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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의 독특함은 돈이 된다! 고향세가 만들어 낸 지역의 역전


입력 2024.09.03 09:14 수정 2024.09.03 09:14        데스크 (desk@dailian.co.kr)

[일본에서 찾는 고향사랑기부제 성공 ⑧]

요즘 여행은 ‘목적지’보다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된다. 기존 단체 패키지 관광은 저물고, 개인의 다양한 취향에 따른 개별화된 여행으로 변화의 흐름이 생겨났다. SNS를 중심으로, 누구보다 독특한 여행경험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수요도 늘어났다.


이런 특이함을 지역의 스토리로 풀어내는 비즈니스들도 눈에 띈다. 일본에서 주목받는 호시노리조트 그룹은 지역 콘텐츠를 비즈니스에 잘 녹여낸 사례 중 하나이다. 여러 계열 중 카이(界) 호텔에 특히 그 특색이 잘 드러난다. 이 호텔들에는 로비에 근사한 미술품 전시 대신, 지역마다의 특성을 살린 체험 공간을 두고 있다. 나가사키의 ‘카이 운젠’(界 雲仙)은 활판 인쇄 체험이 가능하다. 나가사키가 활판 인쇄의 발상지라는 점에 착안했다. 좋아하는 글자를 골라 활판인쇄기에 넣고, 준비된 엽서 크기 종이에 찍어 넣으면, 멋들어진 엽서가 완성된다. 고객에게 이 호텔에서만 할 수 있는 ‘체험’을 제공함으로써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한 셈이다.


호시노호텔 카이 운젠 활판 인쇄 체험 공간 사진 ⓒ호시노리조트 카이 운젠 홈페이지

이제 지역의 고유한 문화는 더 이상 지루하거나 뒤처진 것이 아닌, 신선하고 독특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런 독특한 지역 콘텐츠들은 지역에 돈을 벌어다 준다. 가장 쉬운 예를 일본의 ‘고향납세’ 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역전의 마을, 사카이마치>


이바라키현의 사카이마치는 인구 2만4000명의 작은 마을이다. 도쿄역이나 나리타공항에서 1시간 정도로 닿을 수 있는 거리이지만, 풍경은 농촌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마을이다. 도쿄를 중심으로 수도권 안에는 비슷한 조건을 가진 마을들이 많다.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 이 마을은 6년 연속으로 고향납세 실적 관동지역 1위로, 2022년 기준, 59억 5300만엔을 모금했다. 이 지자체는 10년 전만 해도 이러한 실적을 기대할 수 없는 마을이었다. 2013년의 기부건수는 7건, 전체 기부액은 6만5000엔이었다. 재정상태도 일본 전역의 1700여개 지자체 중 뒤에서 29번째로 언제 파산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마을이었다.


사카이마치의 역전의 주역, 노구치씨 ⓒ2022 후루사토어워드 대상 소개 페이지

이런 지자체를 ‘역전의 마을’로 만든 것은 지역의 숨겨진 보석 같은 답례품들이었다. 당시 39세의 젊은 나이로 지자체장이 된 하시모토 마사히로씨는 재정파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5대째 차 전문점을 운영하던 노구치씨에게 마을의 ‘관광협회장’으로서 마을 재건에 힘을 보태주기를 간청했다. 노구치씨는 약 150년간 차만 팔아왔지만, 지역에서 장사하며 진 신세를 갚는 마음으로, 지역 발전을 위해 지자체장의 요청을 수락했다.


노구치씨는 곧장 ‘고향납세’를 주목했다. 당시 관광협회가 맡고 있던 일 중 하나는 ‘미치노에키’라고 하는 지역의 특산물 판매장을 운영하는 일이었는데, 재정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의 자금이 필요했고, 고향납세를 활용하면 기부금과 함께 지역 특산품의 판매도 늘어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노구치씨가 고향납세에 임하고 나서부터 고향세는 급성장의 물결을 탔다. 2014년에 약 3000만 엔으로 직전년도 대비 480배 성장을, 2015년에는 단숨에 약 8억6000만 엔을 모금해 전년 대비 27배 규모로 성장을 이뤘다.


노구치씨가 주목한 답례품은 지역의 브랜드 돼지고기인 우메야마돼지의 통삼겹살 (650g, 기부금 1만8000엔의 답례품), 사카이마치 특제 소스를 입힌 장어 (3마리, 기부금 1만3000엔의 답례품), 사카이마치 소고기(400g, 기부금 1만4000엔의 답례품)이었다. 철저히 계산된 답례품이었다. 전국에서 인기가 있는 품목인 고기류와 장어를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과 좋은 품질에 선보여 단숨에 입소문을 탄 것이다.

사카이마치 인기 1위 쌀 답례품 ⓒ후루사토초이스 사카이마치 페이지

이에 이어 개발한 쌀 비교세트(4종류, 각5kg, 기부금 2만3000엔의 답례품)도 큰 인기를 얻어 지금은 매년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고 있다. 노구치씨의 본업인 ‘사시마차’도 높은 품질의 명차로 매년 인기 답례품으로 팔리고 있다.


노구치씨는 인기 답례품 개발에 그치지 않았다. 지역 전반에 고향납세의 이익을 나눌 수 있어야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16년 지역상사인 ‘사카이마을만들기공사’를 설립했다. 그가 가장 먼저 나선 것은 현지 식재료를 활용한 지산지소 레스토랑을 오픈한 것이었다. 디자인은 세계적인 건축가 쿠마켄고에게 맡겼다. 입소문을 타 판매 실적과 방문자 수는 빠르게 증가했다. 이에 탄력을 받아 식품연구소, 농산품 가공소 등을 만들어 말린 고구마, 장어 가공 등 안정적인 답례품의 개발, 생산 기반을 만들었다. 이렇게 마을 자원을 브랜드화하고 생산에서 가공까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자, 고향납세 실적은 더욱 크게 성장했다. 설립 당시 3명이었던 지역상사의 직원수는 2022년 기준 71명으로 증가했다. 지역 비지니스로 고용 창출과 괄목할 만한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이루었다.


쿠마겐고가 설계한 말린 고구마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Hoshimono100 cafe의 외관 ⓒ호시모노100카페 홈페이지

이렇게 모인 기부금은 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데 투입되었다. 사카이마치에는 국제대회에도 대응할 수 있는 일본 최대급의 BMX 경기장이 있다. 지역의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외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지역에서는 전국대회 우승자가 탄생하기도 했다.


마을 최대의 이벤트인 9월의 불꽃놀이도 고향납세와 함께 성장했다. 고향납세를 시작하기 10년 전, 쏘아 올릴 수 있던 불꽃은 3000발 정도였지만, 현재는 10배인 3만 발을 쏘아 올릴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2023년에는 30만 명이 몰렸다. 가장 좋은 좌석들은 고향납세 답례품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기부금을 활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벤트를 답례품으로 활용하여 마을로의 방문객을 모으는 ‘1석2조’의 효과를 누린 셈이다.


답례품으로 판매되고 있는 불꽃놀이 관람 티켓 ⓒ 후루사토초이스 사카이마치 페이지

고향납세로 아이들의 영어교육이나 의료비 보조 등 다양한 교육지원, 복지혜택을 늘리자, 도쿄로부터의 이주자도 늘어났다. 사카이마치는 이주자가 지역 임대주택에 25년간 머물 경우, 해당 집의 소유권을 양도하는 파격적 혜택도 제공하고 있다. 임대주택을 만들고, 제공하는 비용도 고향납세의 기부금을 활용한다.


사카이마치는 세입 대비 지방교부세의 비율이 8.9%로, 전국 평균인 14.12%를 훨씬 웃돌 정도로 재정자립도가 높아졌다. 10년 전 재정파탄을 걱정하던 위기의 지자체가, 고향납세로 완전히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한국은 이제 고향사랑기부제 도입 2년 차를 맞이하고 있다. 과도한 규제로 지역의 특색이 잘 드러나고 있지 않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루빨리 지역의 자율성이 확보되어 사카이마치와 같은 지역의 재탄생, 역전의 제2라운드를 만들어 내는 사례가 늘어나길 기대한다.


이연경 페어트래블재팬 법인장admin@fairtraveljapan.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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