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고려아연 신청 안건 심의…경영권 분쟁 영향은 미지수
정부가 고려아연이 보유한 전구체(배터리 양극재 기초 재료) 제조 기술의 국가핵심기술 지정 여부를 4일 심사한다. 이르면 심사 당일 최종 판정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어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 간의 경영권 분쟁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고려아연은 MBK가 자사 운영권을 인수한 뒤 해외에 매각할 여지를 차단한다며 국가핵심기술 지정을 신청했으나, MBK는 해외 매각 계획은 전혀 없다고 선을 그은 상태라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오는 4일 오후 모처에서 산업기술보호전문위원회를 열고 고려아연이 자사 보유 기술에 대해 신청한 ‘국가첨단전략기술 및 국가핵심기술 판정’ 신청 안건을 심의한다.
판정을 내리기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향후 다시 위원회를 열어 논의할 가능성도 있지만, 고려아연 보유 기술이 복잡한 기술이 아닌 점을 감안하면 심사 당일 결정이 내려질 여지가 클 것으로 보인다.
앞서 고려아연은 지난달 24일 자사의 ‘하이니켈 전구체 가공 특허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 판정해달라고 요청했다. 고려아연이 산업부에 판정을 신청한 기술은 ‘리튬 2차전지 니켈 함량 80% 초과 양극재의 양극 활물질 전구체 설계, 제조 및 공정 기술’이다.
국내 2차전지 기업들은 그동안 중국에 전구체를 비롯한 양극재 소재를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 왔는데, 고려아연은 국내에서 하이니켈 전구체 대량 양산을 준비 중이다. 고려아연은 이 기술이 전체 공정 시간 단축, 공정 비용 절감, 라인 편성 효율 개선 등을 통해 전구체 생산성을 높이고 우수한 품질의 전구체 제조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은 자회사인 켐코와 고려아연이 공동 보유하고 있으며, 고려아연이 대표로 신청했다.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은 경제안보상 이유로 외국 기업이 인수를 추진할 경우 정부 승인을 거쳐야 한다. 이번에 고려아연이 신청한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면, 해외에 매각될 상황에 처할 경우 정부가 개입해 인수 금지 또는 원상회복 등 조치를 명령할 법적 근거가 생긴다.
고려아연은 자사가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이 될 경우 경영권 분쟁도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영풍‧MBK 측의 입장은 다르다. MBK는 자사를 ‘한국 토종 사모펀드’로 규정하면서 일각에서 제기하는 ‘고려아연 인수 후 중국 매각설’은 흑색선전이라고 항변해 왔다.
다만, 그동안 양측이 상호 비방전을 이어왔던 전례로 볼 때 국가핵심기술 지정이 이뤄질 경우 고려아연은 이를 MBK의 공개매수 저지 당위성을 강조하는 배경으로 활용할 여지가 있다. 고려아연은 기업 매각 외에도 핵심기술 판매·공유 등을 통해 고려아연의 핵심 자산을 빼가거나 수익화할 방안이 많다는 점을 MBK도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최고기술책임자·CTO)은 지난달 24일 기자회견에서 “투자 회사들이 돈만 놓고 보면 고려아연에서 팔아먹을 기술이 엄청 많을 것”이라며 “공정마다 수백 개 이상이 있다고 생각하면 되고, 어떤 것은 몇천억원짜리도 있다 보면 된다.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기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