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요청 사항만 전해
윤 대통령 반응엔 극도로 말 아껴
대통령실과 여당 갈등 진정 안될 듯
김건희 여사 특검법 동요 가능성 ↑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사이의 면담이 끝내 빈손으로 끝이 났다. 한 대표가 김건희 여사에 대한 각종 조치를 요청하면서 대통령실의 문을 두드렸지만, 윤 대통령으로부터 그 어떤 만족스러운 답변도 받아내지 못하면서 갈등만 더욱 증폭됐다. 이에 이번 면담을 계기로 여당의 분열상이 가라앉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21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약 1시간 20분간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만 배석한 채 면담을 가졌다. 어렵게 성사된 면담이었지만 결과는 '빈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개된 면담 사진에서 윤 대통령과 한 대표, 정 실장의 표정은 연신 굳어있는 모습이었다. 통상 웃거나 화기애애한 모습을 담는 것과 달리 굳어있는 윤 대통령의 표정이 '날 것 그대로' 카메라에 담겼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면담이 진행된 탓인지 본래 직접 브리핑을 계획하기도 했던 한 대표는 면담 직후 즉시 집으로 향했다. 브리핑은 면담에 배석하지도 않았던 박정하 비서실장이 대신한 관계로 극히 소략했다.
박 실장은 이날 저녁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 대표가 오늘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나빠지고 있는 민심과 여론 상황 △이에 따른 과감한 변화와 쇄신의 필요성 △김건희 여사 리스크 해소를 위한 3가지 방안(대통령실 인적쇄신, 김 여사 대외활동 중단, 김 여사 의혹 상황에 대한 설명 및 해소) △특별감찰관 설치 △여야의정협의체 조속 출범 필요성을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더불어 한 대표가 윤 정부의 개혁 정책과 외교·안보 정책을 지지하고, 당이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는 점을 대통령께 말씀드렸다"며 "다만 개혁 추진 동력 확보를 위해 부담이 되는 것은 선제적으로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한 대표가 덧붙였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 대표는 고물가·고금리 등 민생 정책 관련 당정대 협력 강화에 대해서도 말씀드렸다"고 박 실장은 전했다.
다만 박 실장은 한 대표의 요구에 대한 윤 대통령의 반응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삼갔다. 사실상 '빈손'으로 돌아왔음을 시사한 것이다.
박 실장은 윤 대통령의 답변이나 반응을 묻는 말에 "내가 대통령을 답변이나 반응을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용산을 취재하는 게 맞다"고만 했다. 전반적인 면담 분위기에 대해서도 "내가 배석하지 않아 분위기를 전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통상 정치권에서 만남 이후 자신의 입장만 공개할 뿐 상대의 반응을 전하지 않고 '그쪽을 취재해서 알아보라'고 하는 것은 서로 간의 합의점을 찾지 못했을 때의 경우다.
다만 대통령실은 다소 온도차를 보였다. 대통령실은 면담과 관련해 "헌정 유린을 막아내고 정부의 성공을 위해 당정이 하나 되는 것으로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물론 김 여사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이렇게 윤·한 면담이 용산과 한 대표의 이견만 확인한 채 끝이 나면서 여권의 위기는 계속되게 됐다. 향후 용산과 여당, 또 친윤과 친한의 갈등이 봉합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야권이 재재발의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자칫 통과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앞서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 이후 국회 본회의에서 재의결을 거친 김 여사 특검법과 관련, 국민의힘에서 최대 4표의 이탈표가 나왔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재의결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한 대표가 야당 주도 특검법에 대한 반대 입장은 확고하지만 민심 수습을 위해 전향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 만큼 친한(친한동훈)계 의원들을 통해 독소 조항을 제거한 특검법 발의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경우 용산과 일부 친윤계 의원들의 반발 속에 당내 혼란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틈을 타서 야권은 여당의 분열을 더욱 촉발시켜 향후 정국을 돌파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1심 선고가 예정된 상황에서 이는 매력적인 카드가 아닐 수 없다. 면담이 있는 날 이 대표는 한 대표에 여야 당대표 회담을 제안했고, 한 대표는 이를 흔쾌히 수용했다.
일각에서 한 대표가 윤 대통령 압박을 위한 카드로 이를 수용했다는 해석도 나오는 가운데, 향후 이 제2차 여야 당대표 회담은 정국의 핵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게 됐다.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이재명 대표는 '차라리 여권을 흔들자. 균열을 내자'고 카드를 던졌고, 한 대표 입장에서도 받아야 하는 것이다보니 받았는데, 이렇게 될 경우 용산이 해법을 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 대표가 만약 '우리 당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민심을 수습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친한계 의원들끼리 아주 중립적 인사로부터 특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그런 것을 발의할 수 있고, 이 경우 야당도 반대하지 않을테니 (김 여사 특검법이) 통과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내다봤다.
아울러 그는 향후 친윤계와 친한계의 갈등 가능성에 대해 "대통령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를 찍은 상황이고, 여권 지지층이 한 대표를 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친윤계의 한 대표를 향한 비난은 계속되겠지만 이전만큼 '한 대표가 잘못했다'고 지적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이젠 친윤계와의 당내 갈등보다 용산과 국민의힘의 갈등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