다'고 돼있다. 모법에서는 '그밖의 공개된 장소'에서 모금이 가능하다고 한껏 열어두고 있는데, 시행령에서 갑자기 단 하나의 쪽문으로 출입구를 좁힌 셈이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행안부의 독점 플랫폼 '고향사랑e음'에 시행령에 따른 '강제위탁'을 당하면서 분담금까지 내야 한다. 그렇다고 행안부 산하 기관인 한국지역정보개발원에서 독점 운영하는 '고향사랑e음'의 운영이 썩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다. 고객센터에는 시스템 오류를 지적하는 내용이 수천 건이고, 서버가 일시 다운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앞서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 과정에서 "고향사랑기부제 모금 실적이 저조한 것은 행안부의 불필요한 통제로 인한 것"이라며 "특히 단일 플랫폼 '고향사랑e음'만을 활용해야 하는 현재의 방식은 공급자 중심의 행정"이라고 질타했다.


'고향사랑e음'은 구축운영비 90억7000만원부터 각 지자체로부터 걷어 완성했다. 국민들은 원스톱으로 간편하게 고향에 기부하고 싶어 하는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독점 플랫폼을 지자체의 돈을 걷어 만들고, 그 운영 비용까지 지자체에 분담시키니 도대체 이 플랫폼은 누구의 노후와 일자리를 위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방시대"를 천명하며 중앙이 가진 권한을 지방에 화끈하게 이양하겠다고 했다.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에 대해서는 엄중 경고하기도 했다.


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고기동 차관은 지난해 10월 일본에 출장을 다녀왔다. 일본에서 '고향세' 제도를 정착시킨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고향세'도 도입 초기인 2008년부터 3~4년 동안은 기부 방식의 복잡성 때문에 모금액이 100억 엔 수준에 그쳤지만, 2012년 이후로 라쿠텐 등 민간 플랫폼이 뛰어들면서 활성화에 성공해 지난 2021년에는 모금액이 8300억 엔에 달했다.


"지방시대"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에 엄중 경고" 등을 외치는 대통령과 장·차관의 등잔 밑이 어두운 것일까. 윤 대통령과 내각이 천명한 "지방시대"의 첫걸음이 안개 속으로 빠져 길을 잃은 모양새라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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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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