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 돌파
김고은은 20대 남녀 불문하고 또래 배우들 사이에서 장르와 매체를 가리지 않고 캐릭터를 꼭꼭 씹어 소화하는 배우다. '은교'로 데뷔한 이후 매 작품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호평을 받아온 김고은은 첫 도전한 오컬트 장르 영화 '파묘'에서도 대중의 기대를 만족으로 채웠다. 젊은 무당 화림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그렇다고 부담에 얽매여 있지 않았다. 걱정하기 보다는 자신이 해야 할 것을 찾아내 '진짜처럼 보이는 것'에 몰두했다.
'파묘'가 개봉 10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신드롬급 인기를 구가하는 이유 중 하나로 김고은의 무당 연기가 거론되는 이유 중 하나다.
"처음 보는 흥행 속도라 신기하고 감개무량해요. 개인적으로 오컬트 장르를 좋아해요. 제가 출연하지 않았더라도 극장에서 봤을 것 같아요. 장재현 감독이 오컬트 영화를 잘 만드시는 분이라 장르로 기대감이 생긴 건 아닐까 싶네요. 그냥 계속 이대로 쭉 잘 됐으면 좋겠어요.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데 환호도 많이 해주시고 긍정적인 기운을 많이 뿜어주셔서 그 점도 너무 감사해요."
오컬트 장르를 좋아하는 김고은은, 장재현 감독 작품 자체에 관심이 많았다. 단편 '12번째 보조사제'는 한국 오컬트 영화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영화의 등장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 장재현 감독의 차기작 출연 제안은 기쁘게 다가왔다.
"'12번째 보조사제'를 봤을 땐 '단편인데 어떻게 이렇게 만들 수 있지?' 싶어서 약간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단편을 장편으로 만든다는 기사를 봤을 땐 관객으로서 장편으로 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죠. 그래서 '검은 사제들'은 제 돈 주고 극장 가서 봤어요. 너무 몰입감 있게 잘 만드셨더라고요. '사바하'도 시사회에 초청돼 봤는데 역시 좋더라고요. 그렇게 어떤 한 지점의 개척을 한 장재현 감독을 향한 애정이 있었어요. 개척하는 과정에 설득의 과정과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그걸 해내는 것에 대한 존경심도 있어요. '파묘' 시나리오는 봤을 때부터 이런 소재를 쓰기 위해 얕게 공부한 느낌이 아니라 정말 공을 많이 들여 완성했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 만큼 이야기가 영화에 잘 담긴 것 같아요."
김고은은 '파묘' 제작발표회 당시, '파묘' 출연을 권유하는 박정민의 연락으로 시나리오를 먼저 읽어봤다고 밝힌 바 있다.
"(박) 정민 오빠는 똑똑하고 많은 부분에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정민 오빠가 이야기하는 것들은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런 사람이 촬영 중에 전화 와서 본격적으로 말을 하니, 진심이다란 생각에 귀 기울여 들었죠."
'파묘'는 개봉 전, 김고은의 대살굿 장면이 예고편을 통해 공개되며 많은 화제를 모았다. 실제로 영화를 본 관객들은 '파묘'의 하이라이트를 김고은의 굿 연기를 꼽고 있다.
"사실 저는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젊은 무속인인 화림이 얼마나 프로페셔널한 지 관객들에게 믿음을 심어줘야 하는 장면이죠. 초반에 그렇게 굿 장면을 넣은 게 관객들이 믿고 따라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굿 하는 장면을 위해 영상도 많이 보고 실제로도 많이 보러 다녔어요. 그런데 대살굿은 너무 터프해서 잘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건 실제로 볼 수는 없었어요. 무당 선생님들 각자 굿 스타일이 달라 그 지점도 많이 참고 했고요. "
영화에서는 대살굿, 혼 부르기, 도깨비 놀이 총 세 번의 굿 장면이 등장한다. 김고은은 굿의 목적에 따라 다른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굿은 혼을 달래고 원한을 풀어주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한국 정서인 것 같아요. 대살굿의 경우 방어를 하는 굿이에요. 일꾼들을 방어해 주고 대신 돼지의 살을 치는 굿이기에 그 굿을 할 때는 혼신의 힘을 다 해야 했어요. 혼 부르기는 대신 울어줄 수 있을 만큼 한을 달래주듯이 경문을 외워야 했어요. 도깨비 놀이 때는 속여야 해서 봉길에게 집중하지만 말투나 톤을 일상과 가깝게 하려고 했죠."
그는 경문을 외우는 건 꽤나 고생했다고 털어놨다. 무당마다 각자 경문을 외우는 방법이나 음, 톤이 모두 달라 갈피가 서지 않았다. 자신의 스타일을 빨리 찾아내 연습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선생님들이 경문을 외울 때 음을 타거나 톤이 너무 멋있어서 공연을 보는 것 같아요. 음을 타는 건 애드리브라고 하더라고요. 하시는 분들마다 달라서 쉽지 않아 고민하다 제가 선택한 방법은 선생님께 3번만 경문을 외워달라고 부탁했어요. 그걸 제가 녹음해서 멋있게 탈 수 있는 음의 방향과 톤을 통째로 외웠어요."
화림이 무당으로서 보여주는 장면들과 함께 신경 쓴 지점은 디테일이다. 김고은은 인물의 프로페셔널함은 사소한 것들로 관객을 믿게 한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다.
"작은 것들에도 집착을 했어요. 상덕에게 반존대를 한다든지, 굿을 준비할 때 몸을 턴다든지, 깃발을 뽑을 때의 동작들에 집중하려고 했죠. 아기를 진단할 때 손에다 대고 휘파람을 부는 것도, 선생님께 수시로 영상통화로 물어보고 만들었어요. 만약에 만들었는데 '저런 거 안 하는데' 하면 안되니까 확인 받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었어요."
'파묘' 촬영 준비는 tvN '작은 아씨들' 촬영과 겹쳤다. 휴차 때마다 무속인을 찾아가 화림을 연기하기 위한 기본적인 것들을 배우려 했다. 그 중 하나는 무속인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의 일상에 스며드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어떻게 이 길을 가게 됐는지, 제자 분들도 계셔서 각각의 삶의 에피소드 등을 들었어요. 당시 어떤 심장이었는지 생각들을 알고 싶었어요. 전사에도 화림이 봉길이가 신 받으러 찾아왔을 때 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부분 무속인 분들 마음 안에는 신 받으러 오는 분들을 향한 안타까움이 있더라고요. 그런 것들에 대한 이해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았어요."
장재현 감독은 김고은의 진가가 발휘되는 건 후반부라고 언급한 바 있다. 장 감독은 화림이 '험한 것'의 존재 앞에서 복합적인 감정을 표정과 함께 일본어로 전달해야 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김고은은 매번 감탄을 터지게 만들었다고 칭찬했다.
"사실 저는 일본어를 전혀 몰라요. '영웅' 때는 원어민처럼 해야 했지만 한, 두 마디로 모두 대사가 짧았어요. 그때는 원어민처럼 하려고 일본어 선생님의 미묘한 것들까지 다 외우고 따라 했어요. 그런데 화림은 원어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는 집착을 안 했고 뜻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감정적으로 더 깊게 다가갈 수 있었죠."
'파묘'의 또 하나의 재미는 최민식, 유해진, 이도현 등 일명 '묘벤져스'의 케미스트리다. 김고은은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 맞을 때 오는 희열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배우로, '파묘'에서는 짜릿함을 꽤나 자주 느끼며 연기하는 재미와 행복을 확인 받았다.
"최민식 선배님은 현장의 중심을 잡고 계시는 것 자체가 든든했죠. 진지한 영화라고 해서 촬영장에서까지 그러진 않았어요. 에너지를 확 올려 촬영해야 하는 장면에서도 분위기가 쳐져 있지 않으니 그 에너지를 받아 연기할 수 있었어요. 과감하게 생각하는 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선배님께 만들어주신 게 아닐까 싶어요. 유해진 선배님은 정말 재미있으세요. 저도 한 유머러스함 하지만, 선배님은 차원이 달라요. 도현이도 바쁘고 힘들었을 텐데 내색 하지 않고 잘해줬어요. 그 외의 것들이 어렵기는 했지만 이 힘듦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주는 희열이 있어서 좋았어요."
김고은이 정의 내린 '파묘'는 '사람을 다루는 영화'다.
"어떠한 잔재에 대해 말하고 있기도 하고요. 이 모든 것들이 사실 서로 다른 신념들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니까요. '파묘' 보다 '사바하' 속편 이야기를 하고 계시던데요?(웃음) 만약에 '파묘' 속편 하실 거라면 제가 체력 있을 때 하셨으면 좋겠네요."
김고은은 매번 과거의 자신을 뛰어넘는 연기를 보여준다. 우리가 그를 떠올리며 갖는 이미지를 식상하지 않게 표현하면서 '은교', '도깨비', '작은 아씨들', '영웅' 등 많은 인생작들을 만들어냈다. 이에 신인 시절보다 갖는 책임감이 커졌다.
"제가 맡는 캐릭터들이 누군가는 일상적인 인물이라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는 지점이 있겠지만 저는 받을 때마다 다른 사람 같고 새롭고 어려워요. 그냥 이걸 잘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뿐이죠. 전작에 대한 고려는 크게 하지 않아요. 부담감보다는 책임감이 생기고 있어요. 저를 캐스팅하는 분들의 기대치라는 게 있으니까요. 해내야 하는 지점들이 넓어진다는 생각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연기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