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액션영화 발전 이끈 스턴트맨 세계
스턴트맨(Stuntman). 영화나 드라마에서 짜릿하고 스펙터클한 액션 장면을 완성하는 이들이다. 배우 대신 촬영에 나설 때 ‘얼굴 없는 주인공’이 된다. 배우와 똑같은 복장과 분장을 하고, 배우 대신 고공 낙화, 카체이싱 등 위험한 연기를 소화한다. 화려한 음악과 배경, 카메라 액션을 더해진 배우의 액션은 대중이 평가하지만, 촬영 관계자와 촬영 장비만 있는 공간에서 하는 스턴트맨의 연기는 감독과 스태프, 동료들이 평가한다. ‘컷 잘했어’는 그러기에 가장 큰 칭찬이다.
한국 영화계에서 스턴트맨이란 직군을 알린 인물은 정두홍 감독이다. 정 감독은 1990년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 후 '태극기 휘날리며'(2004), '짝패'(2006), '군도'(2014), '베테랑'(2015), '봉오동 전투'(2019) 등 다수의 굵직한 작품에 출연 및 연출하며 업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할리우드 영화 '존 윅'의 스핀오프 '발레리나'에도 캐스팅되며 활동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스턴트맨에서 무술 감독, 나아가 영화감독으로 성장한 그는 한국 액션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특히 1998년 김영빈 감독과 함께 설립한 서울액션스쿨은 배우와 스턴트맨들에게 무료로 체계적인 액션 연기 교육을 제공하며 업계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이러한 노력은 스턴트맨이 단순히 대체자 역할에 머물지 않고, 창의적인 연출과 영화의 완성도를 책임지는 존재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97년 '비트'를 시작으로 '밀정', '부산행', '터널', '강철비', '군함도', '범죄도시', '악녀', '모가디슈', '헌트', '밀수', '리볼버', '베테랑2', '전,란', '황야' 등이 서울액션스쿨 출신 스턴트맨이 참여했다. 지금까지 서울액션스쿨을 거쳐간 스턴트맨은 수백명 이상이며 현재 29기를 모집하고 있다. ‘범죄도시’의 무술 감독이자 시리즈 2편의 허멍행 감독, ‘악녀’의 정병길 감독 등도 서울액션스쿨 출신이다.
정두홍 감독은 “액션은 시나리오의 콘셉트와 리얼리티에 기반해야 하며, 감정이 담겨야 한다”는 액션 철학을 강조한다. 이는 단순히 화려한 동작을 넘어, 관객이 캐릭터와 함께 숨을 멈추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액션 연출의 본질을 설명한다. 과거 한국 액션 영화가 단순히 나이트클럽 싸움이나 창고 격투 같은 장면에 머물렀다면, 현재는 날로 진화하는 액션 디자인을 통해 관객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그럼에도 스턴트맨은 늘 긴장을 놓지 않아야 한다. 경험이 많아도 사고의 위험은 언제나 존재한다. 노남석 무술 감독은 차량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촬영하다 머리를 다쳐 뇌출혈을 겪었으며, 지중현 무술 감독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촬영 중 이동하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김선웅 무술 감독 역시 말과 트램펄린에서 떨어져 무릎과 발목 수술을 받아야 했다.
정두홍 감독은 “과거에는 제작비 부족으로 안전장치 마련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촬영 현장에서 차량, 낙하, 불 액션 등의 촬영이 세분화되어 안전장치가 잘 되어 있다. 또 과거에는 일의 위험과 달리 대가도 잘 받지 못하거나 대우가 좋지 않았지만, 현재는 대가도 정당하게 지급되는 환경으로 개선됐다”라고 전했다.
현장에서 스턴트맨으로 4년째 활동 중인 김연준 씨(가명)는 "안전한 환경에서 창의적인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지원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고 느낀다. 사전 준비가 점점 철저해지고 있음을 짧은 시간 안에 느꼈다"라며 "업계 전반에서 스턴트 연기를 존중하며 체계적인 지원이 지속된다면 더 수준 높은 액션 연출들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향후 스턴트맨들의 기량이 관객들에게 더욱 돋보일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익명성’도 스턴트맨의 숙명이다. 정두홍 감독에 이어 허명행, 원신연 감독, 배우 마동석이 스턴트와 액션의 가치를 대중적으로 인정받았고 정병길 감독은 '악녀'로 칸 영화제서 호평 받은 이후 할리우드 SF 액션 영화 '애프터 번' 연출을 맡으며 스턴트 연출과 액션의 예술적 가치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했다. 이들은 본인들의 이름을 알렸지만 여전히 드문 사례다.
스턴트맨이란 직업을 향한 편견도 남아 있다. 김선웅 무술 감독은 “스턴트맨을 힘들고 불쌍한 사람으로 묘사하거나 희화화하는 연출이 불편하다”며 이들이 단순히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전문적인 작업자로 존중받아야 함을 강조했다.
스턴트맨 개인의 역량 강화만으로는 이러한 편견을 완전히 극복하기 어렵다. 외적인 환경 변화 또한 필수적이다. 보다 강력한 안전장치를 도입하고 체계적인 작업 환경을 구축해 스턴트맨들이 고난도의 작업을 더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액션 연기가 단순한 부수적 요소가 아닌 작품에서 핵심적인 볼거리가 될 수 있는 시나리오 등이 많아진다면 스턴트맨들이 설 자리가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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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홍 감독은 이에 대해 “스턴트맨과 무술 감독들이 부지런히 연구하고 공부하며 더 좋은 액션을 만들어내다 보면 다양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 직업이 단순히 대체자 역할로 머무르지 않고,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도전을 통해 한국 스턴트계의 발전과 함께 개인의 성취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