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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김일성 동네도 아니고 강제로 관두라니"…보신탕집 상인들 '부글부글' [데일리안이 간다 1]


입력 2024.01.11 05:08 수정 2024.01.12 10:04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개 식용 금지법' 9일 국회 통과…2027년부터 사육·도살·유통·판매 전면 금지, 모두 처벌

상인들 "생계 업종인데 확실한 보상 해주지 않으면 절대 문 닫지 않을 것…3천만원은 지원해 줘야"

"내가 훔쳐다 파는 것도 아니고 손님 찾으니까 파는 음식…손님 80% 어르신, 그냥 둬도 사라져"

손님 "소고기·돼지고기 먹는 것은 문명적이고 개고기 먹는 것만 야만적인가"

서울 종로구 경동시장 골목. 보신탕 대신 영양탕이라는 간판을 걸고 영업 중이다.ⓒ데일리안 김하나 기자

'개 식용 금지'를 골자로 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앞으로 3년 뒤면 보신탕집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3년의 유예기간 동안 보신탕집 상인들의 생계 지원은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 수십년간 보신탕집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온 상인들은 전업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정부가 적절한 보상 방안은 마련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생존권을 박탈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개 식용 금지법(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3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 오는 2027년부터 개를 식용 목적으로 도살하거나 사육하는 행위 및 개를 원료로 조리하는 행위 그리고 가공한 식품을 유통하고 보신탕을 판매하는 행위까지 모두 처벌받게 된다.


10일 오전 11시께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골목. 이 곳 경동시장 보신탕 골목은 20년 전까지만 해도 복날뿐 아니라 평소에도 보신탕을 먹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였다. 당시만 해도 이 곳의 보신탕집은 15곳 이상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개를 식용의 대상에서 반려동물로 여기는 문화가 점점 자리 잡으면서 고유의 음식문화였던 보신탕집을 찾는 손님은 급격히 줄었다.


실제 이날 '57년 원조'라는 문구를 내건 한 보신탕집은 영업시작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사장 A씨는 "오늘 장사가 안 돼 안 나간다"며 "경기도 안좋고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골목길에 보신탕 전문점은 4~5곳밖에 남지 않았다. 보신탕 대신 삼계탕이나 흑염소탕, 영양탕 등으로 메뉴를 변경한 곳들이 많았고 아예 영업이 중단돼 창고로 쓰이는 곳도 있었다.


서울 종로구 경동시장 골목. 보신탕 대신 사철탕·영양탕이라는 간판을 걸고 영업 중이다.ⓒ데일리안 김하나 기자

17년 동안 보신탕집을 운영해온 최영훈(66)씨는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노력해서 밥 먹고 사는데 무슨 여기가 공산주의 김일성 동네도 아니고 강제로 무작정 관두라고 한다"며 "내가 왜 그 사람들 때문에 굶어야 하느냐"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최씨는 "생계 업종인데 정확하게 대책을 세워주고 얼마를 보상해준다는 말은 없다"며 "확실한 보상을 해주지 않으면 절대 문을 닫지 않을 것이다. 내가 훔쳐다 파는 것도 아니고 손님이 찾으니까 파는 음식이다. 계속 보신탕집을 운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업종을 바꾸려면 주방부터 싹 바꿔야 하는데 지원금 3000만원은 줘야 한다"며 "업종을 바꾼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서울 종로구 경동시장 골목. 영업 시간대에 문이 닫혀 있다.ⓒ데일리안 김하나 기자

28년간 보신탕집을 운영해온 이모(66)씨는 "가뜩이나 사람들이 없어 이미 매출이 50%나 줄었는데 '개 식용 금지법'까지 통과되니 갑자기 갈길 없이 막막해졌다"고 말했다. 이씨는 "우리는 부부가 단둘이 운영하면서 간신히 먹고 산다"며 "우리 전통 음식이다보니 손님의 80%는 어르신들이고 20%는 40대, 50대라 그냥 둬도 보신탕집은 자연스레 사라질텐데 굳이 법으로 금지까지 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이씨는 "손님들이 먹던 걸 못 먹게 하니 '이게 나라냐'라고 항의하는 분들도 꽤 있었다"며 "대한민국이 예전엔 밥 먹고 살기 힘든 나라였는데 오늘날 동물우선주의 운운하는 것은 다 배가 불러서 그런 것이라는 반응도 많았다"고 전했다.


종로 한 보신탕집을 찾은 김모(72)씨는 "시장경제에 맞지 않으면 알아서 자연히 사라질텐데 왜 법까지 만들어서 먹던 음식을 못 먹게 하느냐"며 "그럼 소고기는 왜 먹느냐. 예전 같으면 4년 동안 여물 먹여 키운 소를 잡아 아들, 딸 시집 장가 보냈다. 소는 도살장에 끌려가면서 눈물 뚝뚝 흘리며 우는데 소는 동물이 아니냐. 소와 돼지를 먹는 건 문명적이고 개를 먹는 것만 야만인가"라고 되물었다.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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