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영화관 탐방기⑬]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연기복싱 체육관에 매료...세종에 터를 잡다
시네마 다방은 세종시의 독립·예술영화 전용상영관이다. 2022년 12월 로컬 크리에이터 지원사업으로 개관했다. '시네마 다방'이라는 핑크색 간판을 따라 올라간 곳은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극장과 다른 모양을 하고 있지만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시혜지 대표는 세종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아니다. 평생을 서울에서 보냈지만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이 촬영된 연기복싱 체육관을 본 후 이 곳에 매료됐다.
"영화제 활동을 하면서 다른 지역에 사는 것에 재미를 느껴 왔어요. 또 당시 서울에서 만원통근을 이겨내는 일도 지쳤고요. 연기복싱 체육관이 6.25 때 미군 보급품 막사였던 곳이라 역사적으로 좋아하고 '반칙왕' 촬영지로도 유명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애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철거시킨다고 하니 안타깝더라고요. 그걸 지켜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침 세종시에 독립예술상영관도 없었고요. 그래서 큰 생각 없이 5년의 계획을 세워놓고 기관에 로컬 크리에이터 산업에 지원했죠. 세종시에 이 일을 하는 분들이 전혀 없다 보니 그게 제게 기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없는 걸 만들어 내야 하는 것에 대한 힘듦도 있어요. 결국 작년에 연기복싱 체육관은 허물어졌지만 저는 제가 계획했던 걸 이뤄가는 중입니다."
타지에서 무언가를 일구고 만들어 나가는 일은 역시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곳을 운영해 오면서 관객도 늘어가고 단골도 생겼다. 올해는 정부의 지원 없이 지역 내·외 청년 창업자들의 자발적 협력을 통해(후원: 대전문화산업단지협동조합, 조치원 문화정원, 스틸마스프링, 센트럴파이) 지난해에 이어 '조치원 필름 로맨스' 영화제를 개최했다.
"처음에는 텃새가 심했어요.(웃음) 사실 저희는 세종시 지원이 아닌 문체부(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은 건데 주민 분들이 '네가 왜 세종시 지원을 받아 가냐'라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더라고요. 여기에서 영화 관련 일을 하니까 돈이 되는 줄 알고 영화제 하겠다고 하신 분들도 생기고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주는 돈이 없고, 저절로 생기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는 단발적으로 진행하고 다 떠나가시더라고요. 지금은 건드는 분도 없고 크게 응원하는 분도 없는 상태입니다.(웃음) 작년에는 지원 받아서 영화제도 열었어요. 올해는 지원을 못 받아서 도움 줄 수 있는 청년사업가들과 함께 했고요. 기관 지원 없이도 영화제를 할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처음에는 겁이 나긴 했는데 하다 보니 뜻이 맞는 분들과 도움을 주고 받으며 꾸려나가고 있어요. 관객도 늘고 제가 하는 일이 지역을 바꿀 수 있다는 게 몸소 느껴지니까 조금 더 잘 해보려고 해요."
시혜지 대표는 현재 이 곳을 혼자 꾸려가고 있다. 행사 있을 때마다 필요한 인력들은 프로젝트성으로 구성하거나 앞서 언급했듯 뜻이 맞는 이들과 손발을 맞춘다.
"왜 조직화 하지 않느냐는 말을 많이 들어요. 협동조합이든 뭐든 해보라고 하는데 전 안 하고 싶더라고요. 내가 비용을 줄 수 있는 일을 할 때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하는 걸 선호해요. 흔히들 '연대한다'라는 말을 쓰잖아요. 그런데 저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혼자 하는 게 편해요. 힘을 합쳐 너무 끈끈한 사이가 되는 것도 무섭고, 그분들이 가는 인생을 지도하는 것처럼 되는 것도 내키지 않고요. 자연스럽게 함께 하다 멈춰야 할 때 멈추는 게 제 심신에 안정이 돼요."
영화 '빚가리' 제작…"슈퍼스타 시혜지, 저를 구경하러 오세요"
최근에는 2022년 지역문화진흥원의 지역문화 콘텐츠 특성화 사업을 통해 100여 명의 지역민과 함께 제작한 영화 '빚가리'를 제작했다. 메가폰은 고봉수 감독이 잡았으며 세종시 원도심인 조치원을 배경으로 했다. 제작 후 지원사업이 중단돼 개봉이 미뤄져 올해 선보일 수 있었다. 결과도 좋았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제8회 울주울산세계산영화제에 초청 받았고, 전국의 독립예술영화 전용상영관 뿐 아니라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3사의 멀티플렉스에서도 개봉됐다.
"이 곳에서 '이런 영화도 있다'라는 걸 보여주는 일은 하고 있잖아요.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하면서 영화 만드는 일에 직접 참여하면 주민분들이 빠르게 영화를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빚가리'는 그 과정 중 하나입니다. 고봉수 감독님에게 이 작업을 부탁드렸는데 해주셔서 즐겁게 작업했어요."
시혜지 대표는 '빚가리'에 배우로 출연까지 했다. 본인이 유명해져야 시네마 다방에 자신을 구경하러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않겠느냐면서 웃어 보였다.
"제가 '빚가리'로 스타가 되겠다고 말하고 다녀요. 제가 연고가 없는 지역에 살다 보니 유명해져야 이 곳에서 짓밟히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요. 하하. 내가 유명해져야 쳐다봐주겠다 싶어서 스타 행세를 하고 다녀요. 그런데 진짜 보러 오신 분들이 있더라고요. 전주국제영화제 때 보고 실제로 절 구경하러 찾아와 주신 분들이 있었어요.(웃음)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빚가리'로 조치원을 관광지로 만들어야겠어요. 그래서 GV에 참석하면 저의 존재를 열심히 알리고 있죠."
시혜지 대표는 시네마 다방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외로운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이 곳에 홍익대학교 애니메이션학과가 있어서 영화를 만드는 친구들이 독립예술영화에 관심이 있어 많이 찾아줘요. 또 일 때문에 세종시에 온 젊은 청년들도 많고요. 이 곳은 오후 7~8시면 식당 문이 다 닫혀요. 저도 3년 동안 오후 6시 이후로 밖에 안나갔고요. 극장에 오는 분들도 모르는 동네에서 친구 없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외로운 청년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별로 없다보니 이 곳에 와서 영화도 보고 저와 이야기도 나누기도 하죠."
시네마 다방은 작은 규모로 인해 아직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전용 상영관으로 등록되지 못했다. 이에 이곳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의 스코어가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집계되지 않는다. 시 대표는 하루 빨리 등록돼 고전하는 독립영화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다.
"제가 재개봉 영화는 잘 안 틀어요. 독립예술영화가 상영관 잡기도 힘든데 재개봉작까지 들어오면 더 힘들어지겠더라고요. 큰 힘은 되지 않겠지만 나름대로의 제 기조예요. 작은 극장들이 늘어나 독립예술영화들이 더 많이 상영되지 않을까요? 작은 극장의 스코어 집객만이라도 해줘서 독립예술영화에 도움을 줘야 하지 않나 싶어요. 시네마 다방은 상영업으로 법령은 다 지키면서 만든 공간이지만 규모가 되지 않아 아직 인정 받지 못하고 있어요. 청년들에게 계속 콘텐츠를 만들라고 시키면서 이걸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지 못하고 있잖아요. 작은 극장이 많아지면 개봉을 잡지 못한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더 많이 소개 될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