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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은 내정?”…허상뿐인 뮤지컬 오디션의 의미 [뮤지컬 세대교체②]


입력 2024.03.20 06:53 수정 2024.03.20 06:53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리스크' 떠안기 무서운 뮤지컬 제작사 공개 오디션 기피

"폐쇄적인 비공개 오디션...장기 정상 위해 변화 필요"

“‘전 배역 오디션’이라는 게 사실 허상에 불과하고 생각하죠.”


다수의 대극장 무대에서 앙상블로 활약한 배우 A씨의 말이다. 10여 명의 배우들에게 오디션에 대한 인식을 물었더니 대부분 같은 답이 돌아왔다. 이들은 “이미 대부분의 주연급 캐스팅은 정해져 있다고 본다. 사실상 형식에 불과할 뿐, 전 배역 오디션이라고 하지만 ‘조·단역 오디션’ ‘앙상블 오디션’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tvN

뮤지컬 시장에서는 누군가의 추천이나 소개가 없으면 정보조차 알 수 없는 비공개 오디션으로 배역을 뽑는 작품이 대다수다. 기존 인맥을 통해 유명 메인 배우들을 섭외하고, 이를 통해 공연에 대한 투자를 받아야 하니 자연스럽게 오디션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제작사에선 공개 오디션을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공개 오디션은 새로운 배우를 발굴할 수 있다는 장점과 동시에 흥행의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는 리스크도 따라온다”면서 “더해 급박하게 돌아가는 시장의 특성상 공개 오디션은 많은 시간과 노력 등이 동반된다. 그런데 이미 입증된 배우들을 중심으로 한 비공개 오디션은 이런 소모적인 과정을 생략할 수 있어 더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 발전에 있어서 비공개 오디션이 얼마나 폐쇄적인 시스템인지에 대해서는 제작사도 공감했다. 또 다른 공연 관계자는 “신인들에게 오디션이라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면 뮤지컬 시장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 현재도 작품은 다른데 주조연은 물론 앙상블까지도 그 나물에 그 밥인 경우가 많다”면서 “단기적인 성공도 중요하지만, 뮤지컬 산업이 더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업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뮤지컬 지망생 B씨는 “최근에는 그나마 공개 오디션 정보가 뜨긴 했지만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정보조차 찾기 힘들 만큼 공개 오디션이 없었다. 한 해에 진행되는 공개 오디션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결국 지망생이나 인맥이 없는 신인 배우의 경우 무대에 오를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하는 셈”이라고 하소연했다.


뮤지컬 '시스터 액트' 오디션 현장 ⓒEMK뮤지컬컴퍼니

올해는 몇몇 작품이 공개 오디션을 통해 새로운 얼굴을 찾아 나선 상황이다. 현재 EMK뮤지컬컴퍼니는 ‘웃는 남자’ ‘팬텀’, 에이콤은 ‘명성황후’ ‘영웅’, 신시컴퍼니는 ‘원스’ ‘시카고’, 홍컴퍼니는 ‘미아 파밀리아’, HJ컬쳐는 ‘파가니니’, 오디컴퍼니는 ‘일 테노레’ 등의 공개 오디션을 진행했거나, 예정하고 있다.


문제는 ‘전 배역 공개 오디션’이라고 했지만, 이 안에서도 이미 주인공은 내정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 오디션에 지원한 뮤지컬 배우 C씨는 “주조연, 앙상블까지 전 배역 오디션을 진행하다고 해서 참여했는데 이미 주인공 역할은 내정되어 있었던 상황”이라며 “다른 제작사의 경우 ‘앙상블(스윙)’ 공개 오디션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전 배역이라고 써놓고 눈치껏, 알아서 앙상블로 지원하길 바랐던 것이 아닌지 생각이 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배우 역시 “수백 명의 지원자가 몰린 오디션장에서 주연이나 비중 있는 조연까지 모두 내정되어 있어 앙상블 정도만 오디션을 통해 뽑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나마 해외 프로덕션이 함께 하는 경우는 내정된 배우 없이 전 배역 오디션을 진행한다. 앙상블과 조연은 물론 주연까지 모두 오디션을 반드시 거쳐 작품에 맞는 배우를 뽑는 해외 시스템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경우도 사전에 내정된 캐스팅 없이 철저히 오디션만으로 배우를 선발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제작사 측은 “이번 시즌 역시 주연과 조연은 물론, 앙상블, 아역배우까지 노래, 연기뿐 아니라 내적 이미지까지 모두 포함하여 캐릭터에 가장 근접한 배우를 찾기 위해 까다롭고 철저한 오디션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주연 배우로 발탁된 민우혁 역시 “총 다섯 차례의 오디션을 8개월에 걸쳐 봤다”며 치열했던 당시 상황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단순히 수익을 내는 것 이상으로 시장의 내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선 캐릭터의 나이 등 외적인 부분부터 그 캐릭터의 특성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돈 잘 버는 배우’보다 ‘작품과 잘 맞는 배우’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작품, 캐릭터는 고려하지 않고 유명 배우를 선점하려는 소모적인 경쟁이 멈춰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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