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알짜회사 합치는 사업구조 재편...최대 20%대 급락
삼성물산·SK·동원산업·삼광글라스 등 불공정 논란 지속
소액주주 달래기 관건...내달부터 열리는 주총 결과 주목
대기업들이 계열사 합병을 통한 사업 재편에 나서면서 주가가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기존 주주들을 달래고 설득하는 것이 합병 성공의 관건으로 떠올랐다. 과거 불공정 합병 논란이 재조명 되는 가운데 이번에도 주주가치 훼손 우려와 소액주주 반발로 인한 합병비율 조정 가능성 등에 관심이 모인다.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인 18일 SK이노베이션은 전 거래일(17일) 대비 3.17% 내린 11만5900원에 거래를 마쳤다. SK이노베이션 주가는 SK E&S와의 합병 소식에 지난 16~17일 2거래일간 10.83%(10만8000원→11만9700원) 상승했지만 합병안이 의결되면서 오히려 주가가 하락했다.
SK이노베이션과 비상장 계열사 SK E&S는 지난 17일 양사 합병안을 의결했는데 최대 관심사였던 합병 비율은 1대 1.1917417로 결정됐다. 시장 예상보다는 SK이노베이션에 유리한 조건의 합병 비율이 공개됐으나 주가가 하락 전환한 것이다.
이번 합병이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계열사 SK온의 자금 수혈을 위한 것으로 분석되면서 SK도 이날 4.11% 내린 14만9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SK온은 10개 분기 연속 적자를 냈고 SK E&S는 지난해 1조331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만큼 SK온의 재무구조 개선이 합병 목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룹의 ‘캐시카우’인 계열사와 적자 계열사를 합병하는 방식의 사업 재편은 두산그룹도 마찬가지다. 두산그룹은 지난 11일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을 인적분할한 뒤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편입시키는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두산은 전장 대비 4.39%, 두산로보틱스는 4.00% 떨어진 가격에 마감했다. 두산로보틱스 주가는 지난 12일 사업 재편 소식에 23.92% 치솟은 뒤 이날까지 최근 4거래일간 22.71%(10만5700원→8만1700원) 급락했고 같은 기간 두산도 12.66%(23만7000원→20만7000원) 내렸다.
이처럼 주가 변동성이 확대된 것은 적자를 면치 못하는 두산로보틱스와 매년 1조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내는 두산밥캣의 기업가치 차이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논란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합병비율은 1대 0.63으로 정해졌다.
시장에선 합병 비율을 둘러싼 적정성 문제가 떠오르면서 과거 여러 차례 불거진 불공정 합병 논란도 재차 부각되고 있다.
기업간 합병비율이 논란이 됐던 것은 지난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은 1대 0.35로 산정됐는데 총수 일가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에 유리하다는 논란이 불거지며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의 반발을 샀다.
SK C&C와 SK도 지난 2015년 합병 당시 같은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합병비율이 1대 0.74로 정해지면서 SK C&C에 지나치게 유리한 비율이 적용됐다는 불만이 나왔다. 당시 SK C&C는 최태원 회장 등 총수 일가의 지분이 43.45%에 달했다.
실제 소액주주들의 거센 반발에 합병비율이 조정된 사례도 나왔다.
동원그룹은 지난 2022년 동원산업과 비상장법인 동원엔터프라이즈의 상장을 추진하며 오너 일가가 지분 99.6%를 보유한 동원엔터프라이즈의 가치는 고평가, 동원산업은 저평가됐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투자자들의 여론이 크게 악화되면서 결국 동원엔터프라이즈와 동원산업 간 합병비율은 기존 1대 3.8385530에서 1대 2.7023475로 변경됐다.
이외에도 앞서 2020년 이테크건설·군장에너지와 삼자 합병을 추진하던 삼광글라스가 소액주주와 국민연금의 반대에 부딪혀 합병비율을 조정한 바 있다.
이에 시장의 시선은 다음 관문인 SK이노베이션(8월27일)과 두산에너빌리티(9월25일)의 주주총회를 향하고 있다. 주총에서 주주들의 표심에 따라 합병 절차에 제동이 걸릴 수 있어서다.
SK이노베이션은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 희석 문제가 거론되는 만큼 주주들에 대한 설득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SK E&S는 SK가 9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주총 통과가 확실하지만 상환전환우선주(RCPS) 3조1350억원 상당을 가진 사모펀드(PEF) 운용사 KKR을 설득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SK이노베이션과 관련해 “SK E&S와의 합병으로 순자산가치(NAV)는 27% 증가하는데 발행주식수가 58% 증가하면서 주당 적정가치는 낮아질 수 있다”며 “합병으로 재무부담이 축소되지만 주당 가치 희석은 불가피해 주주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두산밥캣 소액주주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시장에선 두산로보틱스 주가가 반등하면 두산밥캣 주주들이 교환받는 가치도 커진다는 점에서 두산로보틱스의 주가 향방에 주목하고 있다.
이동헌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두산밥캣 고유의 성장을 기대한 투자자에겐 다소 아쉬운 결정”이라며 “주식매수청구권 이외 주주 소송 등의 가능성이 있지만 두산로보틱스 주가 상승 시 교환가치를 감안하면 문제 제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