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15주기에 출범하고
'DJ는 먹사니즘 뿌리, 盧 억강부약' 등
'사당' 반발 심리 의식한 듯 영속성 어필
과거 李 스스로 '변방 아웃사이더' 소개
연임에 성공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일 자신의 '정치적 DNA'를 강조하는 광폭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일극체제를 완성했으나 당내 비주류 출신인 점에 비춰 '적통성의 한계'를 지녀왔고, 전당대회 기간 당의 심장인 호남에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한 기록을 쓴 것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당장 당의 대표는 이재명 대표이지만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 적자'로 지칭되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최근 복권되며 정치적 역할론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는 '먹사니즘'과 '억강부약'을 고리로 고(故)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하는 빈도를 늘리고 있다.
8·18 전당대회서 DJ 이후 최초 연임
'DJ 키즈' 출신 수석최고위원 김민석은
"DJ 뜻 이어 새롭게 나아가는 것 운명"
민주역사관서는 盧와 李 공통 분모 부각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2기 지도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5주기였던 전날 출범했다. 이 대표의 연임은 1995년~2000년 민주당 전신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직을 맡았던 DJ(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민주당 계열 정당에선 처음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우연의 일치라고 봐야 하느냐'는 목소리들이 나올 정도로 시점이 공교롭다.
이 대표의 전당대회 러닝메이트였던 김민석 수석최고위원이 DJ키즈 출신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김 최고위원은 전날 "김대중 대통령 15주기이자 민주당 전당대회의 마지막 날"이라며 "김 대통령의 뜻을 이어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새롭게 나아가는 것은 운명과도 같은 일"이라는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같은 날 이 대표도 DJ를 소환했다. 이 대표는 당권 장악을 발판으로 21대 대선에도 당의 대선주자가 될 가능성이 높는데, 이 대표는 차기 집권을 준비하며 민생과 먹사니즘(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슬로건)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 대표는 "김 대통령께선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위해 싸운 투사이자 나라의 미래를 설계한 유능한 살림꾼이셨다"며 "이상을 잃지 않되 현실에 뿌리내려 국민의 삶을 바꿔야 한다는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가르침, (내가) 자주 강조했던 '먹사니즘'의 뿌리기도 하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 대표는 강성지지층을 필두로 '사당'을 완성시켰단 평을 받으며, 전당대회 기간에도 경쟁자였던 김두관 후보로부터 "민주당의 김대중·노무현 정신인 다양성과 역동성 그리고 민주 DNA가 훼손되고 있다"는 공격을 받았었다. '이재명 사당'를 비판하며 민주당 인사들이 탈당해 만든 새로운미래에서도 개인 사업자에게 100억원에 매각된 DJ 서울 동교동 사저 논란과 관련 "(현재의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를 '아바이 수령'으로 만들기에만 골몰한다. 김대중·노무현 정신 지우기에 나섰다는 의구심을 갖기 충분하다"는 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이 대표는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 전신) 대선 경선 과정에서 '정동영계'로 정치를 시작했다. 당내 주류였던 친노·친문과는 거리가 있는 비주류 출신이자, 지난 2022년 2월 민주당 대선 후보 때는 "기득권과 싸워 이겨온 변방의 정치인 이재명, 기득권에 빚진 것 없는 아웃사이더"라고 자신을 지칭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대표가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적자'로서의 연결지점을 만드는 행보가 연일 포착되는 중이다.
민주당은 전당대회 당일 체험형 팝업스토어를 포함한 당원 참여형 행사 블루페(BlueFestival)를 개최했는데, 굿즈로는 'DJ DJ PUMP THIS PARTY'라는 글귀와 DJ, 이희호 여사의 얼굴이 프린팅된 한정판 티셔츠가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이는 파티가 '정당'이란 의미도 가지고 있어 '김대중 선생, 이 정당을 이끌어달라'라는 의미이자 '고전 인터넷 밈'으로도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전당대회 장외 행사에는 DJ 뿐 아니라 노 전 대통령도 다시금 소환됐다.
팝업스토어 옆에 마련된 민주역사관에서는 '억강부약 노무현'이란 글자가 강조되기도 했다. '억강부약'은 지난 대선 기간 이 대표의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며 사용됐던 글자로 이 대표의 '기본사회' '먹사니즘'과 같이 이 대표가 강조하고 있는 정책 기조 중 하나다. 이 대표는 2021년 7월 "억강부약(抑强扶弱·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다) 정치로 모두 함께 잘 사는 대동세상을 향해 가겠다"고 강조했다.
민주역사관에는 억강부약 노무현이라는 큰 키워드 아래 '억강: 발언과 행동이 일치하는 억강의 노무현 대통령' '부약:늘 따뜻했고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부약의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이 대표가 지난 대선 기간 강조했던 '억강부양'이란 글자를 '노 전 대통령과 이 대표가 공유하는 공통의 정치적 가치'로 우회적 천명을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억강의 사례로는 △돈 안 드는 정치(인터넷 선거운동과 시민의 자발적 후원금) △참여정부 초대 국정원장에 개혁성향 인사를 단행한 것 △취임 후 정부와 언론 간의 유착을 끊은 점 등이 나열됐다. 부약으로는 △자이툰 사단 방문을 마치고 눈물을 흘렸던 것 △제주 4·3 사건에 대한 사과 △노삼모(노무현 대통령과 삼겹살 파티를 주비하는 모임) 회원에게 십자수로 만든 액자를 선물받고 고개숙여 감사 인사를 전한 것 등이 제시됐다.
신율 "민주당 '민주가 없다' 얘기 나와 …
텃밭 '호남'에서의 투표·득표율도 저조"
박상병 "주류 아니라 당내기반 취약해…
사법리스크, 다른 목소리 잠재우는 의도"
이 같은 민주당의 움직임과 관련해선 호남에서의 민심, 사법리스크 등이 위기로 작용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 민주당이 일극 체제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민주당에 민주가 없다. 이런 식의 얘기가 나오는데 그런 상황에서 민주당의 정통적인 적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렇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호남에서 이번에 투표율과 득표율이 평균보다 굉장히 떨어졌다. 호남에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호남은 민주당의 지역 기반일 뿐이 아니라 민주당에 정치적 정통성을 부여해 주는 지역"이라며 "그런데 그 지역에서 평균 투표율 이하로 나왔다는 것은 위기의 시그널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전당대회 과정 중 지역별 '온라인 권리당원 득표율'만 놓고 보면 이재명 대표는 초반 '구대명(90% 득표율로 당대표는 이재명)'을 달리며 압도적 기세인 보이던 상태였다. 그러나 당의 텃밭인 호남 경선 내내 90%대 아닌 '80%대 득표'를 하며 반짝 주춤했고 이에 '이재명 대표에게 보내는 경고' '외면' 등이란 평가가 쏟아진 바 있다. 이 대표는 전북 지역 순회 경선에서 84.79%, 전남 82.48%, 광주 83.61%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보다는 호남 지역 권리당원 온라인 '투표율'이 문제가 됐다. 결과가 뻔했던 경선인 탓에 수도권 다음으로 권리당원(호남 기준 33.3%가량)이 많은 지역임에도, 전남 투표율은 23.17%, 전북은 20.28%, 광주는 25.29%에 그치며 호남 유권자들의 실망이 반영된 결과라는 평가가 고개를 들었다. 호남에 앞서 지역 경선이 열렸던 대구와 경북, 부산에서의 온라인 권리당원 투표율은 각각 52.23%, 47.80%, 42.07%였던 점에 비춰 절반도 되지 않던 수치다.
나아가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위증교사 혐의 등 주요 재판 1심 결과가 당장 10월에 나올 개연성이 있는 부분과 관련한 '적통성 강조'를 결부시켜서 봤다.
박상병 평론가는 "이 대표는 당내 이른바 호남세력도 아니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의 친노 주류도, 문재인 전 대통령 때의 친문도 아니다. 윤석열 정권에 대항하는 상징적 이미지는 강력하지만 기반이 약하다"고 했다. 박 평론가는 "그런 기반이 없기 때문에 만약 사법리스크에서 범죄 혐의가 중해 (당이) 흔들릴 경우, 그것을 다잡기 위한 가장 좋은 목소리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의 뒤를 잇는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당내 다른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의도"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재명 대표는 오는 22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아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를 예방한다. 이어 같은 날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도 예방을 할 계획이다. 당대표에 다시 선출됨에 따라 전직 대통령을 예방하는 게 관례이나, 일극체제에 대한 우려가 극대화된 상황에서의 만남이라 이후 어떤 메시지가 나올지가 더욱 주목되는 상황이다.
문 전 대통령은 이 대표가 압도적으로 선출된 앞선 전당대회에서 영상축사를 했다. 문 전 대통령의 "확장을 가로막는 편협하고 배타적인 행태를 단호하게 배격하자"라는 당부에도 강성 당원 일부는 "헛소리" "시끄럽다" 등의 비방을 가했고, "출당을 하라"는 목소리까지 터져나오는 등 당내 갈등이 여전한 상황이 여과없이 표출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