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제2 민항사로 탄생 후 36년간 양대 항공사로 하늘길 지켜
금호아시아나그룹 주력 계열사에서 그룹 해체로 '미아' 신세
대한항공으로 인수작업 마무리…2년 뒤 38년 역사 끝내고 합병
#포지티브적 해석 : 대형 항공사+대형 항공사 = 메가 케리어 탄생.
#네거티브적 해석 : 전 국민이 '낚아 놓은 물고기' 취급 받을 수도.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지분 63.9%를 확보하며 항공기 238대와 42조8000억원의 자산을 보유한 ‘메가 캐리어’가 탄생했습니다.
인수합병(M&A)은 곧 피인수 기업의 소멸을 의미합니다. 우선 ‘인수’만 하고 아시아나항공을 자회사로 운영하다 ‘합병’은 2년 뒤에 한다는 게 대한항공의 계획이라고 하니 2026년부터는 ‘아시아나’ 브랜드와 색동 날개, 승무원들의 갈색 유니폼을 볼 수 없게 되겠군요.
외부인 보다는 내부에 계신 분들이 아쉬움이 더 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시아나항공을 탄생시켜 대형항공사로 키워놓고 떠나보낸 옛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관련된 분들 역시 속이 쓰릴 듯합니다.
88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제2민항사 아시아나항공이 출범했을 당시만 해도 ‘우리처럼 작은 나라에 국적항공사가 두 개나 있을 필요가 있나’라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사실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오가는 사람이 그리 많지도 않았습니다. 군부독재의 상징 전두환 정부가 그해 초까지 집권했었거든요. 일반 국민들의 해외여행에는 제약이 많았고, 이듬해인 1989년에서야 전면 자유화 됐습니다.
설립 초기에는 김포공항을 거점으로 부산, 광주, 제주 등 국내선만 운항했었습니다. 요즘 LCC(저비용항공사)보다도 초라한 수준이었죠. 하지만 90년대 들어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 유럽 등 국제선을 확대하고 기재도 공격적으로 늘리며 급격하게 덩치를 키웠습니다.
급기야는 국내 유일의 국적항공사였던 대한항공과 맞설 수준까지 커졌죠. 두 항공사는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와중에 세계 정상급 서비스와 안전성을 갖추게 됐고, 우리 국민은 세계 정상급 국적항공사 두 곳 중 하나를 골라서 이용하는 호사(?)를 누리게 됐습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해 반대 목소리가 컸던 것도 어쩌면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점 구도는 설령 독점 사업자가 횡포를 부리지 않더라도, 나태함만으로도 소비자에게 불리한 환경을 초래할 가능성이 큽니다. 낚아 놓은 물고기에는 떡밥을 주지 않게 마련이니까요.
아시아나항공을 탄생시킨 이는 금호그룹 창업자인 고(故) 박인천 회장의 장남 고 박성용 회장이었습니다. 고속버스 회사였던 금호를 아시아나항공 출범과 함께 대기업 레벨로 끌어올린 인물이죠.
특이하게도 이 회사는 장남 직계가 아닌 형제끼리 경영권을 물려받는 구조였습니다. 창업 2세대 4형제가 그룹 지분을 동일하게 보유하고, 회장은 합의로 추대하며, 회장직은 65세까지 최장 10년을 넘기지 않는다는 내용의 합의서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박성용 회장에 이어 차남 박정구 회장, 3남 박삼구 회장이 차례로 경영을 맡게 됐습니다. 박삼구 회장 때는 아시아나항공의 비중과 브랜드 파워를 감안해 그룹 이름도 금호아시아나항공으로 바꿉니다.
순탄하게 이어지는 듯 했던 형제 승계는 박삼구 회장 경영 체제가 이어지며 어그러집니다. 박 회장이 합의서에서 회장직 나이 제한을 없애고, 회장 추대에 대한 의견이 엇갈릴 경우 연장자 의견을 따른다는 식으로 본인에게 유리한 조항을 넣은 것이죠. 다음 순번인 4남 박찬구 회장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던 와중에 박삼구 회장이 무리수를 둡니다. 2006년 대형 건설사인 대우건설 인수를 추진한 것입니다. 지분 72.1% 인수에 무려 6조4255억원을 쏟아 붓습니다. 3년 전인 2021년 중흥건설에 2조원에 팔린 그 대우건설 맞습니다. 2006년과 2021년 돈의 가치도 차이가 있으니 엄청난 무리수였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08년에는 4조1040억원을 들여 대한통운을 인수합니다. 이때도 기업가치를 지나치게 고평가했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코오롱고속과 속리산고속까지 인수하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재계 서열 7위까지 올랐습니다. 대한항공을 주력으로 하는 한진그룹보다 높은 서열이었습니다.
이대로 소화를 잘 시켰다면 모르겠지만 10조원을 넘는 인수 자금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금액이었습니다.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박삼구 회장은 닥치는 대로 돈을 끌어들입니다. 계열사들을 동원해 금융권에서 차입하고, 사모펀드 등과 풋백옵션 계약을 체결하는 등 무리한 자금 확보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을 빚더미에 오르게 합니다.
가뜩이나 승계 문제로 불만이 많았던 동생 박찬구 회장이 가만히 있을 리 없습니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에 반대했던 박찬구 회장은 자신의 목소리가 묵살당하고 2009년 자금난이 본격화되자 금호건설 주식을 매각하고 자신이 이끌던 금호석유화학 지분 매입에 나섭니다. 당시는 ‘형제의 난’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난파선에서 그나마 멀쩡한 금호석유화학이라도 떼어 내 탈출한 게 현명한 판단이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계열분리 이후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빠르게 추락합니다. 경영난의 원흉이 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은 물론, 다른 계열사들까지 차례로 토해 내며 빚을 갚아 나가지만 한 번 터진 위기의 구멍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마지막 희망은 아시아나항공이었는데, 이마저도 지키지 못합니다. 2019년 3월 박삼구 회장이 경영권 포기와 함께 사퇴하고, 그해 4월에는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결정합니다. 남은 건 금호고속과 금호건설 뿐이었으니, 이때 사실상 그룹 해체가 결정된 셈입니다.
매물로 나온 아시아나항공은 그해 말 HDC현대산업개발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인수계약 체결로 새 주인을 만날 뻔 했지만, 이듬해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발생하면서 뒤집힙니다. HDC현대산업개발로서는 하필 항공사를 인수하려는 시점에 국가간 이동이 제한되는 최악의 불운을 만나게 된 거죠.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진정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실적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주가도 급락하는 항공사를 인수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죠. 결국 HDC현대산업개발은 계약금 2500억원을 날리고 계약을 철회합니다.
이후 공중에 붕 떠 있던 아시아나항공이 라이벌 대한항공을 새 주인으로 맞게 된 것은 한진그룹의 경영권 승계 문제와 맞물립니다.
당시 주채권은행이었던 KDB산업은행(산은)으로서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HMM 등 돈을 빌려줬다가 회사 자체를 통째로 떠안으면서 생긴 군식구들로 가뜩이나 골치를 썩고 있는데, 아시아나항공 관련 채권까지 지분으로 전환해 군식구 대열에 합류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 때 경영권 승계 문제로 골치를 썩던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조 회장은 누아인 조현아 전 부사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었는데, 사모펀드 KCGI와 반도건설이 조 전 부사장 쪽에 붙으면서 결성된 ‘3자 연합’이 만만치 않은 상대였습니다. 3자 연합은 한때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지분 도합 45.24%를 보유해 조 회장과 특수관계인 및 우호지분을 압도했습니다.
이때 산은이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10.58%의 지분을 확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3자 연합의 지분율은 희석되고 산은이 확보한 지분이 조 회장의 우호지분 역할을 하면서 판세가 뒤집혔습니다.
산은이 ‘우군’이 돼 주는 대가로 조 회장에게 기대한 것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었습니다. 조 회장으로서는 주력 계열사의 덩치를 키우면서 그룹에 대한 안정적인 지배력도 확보하는 방법이니 매우 감사한 제안이었겠죠.
지금은 경영권을 위협할 3자 연합이 와해된 상태지만, 조 회장은 본인 보유지분과 친족, 계열사 지분을 더한 지분율이 19.05%에 불과합니다. 산은 지분 10.58%를 반드시 우호지분으로 남겨놔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난 4년간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 경쟁당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알짜 노선을 내주고 화물 사업을 매각하는 등 온갖 손해를 감수하고 맘고생을 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한다면 산은이 굳이 한진칼 지분을 들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요?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건강한 구조개편 및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시너지를 통한 시장 지배력 확대’라는 오피셜한 배경도 대충 지어낸 말은 아니겠지만, 그보다 절박한 배경은 조 회장의 안정적인 한진그룹 지배력 확보였던 셈이죠.
배경이야 어찌 됐건 인수는 성사됐고, 이제 원활한 합병으로 국내 유일 대형항공사가 세계 톱 레벨의 메가 캐리어로 도약하는 게 국익을 위해 최선입니다.
어느덧 36세가 된 아시아나항공. 2년 시한부니 38세에 생을 마감하겠군요. 해외 출장 때마다 아시아나항공을 자주 이용했던 입장에서, 2년 뒤 색동 날개와 갈색 유니폼이 사라진다면 많이 그립겠지만, 이제 하늘색에 적응해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