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별 순이익 감소폭 최대…10대그룹 중 유일 1조 미만
계열사 수 가장 많은 219개…33개 늘고 12개 사라지는 등 변동폭도 최대
최태원 회장, 작년 말 대규모 경영진 교체…투자시스템도 뜯어고쳐
SK그룹이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공시대상기업집단 중 가장 큰 폭의 실적 악화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소속회사수 변동은 가장 빈번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서든데스’, ‘방만투자’ 경고의 배경을 짐작케 했다.
지난 15일 공정위가 발표한 ‘2024년 공시대상기업집단 경영 성과’에 따르면 SK 전 계열사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총 6590억원으로 2022년 11조1000억원 대비 94.1%, 금액으로는 10조4410억원 감소했다.
이는 전체 공시대상기업집단 중 가장 큰 감소폭이다. 10대그룹 중 전체 순이익이 1조원에 못 미친 곳도 SK그룹이 유일하다.
SK그룹의 양대 캐시카우인 에너지‧화학(SK이노베이션), 반도체(SK하이닉스)가 모두 업황 부진 여파를 면치 못했고, 그룹의 집단경영협의체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와 그룹 지주사 SK(주)가 투자를 주도한 신사업들도 실적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결과로 풀이된다.
전체 공시대상기업집단의 금융‧보험업을 제외한 당기순이익은 98조9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6조3000억원(14.2%)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SK그룹의 순이익 감소가 상당부분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재계 서열 1위 삼성그룹의 경우 금융‧보험 계열사들을 제외하고도 지난해 39조86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전년 대비 매출은 공시대상기업집단 중 가장 크게 감소했지만, 순이익은 4조6900억원이나 늘었다.
재계 서열에서 SK그룹에 이어 3위인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 19조6220억원의 순이익을 내며 순이익 순위에서는 2위에 자리했다. 전년 대비 순이익 증가액은 8조9750억원으로 공시대상기업집단들 중 가장 많았다. 주력 계열사인 현대차, 기아가 완성차 판매 호조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현대모비스 등 부품 계열사들도 잇달아 호실적을 낸 결과다.
재계 서열 5위 포스코는 2조5910억원의 순이익을 내며 현대차그룹에 이어 두 번째로 큰 1조6990억원의 순이익 증가폭을 기록했다.
10대그룹 중 순이익이 감소한 곳은 LG그룹(2조1410억원, -1조217억원), 한화그룹(9920억원, -1조1270억원), GS그룹(3조372억원, -1조3520억원)이 있지만 SK그룹처럼 낙폭이 크진 않았다.
서열 20위 HMM의 경우 순이익이 10조140억원에서 1조20억원으로 8조9940억원이나 감소했지만, 해운 단일 업종에 의존하는 기업이라는 특수성이 있다. 2022년 해운 시황 급등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냈던 기저효과가 반영됐다.
SK그룹은 10대그룹 중 가장 많은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 1년간 가장 큰 폭의 계열사 변동을 겪기도 했다.
5월 1일 현재 SK그룹의 계열사 수는 219개에 달하며 지난해 5월에 비해 21개나 늘었다. 새로 33개의 계열사가 추가되는 사이 12개가 지분매각이나 흡수합병 등으로 사라졌다.
같은 기간 삼성그룹이 1개 증가, 1개 감소로 동일한 63개의 계열사 수를 유지했고, LG그룹이 63개였던 계열사에서 2개가 증가하고 5개가 감소하며 60곳으로 줄어든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지난해 11개의 계열사를 새로 설립하고 1개를 흡수합병하면서 전체 계열사 수는 전년 대비 10개 늘어난 70개가 됐다.
SK그룹은 10대 그룹 내에서도 계열사 수가 월등히 많다. 2위 한화그룹(108개), 3위 GS그룹(99개)의 두 배를 넘어선다.
이같은 수익 악화와 큰 폭의 계열사 변동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그룹 경영체제 개편의 칼을 빼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최 회장은 지난해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2023 CEO 세미나’를 열고 “급격한 대내외 환경 변화로 빠르게, 확실히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며 ‘서든 데스(Sudden Death, 돌연사)’를 화두로 꺼냈다. 최 회장이 ‘서든 데스’를 언급한 것은 2016년 6월 확대경영회의 이후 7년여 만이었다.
최 회장은 특히 CEO들에게 사업 확장과 성장의 기반인 투자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투자 완결성 확보를 강하게 주문했다. 그는 “투자 결정 때 매크로(거시환경) 변수를 분석하지 않고, 마이크로(미시환경) 변수만 고려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후 최 회장은 연말 인사를 앞두고 그룹의 방만 투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대규모 조직 개편을 예고하기도 했다.
결국 연말 인사에서 최 회장은 60대 부회장 4명을 2선으로 후퇴시켰고, 사촌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을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 앉혀 ‘생존을 위한 변화’를 이끌도록 했다.
그룹의 투자 시스템도 뜯어고쳤다. 그간 SK수펙스추구협의회와 SK㈜로 분산돼 있던 투자 기능을 모두 SK㈜로 이관해 중복됐던 투자 기능을 일원화한 것이다.
SK그룹은 올해 그룹 주요 경영진이 참석하는 토요일 회의를 24년 만에 부활시키는 등 사실상의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그룹의 미래 성장 방향에서 벗어나거나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와 사업들을 매각하는 등 투자 측면에서도 보수적 태세 전환이 이뤄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SK그룹은 전통적으로 전문경영인들에게 큰 경영 자율성을 부여했지만, 지난해 대외 경영환경 악화에 적절히 대응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고, 투자 결정 과정에서도 신뢰를 잃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최창원 의장을 중심으로 새로 재편된 젊은 CEO들이 연말에 개선된 지표들을 내놓을 수 있을지 관심”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