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출장 논란 휩싸인 포스코홀딩스…'자승자박' 결과 낳아
외풍 차단?…'순혈주의' 깨고 외부인사로 채운 '파이널 리스트'
후추위, 회장 인선 작업 계속 추진…추락한 신뢰성·공정성 확보 관건
“아무래도 외부인사가 포스코 회장으로 선임되긴 어려울 겁니다. 그룹의 조직 문화와 주력 사업인 철강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할 거고, 직원들도 내부에서 새로운 회장이 선출되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라 생각할테니까요.”
불과 몇 개월 전 만해도 포스코의 한 내부관계자는 포스코 CEO 선임 절차와 관련해 이 의견을 내놨다. 포스코의 순혈주의가 얼마나 견고한 지를 깨닫게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내부 인사의 정점인 최정우 회장도 다름없을 것이다. 최 회장의 측근으로 뒤덮인 외부 인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들 모두 내심 내부에서 새로운 회장이 선출되길 원했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는 이들은 외부로부터 새 CEO를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최 회장과 사외이사 전원으로 구성된 포스코 CEO후보추천위원회가 자충수를 둔 탓이다.
최근 논란이 불거진 캐나다, 중국 등지에서 이뤄졌던 해외 호화 출장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이들의 스텝은 제대로 꼬였다. 시민단체인 포스코지주사포항이전범시민대책위원회는 후추위가 가동되는 와중에 최 회장 등 포스코홀딩스 사내이사와 사내이사, 해외법인장 등 16명을 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들이 해외 이사회를 명목으로 골프, 관광 등을 즐기면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단 것이다.
앞서 포스코홀딩스 이사회는 지난해 8월 5박 7일간 캐나다 현지에서 이사회를 열었는데, 정작 이사회 일정은 하루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부분 현지에서 투어와 트레킹 등을 즐겼으며, 캐나다 이사회를 위해 지출된 비용만은 총 6억8000만원에 달했다.
그야말로 호화 출장이었다. 5성급 호텔로 참석자 1인당 하루 평균 숙박비는 175만원. 미슐랭 식당과 최고급 프랑스 와인 등으로 이뤄진 식대에는 총 1억원을 썼다. 도시 간 이동을 위해서 전세기와 전세 헬기도 이용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비용은 포스코홀딩스와 자회사인 포스코, 포스칸(POSCO-Canada)에서 나눠 지출했다.
중국 베이징(北京)에서도 최고급 호텔에 숙박하고 백두산 송이버섯, 러시아산 털게, 최고급 와인을 곁들인 고가의 식사를 벌였다. 백두산 관광을 위해 별도의 전세기도 이용했다고도 전해진다.
이때부터 포스코홀딩스의 차기 회장 선정을 위한 물밑 작업이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이 적잖다. 당시 출장이 최 회장이 사외이사들을 접대하기 위해 이뤄졌단 의혹이 나오고 있어서다. 구체적으로는 ‘3연임’에 대한 의지는 있었으나, 확신이 없던 최 회장이 일명 ‘최정우 라인’에 속한 인물에 회장 자리를 물려주길 원해 이 같은 자리를 마련했단 전언이다. 즉, 최 회장이 3연임에 실패할 경우 사외이사들이 그가 선호하는 내부 후보를 대신 밀어주길 원했단 것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사태로 결국 차기회장 ‘파이널 리스트’는 외부인사로 빽빽이 채워졌다. 총 6명 중 외부인사만 5명이다. 권영수 전 부회장을 비롯, 김동섭 현 한국석유공사 사장, 김지용 현 포스코홀딩스 미래연구원 원장(사장), 우유철 전 현대제철 부회장, 장인화 전 포스코 사장, 전중선 전 포스코홀딩스 사장 등이다. 김지용 원장은 캐나다 호화 이사회와 관련해서는 고발당했지만, 사내이사에 포함되기 이전 이뤄진 2019년 중국 출장 관련 고발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내부 후보군 중에서는 최 회장과 연결 고리가 약한 축에 속한다.
이 모두 본인들의 ‘입맛’에 맞춰 차기 회장을 고르려 했던 ‘욕심’때문이지 않았을까. 최 회장은 그간 언론을 피하면서 까지 연임 의사에 대해 입을 꾹 닫고, 사외이사진은 룰을 뜯어 고쳐 현 회장 연임 의사 표명과 상관없이 선임 절차를 개시했다. 또 파이널 리스트 공개 전까지 그 누구도 후보군에 누가 이름을 올렸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어느 대목에서도 CEO 선임 절차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단 것을 체감하기 힘들었다. 또 '이사회의 호화 출장' 사태는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후추위의 신뢰성에 대한 의심의 불을 제대로 지폈다.
그럼에도 후추위는 회장 인선 작업을 주관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단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물론 후추위 입장에서는 재계 5위 기업인 포스코스룹을 이끌 차기 CEO 선임이라는 중책을 맡아 놓고 불미스러운 사태에 엮여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손을 놓았다는 불명예를 안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외풍에 밀려난 모양새는 더욱 굴욕적인 일일 것이다.
후추위가 기어코 선임 절차를 계획대로 무사히 마치고 싶다면, 추락한 신뢰성과 공정성은 반드시 되찾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제는 외부 배경과 ‘정치질’ 없이 포스코그룹에 진정으로 적합한 인물을 선택하는 것만이 본인들의 과오를 만회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