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국 노숙인 수 8370명, 서울만 3041명…"잘 씻지도 먹지도 못하다 보니 건강 더 안 좋아져"
"요즘 같은 때는 쉼터 같은 시설에 빈자리 찾기 어려워…다리 밑 명당 자리에는 이미 다 주인 있어"
서울시 "기상특보·주의보 발효되면 무더위 쉼터 등 시설 점검…여름철 노숙인 피해 최소화 노력"
전문가 "사생활 존중 받을 주거공간 마련이 최고의 대책…스스로 사회에 돌아갈 장기적 대책 필요"
최근 집중호우와 폭염이 동시에 나타나며 노숙인이나 쪽방촌 주민 등 여름철 취약계층에 대한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특히 제대로 된 거처가 없는 노숙인들은 건강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데일리안은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서울역 인근을 찾았다. 서울역 내 한 통로에는 수많은 노숙인이 박스를 바닥에 깔고 힘없이 누워 있었다. 역사 밖에 자리 잡은 노숙인들은 박스나 천막 등으로 만든 거처 근처에서 옷을 벗은 채 다른 노숙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일부는 에어컨이 나오는 역사 안에 들어와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서울역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노숙인 A씨는 "날이 너무 덥다 보니 도저히 밖에 있을 수가 없어 역 안으로 들어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더니 이번엔 더위로 괴롭다"며 "시설이나 무더위 쉼터 등도 가봤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 차라리 낮에는 이렇게 역 안에 들어와서 쉬는 게 낫다"고 말했다.
바닥에 멍하니 앉아 있던 노숙인 B씨는 "폭우에 폭염까지, 여름이 겨울보다 힘들다. 차라리 추운 게 더 나은 것 같다"며 "요즘 같은 때에는 비도 피하고 그늘도 만들어지는 다리 밑 같은 곳이 명당인데 그런 곳은 이미 다 주인이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노숙인 C씨는 "요즘 같은 때는 쉼터 같은 시설에 빈자리 찾기가 어렵다. 역 대합실 같은 곳에서 쉴 수 있지만 이마저도 의자에 누울 수 없어 편하게 쉬기에는 불편하다"며 "잘 씻지도 먹지도 못한 채 비와 땀으로 옷이 젖었다 말랐다 하니 건강이 더 안 좋아진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 있는 노숙인들의 수는 8370명이다. 서울시로만 놓고 봐도 노숙인은 2021년 3365명, 2022년 3151명, 2023년 3041명으로 그 수가 소폭 줄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수의 노숙인들이 거리에서 생활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달부터 24시간 운영하는 무더위 쉼터 11곳과 서울역 인근에 쿨링포그를 가동하는 등 노숙인들의 피해 예방을 위한 전방위 지원 대책을 내놨다. 여름철 건강관리 지원을 위한 샤워 시설 제공, 응급구호반 등도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 자활지원과 관계자는 "폭염과 장마가 오기 전인 지난 6월부터 선제적으로 쉼터, 대피소, 쿨링포그 가동 등 조치를 취했다"며 "주의보나 특보 등이 발효되면 시에서 직접 시설 점검을 나가는 등 무더위 취약계층의 안전한 여름나기를 돕고 있다"고 전했다.
노숙인 이용 시설인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 따르면 하루 평균 5명 정도의 노숙인이 시설 입소를 문의한다. 또 휴식 등을 위해 센터를 찾는 노숙인은 하루 평균 150명 안팎이라고 밝혔다. 노숙인 30~35명은 응급 보호라는 명목으로 센터 내에서 잠자리를 제공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마명철 사회복지사는 "예산의 여력이 된다면 노숙인들에게 사생활을 보장·존중받을 수 있는 주거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 최고의 대책"이라며 "이와 동시에 일자리도 지원해 준다면 안정적으로 사회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47년 간 노숙인 등을 위해 봉사를 해 온 '나누고 베풀고 봉사하는 그룹' 한옥순 회장은 "노숙인들에게 자활 프로그램을 제공해 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지금 정부에서 하고 있는 지원 정책도 좋지만 일회성에 그치는 대책보다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에 좀 더 신경 써 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