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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현의 ‘삼성 객관화’, 재도약 저력 될까 [기자수첩-산업IT]


입력 2024.01.19 11:59 수정 2024.01.19 13:24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챗GPT로 촉발된 AI 산업 열풍에 엔비디아·SK 가장 큰 수혜

기로에 선 삼성 반도체…문제 진단과 대안 제시로 갈 길 보여줘

CES 전시장을 둘러보는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SNS 캡처

나흘 전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9~12일(현지시간) 열렸던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4'에 대한 소회였다. CES 화두가 AI(인공지능)이었던 만큼 'AI 박람회'를 방불케한 글로벌 무대가 새롭게 다가왔을 것이다.


CES를 배경으로 두고 있지만, 그의 글은 전부 삼성전자를 관통한다. "챗GPT가 등장하고 퍼블릭 클라우드 업체들이 노멀 서버 투자를 줄이고 그래픽처리장치 서버에 투자를 늘렸을 때 한정된 예산 탓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노멀 서버 투자가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챗GPT로 촉발된 '생성형 AI' 열풍에 GPU/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가 급증했던 지난해, 삼성이 어떤 기로에 있었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경 사장은 현상에 대한 원인도 정확하게 짚었다. "컴퓨팅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 것이다. 노멀 서버는 전통적인 리트리벌 시스템(이미 존재하는 데이터에서 특정 정보를 찾는)을 위한 것인데, 컴퓨팅 환경이 주어진 입력에 새로운 정보를 생성하는 제너레티브(생성형) 시스템으로 변한 것이다"라고 했다. 이 같은 패러다임 변화는 결과적으로 HBM, GPU/가속기, 2.5D 패키지의 흥행으로 이어졌다.


실제 글로벌 전역을 강타한 반도체 부진에서도, AI를 학습시키는 고성능 GPU와 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HBM 수요는 유일하게 성장했다. 생성형 AI라는 다소 낯선 단어의 등장에 처음 시장의 반응은 뜨듯미지근했다. HBM 비중은 전체 D램의 1.5%에 불과하다며 별로 큰 의미를 두지않았고, AI 열풍에 따른 일종의 반짝 이벤트로 치부했다.


그러나 이런 예상이 무색하게도 GPU/HBM 판매는 파죽지세로 증가했고 GPU 강자인 엔비디아와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는 SK하이닉스는 시장지배력을 확대했다. 앞으로 5년간 연평균 AI 서버 성장률은 40% 이상, HBM은 60~80%라고 하니 반도체 기업에게 HBM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특히 가장 큰 수혜를 보고 있는 엔비디아를 주목할 만하다. 'AI 수요'에 지난해 반도체 기업 매출 순위에서 5위를 기록, 무려 7계단을 뛰어올랐다. 작년 전체 매출이 감소한 상황에서 이런 성장세를 보인 곳은 엔비디아가 유일하다. 1~3위인 TSMC, 인텔, 삼성전자를 넘어서는 것도 시간 문제로 보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일찌감치 CPU(중앙처리장치) 대신 GPU로 승부를 걸었고, 쿠다(CUDA)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소프트웨어 생태계 확장에 나섰기 때문이다.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는 GPU 장점이 AI용 반도체 수요로 이어졌고, 'AI 산업' 개화가 불을 댕겼다. 엔비디아는 게임, 자율주행차, 로봇, 신약 등 첨단 기술이 요구되는 시장에 과감한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등 계속해서 성공을 갈망하고 있다.


이쯤해서 경 사장의 글은 작년 삼성전자가 어떤 태도를 취했었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HBM을 앞세워 엔비디아와 강한 연대를 구축한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 DS 부문 보다 먼저 전사 흑자전환이 유력하다. 낸드 부진에도 그 이상을 D램이 만회하기에 가능한 결과다. 차세대 HBM 개발과 엔비디아와 같은 탄탄한 고객 확보전에서 밀린 것이 이렇듯 삼성에게 뼈아픈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이대로 반도체 시장에서 밀리고 말 것인가. 삼성에게는 반전 카드가 전혀 없는가. 경 사장의 글을 마저 읽어보자. "더 고용량의 HBM, 더 빠른 인터페이스, 지능형 반도체(PIM) HBM, 커스터마이즈 버퍼 HBM 등 메모리와 컴퓨트 사이의 거리를 줄이려는 시도가 지속될 것이다. 서버에서 시작된 이 시도는 PC로 스마트폰으로 진화해 갈 것이다. 새로운 기회가 온 것이다."


문제를 제대로 알아야 처방이 나오듯, 경 사장은 CES 무대에서 AI 가능성을 직접 경험한 뒤 삼성에 진단을 내렸다. 그의 말대로 AI는 전 영역으로 확장중이다. 이 과정에서 한층 진화한 맞춤형 반도체를 개발하고, 발 빠르게 시장에 내놓는 일이 중요하다.


삼성은 CES에서 12나노급 32Gb DDR5, HBM3e, CXL 메모리 모듈 D램 등을 선보였다. 모두 차세대 메모리 제품 및 패키지 기술들로 AI용을 정조준했다. 주요 빅테크와 손잡고 이 보다 진화한 특화 반도체도 추진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이 각성한 만큼 올해 AI 반도체 시장은 또 다른 격전이 예상된다.


냉철한 진단과 더불어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한 경 사장의 글을 통해 위기에 처한 회사에서 리더의 역할을 새삼 깨닫게 된다. 10조원을 넘어서는 반도체 적자, 산업 패러다임 변화, 경쟁회사 부상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길은 열려 있다. 경 사장의 말대로 지금은 시작일 뿐이다. 작년을 반면교사 삼아 거듭날 삼성의 올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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