華爲, 지난해 출시 메이트60 프로에 자체개발 7나노급 칩 탑재
‘반도체 자립’ 부푼 中 소비자들 구매에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가
4월 공개 예정 P70시리즈에 7나노급 반도체 장착 여부에 관심
美 상무부, 국가안보 위해 “가장 강력한 조치 취하겠다” 으름장
중국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華爲)가 내달 새로운 5세대 이동통신(5G) 스마트폰을 선보일 것으로 알려졌다. 미·중 반도체전쟁 중심에 있는 화웨이가 이번에도 자체 개발한 첨단 반도체를 탑재해 중국의 반도체 자립을 증명할 것인지에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화웨이 공급업체들은 이달 중 화웨이에 P70시리즈 스마트폰을 공급하기 시작했다고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 산하 증권시보(證券時報)가 지난 25일 보도했다. 화웨이가 P70시리즈 공식 출시일을 아직 예고하지 않았지만, 이미 물량 확보에 나서고 있는 만큼 4월 중에는 공개될 것이라고 시장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중국 소셜미디어(SNS) 웨이보(微博·중국판 엑스)에 따르면 화웨이는 4월2일 중국에서 신제품 발표 이벤트를 열고 P70시리즈를 공개할 예정이다. 화웨이는 삼성전자가 상반기에 갤럭시 S시리즈, 하반기에 Z시리즈를 선보이는 것과 유사하게 상반기엔 P시리즈, 하반기에는 메이트(Mate) 시리즈를 각각 출시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2019년 고성능 반도체 조달을 막은데 이어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역시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를 지속하면서 화웨이는 지난 3년여간 신형 5G 스마트폰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8월 스마트폰 시장에 복귀하면서 최신 프리미엄폰 메이트60 프로를 출시했다.
특히 화웨이가 내놓은 메이트60 프로에는 자체 개발한 첨단 반도체 기린9000S를 장착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화웨이가 미국의 촘촘히 쳐놓은 그물망 수출통제 조치를 뜷어내고 자체 7나노미터(nm·10억분의 1m)급 공정이 적용된 5G칩을 사용한 것이다.
통상적으로 7나노급 공정을 구현하기 위해선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등 첨단 반도체 생산장비를 갖춰야 한다. 세계 유일의 EUV 생산업체인 네덜란드 ASML은 2022년부터 화웨이에 EUV 노광장비 수출을 중단했다. 이 때문에 네덜란드의 수출통제 조치가 발효되기 전에 구입한 장비로 제조된 칩일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이로써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 대만의 타이완지티뎬루(臺灣積體電路·TSMC)나 삼성전자 수준의 기업이 만들어낼 수 있는 5G칩을 자체 생산해 선진국과의 반도체 기술 격차를 좁혔다. 2019년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추가되면서 화웨이의 스마트폰 사업이 수년간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란듯이 첨단 애플리케이션(앱) 프로세서를 시장에 출시한 것이다.
이 ‘사건’은 결국 미국의 우려를 증폭시켰다. 미 정부는 "7나노급으로 추정되는 화웨이 칩 제조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한 발 더 나아가 "우리 국가안보를 위해 가능한 가장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여기에 가세해 화웨이와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중신궈지(中芯國際·SMIC)의 미국 공급업체에 대한 접근을 완전히 차단할 것을 관련 당국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급해진 미 정부는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내 비밀 반도체 네트워크를 제재하기 위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미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화웨이와 관련된 여러 중국 반도체 회사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해당 업체들이 비밀 네트워크를 형성해 화웨이의 반도체 개발을 돕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력 제재 대상 업체에는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창신춘추(長鑫存儲·CXMT)와 칭다오신언(靑島芯恩·Qingdao Sien),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인 선전(深圳) 펑신쉬지수(鵬新旭技術·Shenzhen Pensun Technology) 선전 성웨이쉬지수(昇維旭技術·SwaySure) 등이 이름을 올렸다.
화웨이가 지난해 출시한 메이트60 프로에 장착된 7나노급 반도체를 생산한 기업들이 신규 제재 명단에 포함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들 중 대부분은 지난해 미국반도체산업협회의 발표대로 화웨이가 인수한 곳이거나 협력업체인 것으로 확인됐다.
바이든 정부가 화웨이 협력사를 제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중국 정부는 "전형적인 경제 횡포 관행"이라며 발끈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미국의 제재가 이뤄진다면 중국 기업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조치에 나서겠다며 강경대응 방침을 강력히 시사했다.
허야둥(何亞東) 상무부 대변인은 21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경제·무역·과학기술 문제를 정치화하고 무기화하는 데 항상 반대해 왔다"며 "지난 몇 년간 미국은 수출 통제 조치를 남용하고 불합리한 제재를 통해 중국 기업을 압박하고 글로벌 반도체 산업망과 공급망을 심각하게 교란·훼손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 대변인은 이어 "미국이 국가 역량을 동원해 지속해서 화웨이를 압박하면서 소위 관련성이 있다는 이유로 더 많은 중국 기업에 제재를 가한다면 "국제경제 무역규칙을 위반하고 경제무역의 지속성을 손상시켜 국제경제와 무역계의 멸시를 받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중국 기업의 정당한 권익 보호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도체 자립’이라는 호재를 등에 업은 메이트60 프로는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궈차오(國潮·애국주의 소비) 열풍을 일으키며 불티나게 팔렸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첫 6주 동안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 스마트폰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6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애플의 판매량이 24%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이에 따라 화웨이는 지난해 4분기 중국에서 점유율이 크게 상승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DC 보고서에 따르면 애플의 중국 시장 점유율(20%)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1% 감소한 반면 화웨이는 출하량이 36.2%나 폭증해 점유율이 13.9%로 껑충 뛰며 순위권에 진입했다.
메이트60 프로 등 스마트폰의 판매 호조로 지난해 실적도 대폭 개선됐다. 화웨이는 지난해 매출액 7000억 위안을 기록해 전년보다 9%가량 증가했다. 후허우쿤(胡厚崑) 화웨이 순환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수년간의 노력 끝에 우리는 혹독한 시험을 견뎌냈다”며 “2023년에는 전년보다 9% 가까이 증기한 7000억 위안 이상의 매출을 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화웨이 매출액 규모는 2020년 8914억 위안으로 정점을 찍은 뒤 미국의 전방위적인 제재가 시작되며 2021년 6368억 위안으로 28.6% 곤두박질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음달에 공개 예정인 화웨이 P70시리즈에 대한 시장 관심도 벌써부터 후끈 달아올랐다. P70시리즈에도 메이트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중국 자체 개발 반도체인 기린9000S이 탑재될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화웨이 P70시리즈는 기본 모델과 P70프로, P70프로+, P70아트 모델 등 4가지 버전으로 출시될 전망이다. 메인 카메라엔 1인치 센서가 탑재되며 5000만 화소 초광각 렌즈 등이 적용될 것으로 전해졌다. 화웨이가 자체 개발한 생성형 인공지능(AI) 모델 '판구'를 활용한 촬영기술도 내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모두 중국 중신궈지가 7나노급 공정으로 제조하는 기린 9000S 칩으로 구동될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더방(德邦)증권은 "P70 시리즈 제품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며 특히 카메라 기술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P70 시리즈가 출시되면 화웨이는 중국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확대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애플 전문 분석가’로 알려진 궈밍치(郭明錤) 톈펑(天風)국제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P70 시리즈의 판매량이 230% 증가해 1300만~1500만대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