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임시주총서 표대결...국민연금 ‘중립’에 장기전 양상
9월 ‘기업가치 우수기업’ 선정...오너일가 다툼은 점입가경
지주사와 핵심 자회사 엇박자...사업 추진 차질 우려 커져
한미약품그룹 오너일가간 경영권 분쟁이 1년여간 지속되면서 기업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는 투자자들 불만이 거세지고 있다. 여기에 밸류업 지수에 포함된 종목이 분쟁 속 높은 주가 변동성과 기업가치 훼손 우려에 휩싸이며 밸류업 지수의 적정성 논란에 더욱 불을 붙이는 모양새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한미사이언스의 임시 주주총회가 개최되는 가운데 증권가에서는 그룹 정상화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밸류업지수의 구성 종목 중 하나인 한미약품이 장기간 경영권 분쟁을 이어가면서 밸류업이 아닌 ‘밸류다운’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미사이언스는 한미약품과 한미정밀화학 등을 자회사로 둔 지주회사다.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모녀 측)은 한미사이언스의 개인 최대 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함께 ‘3자 연합’을 꾸려 장남인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이사·차남 임종훈 한미사이언스대표 형제와 그룹 전체 경영권 향방을 놓고 약 1년간 대립하고 있다.
한미사이언스 지분율은 3인 연합(44.97%)이 형제(25.62%)보다 우세한 상황이다. 다만 캐스팅보트 국민연금이 최근 한미사이언스 임시 주총 안건에 대해 ‘중립’을 선언하면서 소액주주(23.25%)의 선택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미사이언스 주총 안건은 3자 연합이 제안한 이사회 인원을 10명에서 11명으로 늘리는 정관 변경 건과 신동국 회장·임주현 부회장 2인의 이사 선임 건 등이다. 업계는 정관 변경의 건 부결, 이사 선임의 가결이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현재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총 9명으로 임종윤·종훈 형제와 형제 측 인사가 5명, 3자 연합 측이 4명이며 한 자리는 공석이다. 정관 변경의 건이 부결돼 이사회 정원이 10명으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3자 연합 측 신규 이사가 선임될 경우 5대 5 동률로 맞춰지며 갈등이 더 격화될 전망이다.
업계에선 한미사이언스의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까지 이사회 운영이 사실상 마비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양측은 당장 내달 19일 열리는 한미약품 임시 주총에서도 3자 연합 측인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를 해임하는 안건 등을 다룰 예정이다. 표 대결을 앞두고 양측은 최근 서로 고소·고발을 통해 법적 분쟁 수위도 높이고 있다.
이에 지주사와 핵심 사업회사 간 사업 추진이 교착 상태에 빠질 것이란 시장의 우려도 커졌다.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은 최근 각기 다른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발표하면서 소액주주 달래기에 나섰으나 이미 양측이 엇박자를 타고 있는 상황에서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한미약품은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포함된 종목 중 하나라는 점에서 파문이 더 확산되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9월 기업가치 우수 기업을 밸류업 구성 종목으로 선정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발표했는데 한미약품과 고려아연, 두산밥캣, 이수페타시스 등 올해 주주가치 훼손 문제를 일으킨 기업들이 줄줄이 이름을 올렸다.
이를 두고 논란이 커지면서 최근 거래소는 내달 20일 밸류업 지수의 편입 종목을 특별 변경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다만 시장과 투자자들의 피해를 감안해 기존 편입 종목에 대한 편출은 예정대로 내년 6월 정기변경 때 실시한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결국 한미약품을 포함해 밸류업 역행 비판을 받는 기업들이 잔류하면서 지수의 초기 편입 적정성에 대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미약품의 주가는 경영권 분쟁 전인 올해 1월 3일 장중 37만7000원으로 52주 최고가를 기록한 뒤 등락을 반복하다 8월 5일에는 장중 25만8000원으로 52주 최저가를 쓰는 등 변동성을 이어갔다. 이후 지난달 18일 다시 장중 37만5000원을 넘겼지만 이달 중순 이후 30만원선이 무너진 상태다.
이상헌 iM증권 연구원은 “재벌가 오너 3·4세 시대를 맞아 경영권 분쟁뿐만 아니라 지배구조상 큰 문제점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현재의 고려아연과 한미약품그룹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며 “한미약품그룹의 경우 뚜렷한 우군이 나타나지 않은 한 모녀와 형제 간의 경영권 분쟁이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