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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떠나가는 푸바오를 보고 울었을까 [기자수첩-국제]


입력 2024.04.25 07:44 수정 2024.04.25 09:22        정인균 기자 (Ingyun@dailian.co.kr)

눈물 흘리는 푸바오 팬들, 유난일까?

20년 전 실패했던 번식, 어떻게 성공했나


지난 2020년 7월 20일 아기 판다 푸바오가 태어나 울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에 6000여명의 인파가 몰렸다. 국내에서 자연번식으로 태어난 첫 판다인 푸바오가 중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사육사가 작별 편지를 낭독한 뒤 트럭이 푸바오를 싣고 떠나가자 몇몇 팬들은 조용히 눈물을 훔쳤고 일부는 대성통곡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는 팬들이 이해가 안 된다고 했고, 어떤 이는 푸바오를 직접 키우지도 않은 사람들이 유난이라며 비아냥대기도 했다.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그들의 말대로 그래 봤자 수천 마리의 판다 곰 중 하나이고 팬들이 단 한 번도 만져 본 적 없는 짐승일 뿐이다. 대체 무엇이 그토록 감동스럽다는 것일까.


이들이 느낀 감동은 지난 2020년 8월 미국에서 인공 수정을 통해 태어난 아기 판다 ‘샤오치지’ 이야기를 취재하며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샤오치지가 태어난 미국 워싱턴DC의 한 동물원 관계자는 당시 한 달 전 태어난 푸바오를 언급하며 “나는 수십년 동안 여러 동물원에서 근무했다. 자연 번식으로 판다가 태어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나조차도 본적 없는 경험”이라고 전했다.


그의 말대로 중국을 제외하고 판다 번식에 성공한 나라는 독일,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전 세계에서 12개국에 불과하다. 특히 자연 번식에 성공한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6개국 뿐이다. 영국은 여덟 차례 판다 번식을 시도하다 실패한 뒤 지난해 판다를 중국에 반환한 바 있다. 판다는 발정기가 짧고 까다로운 성격 탓에 번식이 힘들뿐더러 기껏 태어난 새끼 판다의 생존률도 낮은 편이다.


지난 3일 오전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장미원에서 푸바오를 실은 특수차량이 공항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 판다가 한국에서 태어난 후 건강하게 자라 중국으로 돌아간 것이다. 푸바오를 키운 에버랜드와 여기에 꾸준히 투자한 삼성의 브랜드가치가 상승한 것은 둘째치고, 판다 보전을 연구하는 나라들 사이에서 대한민국의 평판은 급격히 상승했다고 한다.


내가 푸바오에 감동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약 20년 전에도 판다 번식을 시도한 바 있다. 지난 1993년 중국 정부는 한중수교를 기념해 처음으로 한국에 판다 밍밍과 리리의 임대를 허가했고 이듬해 두 판다는 에버랜드의 전신인 용인 자연농원에 도착했다.


당시에도 자연농원 측은 이들의 교미를 성사시키기 위해 수년간 노력했다. 그러나 기다리던 새끼 판다는 태어나지 않았고 1998년 한국에 IMF 사태가 터져 이들을 중국에 반환했다. 심지어 반환 후, 한국에 왔던 판다 두 마리가 모두 암컷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판다를 키울 돈도, 판다의 성별을 구별할 기술도 갖추지 못했던 당시 한국은 허무한 이유로 번식에 실패하고 판다를 반환했던 셈이다.


지난 2021년 유엔이 수십년 만에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인정했다. 경제 규모와 국제적 위상을 반영했다고 한다. 하지만 체감이 잘 안된다. 집값과 물가가 급등해 날이 갈수록 삶의 여유가 없어지고 있고, 정치권은 웬만한 개발도상국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것 같다.


다만 푸바오의 탄생만은 우리가 20년 전보다 더 나은 사회가 됐다고 말해준다. 우리나라는 과거와는 달리 판다 여러 마리를 키울 경제적 형편이 됐고, 판다의 까다로운 번식 조건을 맞출 수 있을만큼 진보된 기술을 확보했다. 우리 사회가 옳은 방향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의미 아닐까.

정인균 기자 (Ingyun@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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