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 업적 '상생형 일자리'…GGM 노사갈등으로 위기
GGM에서 생산한 캐스퍼 1호차, 딸 문다혜 씨 음주운전으로 '유명세'
#포지티브적 해석 : 없던 일자리가 생겨나 지금까지 잘 돌아가니 좋지 아니한가.
#네거티브적 해석 :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
요즘 ‘캐스퍼’라는 자동차가 참 ‘핫(hot)’ 합니다. 이 차를 개발한 현대자동차 입장에서는 최근 출시한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 ‘더 뉴 캐스퍼’의 인기가 뜨겁다거나, 8월 출시한 전기차 버전 ‘캐스퍼 일렉트릭’이 뜨겁게 잘 팔리는 것으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부정적 이슈로 더 뜨겁습니다.
최근 한 여성이 술에 취한 채 이 차를 몰다 사고를 냈고, 이 차를 만드는 공장은 노사 갈등이 한창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부정적 ‘핫’이슈는 모두 문재인 전 대통령과 연결돼 있죠.
경형 SUV인 캐스퍼는 원래 세상에 나올 수 없는 차였습니다. 국내 자동차 회사들의 임금 수준이 높아지면서 저가의 경차를 만들어가지고는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가 됐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은 경차라면 1000만원 중반만 넘어가도 비싸다고 지갑을 닫는데, 평균 연봉 1억원을 넘는 현대차 근로자들이 그걸 만들어 팔아서는 답이 안 나오는 거죠.
국내 완성차 업체 임금 수준으로는 차 가격이 최소 2000만원은 돼야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대차를 기준으로 준중형 세단 아반떼나, 소형 SUV 코나 정도는 만들어 팔아야 밑지는 장사를 면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현대차는 일찌감치 경차 판매를 접었고, 기아는 모닝과 레이 등 경차를 외주 생산하는 방식으로 손익구조를 맞추고 있습니다. 한국GM의 경우 주력 차종들의 모델 노후화로 한동안 경차 스파크가 판매의 주력이 되면서 적자에 시달리다 결국 지난해 단종을 결정했습니다. 구조적으로 새로운 경차를 개발해 야심차게 출시할 상황이 아니었던 거죠.
그런데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됐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었죠. 동종업계 절반 정도의 임금을 지급하는 대신, 지방자치단체가 주거, 교통 등 복리후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임금경쟁력이 높은 공장을 짓는 사업이었습니다. ‘상생형 일자리’가 원래 이름이지만, 광주광역시가 사업을 주도하며 ‘광주형 일자리’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현대차는 오로지 캐스퍼를 생산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새로운 공장을 지어 평균 1억원 이상의 근로자를 투입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지자체가 운영을 책임지는 ‘반값 임금 공장’에 생산을 위탁하는 방식이라면 얘기가 달랐습니다.
2019년 1월, 현대차는 광주광역시와 ‘지역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지속 창출을 위한 완성차 사업 투자 협약’을 체결했고, 그 결과물로 ‘광주글로벌모터스(GGM)’라는 회사가 탄생했습니다.
현대차는 이 회사에 437억원을 출자해 19%의 지분을 확보하고 2대 주주가 됐습니다. 1대 주주는 483억원을 출자해 21%의 지분을 가진 광주시였죠. 출자금 차이가 46억원에 불과한데, 현대차가 굳이 1대주주 지위를 마다한 이유는 조금 뒤에 알려드리겠습니다.
기업이 아닌 지자체가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해 새로운 일자리 600여개를 만들어 냈으니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이용섭 전 광주시장에게는 큰 자랑거리였습니다. 당시 정부에 의해 GGM은 ‘획기적인 노사민정 상생 일자리 사업’으로 홍보됐습니다.
캐스퍼의 첫 출고가 이뤄진 2021년 9월 15일 문 전 대통령은 청와대 일자리수석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캐스퍼는 광주 시민과 노사, 이용섭 광주시장을 비롯한 지자체 관계자들이 함께 힘을 모아 만든 자동차”라며 “이제 고용 창출 효과도 본격화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온라인 사전예약을 통해 자비로 캐스퍼 1대를 직접 구매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PC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직접 온라인 사전예약을 하는 모습을 청와대에서 촬영해 공개하기까지 했죠.
얼마 뒤 주문한 캐스퍼를 수령한 문 전 대통령은 “2012년부터 공약했던 사업이었는데, 긴 시간 동안 노·사·민·정 끈질긴 대화 끝에 사회적 대타협으로 광주형 일자리가 생겨나고, 자동차 완성차 공장이 우리나라에 십수 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생긴 것”이라며 자신의 업적을 재차 부각시켰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맞붙었던 2012년 제 18대 대통령 선거 당시부터 상생형 일자리 사업을 공약으로 내걸었었는데, 9년 만에 그 사업을 통해 생산된 자동차를 수령했으니 감회가 새로울 법도 합니다.
이 때 수령한 차는 ‘캐스퍼 1호차’로 불렸습니다. 통상 완성차 업체는 신차가 나올 때 구매 희망자 중 의미 있는 인물을 선정해 처음 생산된 차를 전달하고 ‘1호차 전달식’을 열곤 하는데, 사실 문 전 대통령의 캐스퍼는 이런 의미의 1호차는 아닙니다. 당시 현대차는 캐스퍼 1호차 전달식을 별도로 열지 않았습니다.
인도 순서에 ‘대통령 찬스’는 없었다고 하니, 첫 번째 생산된 차는 아니고 아마도 수십, 혹은 수백 번째 생산분일겁니다. 그럼에도 ‘캐스퍼 1호차’라는 별명이 붙은 건 당시만 해도 대통령이 타는 차였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타는 비행기가 ‘공군 1호기’가 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후 GGM은 캐스퍼를 잘 생산하고, 현대차는 열심히 팔면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탄탄대로를 걷는 듯 했습니다. 여기서 얘기가 끝났다면 해피엔딩이 되겠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질 않는군요.
캐스퍼 1호차였던(문 전 대통령이 자연인으로 돌아갔으니 더 이상 1호차가 아닌) 카키색 경차는 3년 뒤 불미스런 사건에 휘말립니다. 문 전 대통령의 딸 문다혜 씨가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킬 때 탄 차가 바로 그 카키색 캐스퍼였던 거죠.
TV 뉴스를 통해 공개된 CCTV를 보면 문다혜 씨는 서울 이태원동 골목 이면도로에 캐스퍼를 불법 주차해 놓고 7시간동안 세 곳의 술집을 옮겨 다니며 음주를 한 것으로 나옵니다.
이후 만취 상태로 캐스퍼에 올라탄 문 씨는 우회전 차로에서 좌회전을 하는 등 위험 운전을 하다가 결국 방향시지등을 켜지 않고 차로를 변경하던 중 뒤따라오던 택시와 충돌합니다.
문 씨의 음주운전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고, “음주운전 사고는 실수가 아니라 살인행위가 되기도 한다. 타인의 삶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행위”라던 문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 발언까지 소환됐습니다.
이 사건이 매스컴을 장식하면서 문 씨가 운전한 캐스퍼의 모습 역시 수없이 등장했습니다. 문 전 대통령이 캐스퍼를 인수할 때만 해도 그 차가 3년 뒤 이런 식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겠죠.
불미스런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문 전 대통령이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여기던 GGM에서도 문제가 생깁니다.
회사 출범 당시 ‘반값 임금’의 근로조건을 충분히 인지하고 입사한 GGM 근로자들은 회사가 정상적으로 굴러가자 다른 마음을 먹습니다. 근로조건 등을 포함한 상생협의회의 결정사항을 누적 생산대수 35만대 달성 시까지 유지한다는 약속을 어기고 노조를 결성한 뒤 강성노조라는 금속노조에 가입합니다.
금속노조에는 현대차, 기아, 한국GM 등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가입돼 있습니다. 금속노조를 등에 업고 이들과 같은 근로조건을 이끌어내겠다는 생각이라도 한 것일까요.
파업을 앞세워 사측을 압박하는 금속노조의 전략을 답습해 금속노조 광주글로벌모터스지회(GGM 노조)는 사측에 큰 폭의 임금인상을 요구한 뒤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자 쟁의권 확보에 나섭니다. 파업 찬반투표에서 85.97%의 조합원이 찬성표를 던졌고, 노조 집행부는 전남지방노동위원회(전남지노위)에 쟁의조정을 신청했습니다. 여기서 조정 중지 결정이 나면 노조는 합법적으로 파업이 가능해지죠.
전남지노위는 쟁의조정 중지 대신 ‘근무시간 중 주 1회 교섭’이라는 권고안을 제시했고, GGM 노조가 이를 수용하면서 일단 파업 계획은 철회됐습니다. 하지만 노조가 GGM의 탄생 배경을 무시하고 ‘같은 자동차 회사인데 왜 우리만 임금을 적게 받느냐’는 주장을 계속 한다면 노사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겠죠.
지금의 GGM은 일감이 많은 상태입니다. 캐스퍼 일렉트릭 판매량이 순항하고 있는 데다, 기존 캐스퍼 가솔린 모델도 부분변경 모델이 출시되며 일정 부분 신차 효과가 생길 걸로 예상됩니다. 캐스퍼 일렉트릭 수출까지 본격화되면 당분간 일감 걱정은 없을 듯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파업으로 공장 가동이 멈춘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노조가 파업으로 압박하는 대상은 GGM 사측이지만, GGM에 생산을 위탁하는 현대차도 타격이 불가피할 겁니다. 기껏 제품 개발비와 마케팅비를 투자하고, 해외 판매망까지 구축해 놨는데 막상 팔 차가 없다면 난감하겠죠.
그렇다고 현대차가 GGM 측에 ‘차량 납품가를 대폭 올려줄 테니 근로자 임금도 대폭 올려라’고 하는 통 큰 결정을 내릴까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납품가를 대폭 올리면 판매 가격도 대폭 올려야 합니다. 비싼 경차는 절대 안 팔립니다. 그렇다고 비싸게 납품받아 싸게 파는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비즈니스의 세계는 냉정합니다. 통 크게 허세 부리다가는 깡통 찹니다.
GGM 노조가 직접 현대차에 임금 인상을 요구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앞서 언급했던 ‘현대차가 굳이 1대주주 지위를 마다한 이유’를 지금 알려드리죠. 바로 이런 상황을 우려했던 겁니다. 현대차가 1대주주로 GGM을 자회사로 뒀다면 GGM 노조가 협약을 파기하고 현대차 근로자에 준하는 대우를 요구할 경우 상당히 골치 아픈 상황에 처했을 겁니다.
하지만 현대차는 GGM의 2대 주주로 남으면서 그런 상황을 면할 수 있습니다. GGM의 ‘투자자’이자 생산을 위탁하는 ‘고객사’인 것이죠.
투자자나 고객사는 언제든 발을 뺄 수 있습니다. 당장은 벌여 놓은 일이 있으니 거래 관계를 끊진 않겠지만, 캐스퍼의 모델 노후화가 심해지고 차기 모델 투입 여부를 결정할 상황이 된다면 GGM의 설립 취지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을 하겠죠.
‘저임금’의 이점이 사라지고 노조 파업으로 생산 안정성도 보장할 수 없는 공장이라면 굳이 비용 부담을 무릅쓰고 차기 모델을 개발해 GGM에 생산을 위탁할 이유도 사라집니다. 고임금 생산공장이라면 현대차와 기아의 기존 국내 공장들만으로도 넘쳐납니다.
GGM은 ‘자동차 위탁생산 전문기업’입니다. 자체적으로 차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기능이 없으니, 위탁물량이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합니다. 현대차와의 거래가 끊긴다면, 다른 완성차 기업이 GGM에 생산을 위탁할까요? 그럴 가능성은 굉장히 희박하다고 봅니다. 노조 리스크로 기존 고객사가 발을 뺀 공장을 어떻게 믿고 생산을 맡기겠습니까.
결국 GGM 노조의 폭주는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일이자, 문재인 대통령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던 상생형 일자리가 허상이었음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대통령 시절 업적이었던 상생형 일자리는 위기에 놓이고, 거기서 생산된 캐스퍼 1호차는 딸의 음주운전 도구가 됐으니, 문 전 대통령에게 ‘캐스퍼’라는 이름이 여러모로 씁쓸하게 받아들여질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여담이지만, 문다혜 씨가 음주운전을 하기 전에 골목에 주차된 다른 차를 자신의 캐스퍼로 착각해 문을 열려 하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는데, 이 차는 고급 소형차 브랜드 미니(MINI)의 ‘컨트리맨’이라는 차입니다. 미니 브랜드 최고의 덩치를 지닌 데다, 가격은 캐스퍼의 4배쯤 되는 컨트리맨이 졸지에 경차 취급을 받는 굴욕적인 순간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