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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김보영, 제2의 ‘파친코’를 꿈꾼다 [K문학, 할리우드로①]


입력 2024.12.28 11:26 수정 2024.12.28 11:26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김지운 감독, '홀' 메가폰…정호연·테오 제임스 주연

콘텐츠·출판계 업계 긍정적 신호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엔터테인먼트 시장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 시장 진출 및 도전은 큰 의미를 지닌다. 한국의 경우 케이팝(K-POP)과 영화, 드라마는, 진출을 넘어 안착과 확산 전(前) 단계 수준의 성과를 거뒀다. 그러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영역이 한국 문학이 갖는 ‘이야기의 힘’이다. 한국적 상황을 담은 한국 문학이 펼치는 이야기에 할리우드가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시작은 애플TV플러스의 ‘파친코’다. 시즌1의 성공으로 시즌2까지 제작되며, 대한민국 역사 속 이야기에 전 세계가 매혹됐다. 사실 ‘파친코’는 한인 작가 이민진이 글로벌 독자를 대상으로 쓴 영미 소설로 ‘순수 K문학’이라는 인장(印章)을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제강점기부터 일본 내 재일조선인들의 삶을 조명하며, 한국인만이 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서사로 ‘한국적 이야기’로 인정받았다. 한국의 슬픔과 고통의 역사가, 세계의 비극과 역사로 확장될 때 보편적인 공감과 연대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파친코’가 ‘한국적 이야기’의 맛을 전 세계인에게 보여줬다면, 본격적으로 ‘순수 K문학’의 ‘한국의 이야기’를 미국에 보여줄 작품은 편혜영 작가의 소설 ‘홀’이 될 예정이다.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될 예정인 ‘홀’은 김지운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앤솔로지 스튜디오의 샘 에스메일 감독과 할리우드 제작진이 협업해 제작한다.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병원에 입원한 남자가, 한국인 장모의 보살핌을 받는 과정에서 딸과 사위의 결혼생활을 비롯해 사위의 파괴적 진실을 밝혀내는 이야기를 그린 ‘홀’은 테오 제임스와 정호연이 주연을 맡으며 화제가 됐다. '홀'의 영상화는 한국 문학 특유의 감각과 서사가 글로벌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줄 첫 시험대로 기대를 모은다.


편혜영 작가가 물꼬를 튼 할리우드 진출은 김보영 작가의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가 바통을 받는다. 영화 ‘듄’의 각색가 에릭 로스가 참여해, K문학의 변신을 기대케 한다. 이어서 김주혜 작가의 ‘바이오둠’, 김병주 작가의 ‘오퍼링스’가 할리우드에 진출해 K문학이 갖는 ‘이야기의 힘’이 어떤지를 보여줄 예정이다


ⓒ고즈넉 이엔티

실상 K문학의 미국 시장 도전은 조금 더 일찍 진행할 수 있었다. 2019년 박은우 작가의 '청계산장의 재판'이 미국 유니버셜TV와 드라마화 계약을 맺은 것이다. 당시 파일럿 제작은 그래티튜드 프로덕션의 린지 고프만 총괄 프로듀서(PD)가 맡기로 알려졌다. 린즈 고프만 총괄 PD는 KBS 드라마 '굿 닥터'를 리메이크한 미국 드라마 '굿 닥터'의 총괄 PD다. 성사된다면 미국 메이저 방송사가 한국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최초의 드라마가 된다.


다만, 계약 소식 후 구체적인 제작 단계와 공개 일정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청계산장의 재판’은 계약만 유지되는 상황이라, 현재 촬영 중인 ‘홀’이 한국 소설을 원작으로 한 첫 영화로 평가받을 전망이다.


한국 소설이 할리우드에서 주목받는 상황은 ‘한국 문화의 세계적 확산의 흐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과거 한국 문학이 학문적 가치는 높이 인정받고도 영상화에까지 이르지 못했던 이유는 미국 시장 내 대중적 영향력이 약했던 점과 맞물려 있다. 영어권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한국 소설은 번역 출판의 제약과 낮은 인지도라는 한계를 가졌다.


‘쳥계산장의 재판’을 발굴한 고즈넉이엔티의 윤승일 이사는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최강국’은 미국이다. 굳이 변방의 작은 나라 이야기까지 들여다볼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할리우드가 한국 소설에 관심을 가지고 본다면 보통 미국에서는 알 수 없는, 한 나라의 독특한 문화, 정치,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이야기가 보일 때다”라고 밝혔다.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2020년 출간한 자전적 소설 ‘오퍼링스’를 원작으로 한 ‘오퍼링’ 연출을 맡아 앤솔로지 스튜디오와 손잡은 앤소니 심 감독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의 배경인 한국이 외환 위기를 겪었던 IMF와 여기에서 촉발되는 주인공, 가족 및 친구와 겪는 갈등, 도덕적인 딜레마 등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찾은 앤소니 심 감독은 “‘오퍼링’을 한국적인 영화로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런 작품은 이미 많이 나왔다. 국가적인 위기 상황 속에서 한 사람의 여정에 초점을 두고 싶다”라고 작품의 방향성을 전하기도 했다.


한국 소설의 할리우드 진출은 출판계와 콘텐츠 업계 모두가 반기는 긍정적인 신호다. 출판계는 할리우드에서 한국 소설이 영상화되는 흐름을 통해 원작을 향한 관심이 높아지고, 번역 출판의 활성화, 새로운 독자층 확보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영상화는 단순히 작품의 이야기를 영화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원작 소설의 가치와 매력을 재조명하는 중요한 기회와 함께 향후 더 많은 한국 소설이 영상화되는데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인은 문학과 영상 매체 간의 시너지를 통해 한국 문학이 세계적으로 확장되는 하나의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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