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20년 만에 최대 연체
경기 불황에 고금리 충격파
짙어지는 금융 불안 먹구름
국내 신용카드사들에 쌓인 연체가 올해 더 불어나며 2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백만명의 신용불량자를 낳으며 금융시장에 상처를 남겼던 이른바 카드 대란 이후 거의 20년 만에 최대 규모로, 경기 불황과 고금리 충격파에 카드값조차 제때 갚지 못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다.
서민 경제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카드 연체가 계속 몸집을 불리면서 금융 불안을 둘러싼 우려는 더욱 짙어질 것으로 보인다.
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8개 카드사 자산에서 한 달 이상 상환이 밀린 연체액은 총 2조924억원으로 전분기 말보다 2.0% 늘었다.
이같은 카드 연체량은 2005년 1분기 말(2조2460억원) 이후 최대치다. 당시는 카드업계에 변곡점과 같은 시점이었다. 신용카드 규제 완화를 계기로 2002년부터 2006년 사이 수백만명의 신용불량자를 낳았던 이른바 카드 대란을 관통한 시기다.
카드사별로 보면 신한카드에서의 연체가 5738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6.7% 늘며 가장 많았다. 이어 롯데카드가 3397억원으로, 삼성카드는 3052억원으로 각각 11.1%와 8.4%씩 해당 금액이 증가하며 규모가 큰 편이었다. 이밖에 현대카드도 1374억원으로, BC카드는 582억원으로 각각 7.3%와 20.6%씩 연체가 늘었다.
반면 KB국민카드가 떠안고 있는 연체는 2721억원으로 15.5% 줄었다. 우리카드 역시 2043억원으로, 하나카드는 2018억원으로 각각 7.9%와 2.2%씩 연체가 감소했다.
카드 연체가 몸집을 불리고 있다는 건 그만큼 서민 경제가 어렵다는 의미다. 카드 값 연체 시 사실상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힘들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벼랑 끝에 내몰린 서민들이 그 정도로 늘었다는 얘기다.
서민 급전 대출로 꼽히는 카드론과 현금서비스에 대한 리스크도 녹아 있다. 서민 급전 대출이자 이른바 빚 돌려막기의 최후 보루로 여겨지는 카드사 대출에서의 연체까지 생각하면 취약차주의 현실은 한층 위태로울 수 있다.
문제는 이처럼 어려운 현실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미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는 고금리 기조가 올해 내내 지속되고, 이로 인해 이자 부담이 쌓여만 가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은 2022년 4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일곱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중 7월과 10월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이에 따른 현재 한은 기준금리는 3.50%로, 2008년 11월의 4.00% 이후 최고치를 유지 중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하 타이밍이 계속 미뤄지면서, 한은으로서도 선뜻 통화정책 전환이 어려워진 실정이다. 연초까지만 해도 올해 안에는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최근에는 그 시기가 내년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기 대응을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가 강화된 만큼, 지금의 카드 연체를 신용 대란 때와 직접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면서도 "앞으로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을 고려해 선제적인 여신 건전성 관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