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방·각 주 차원서 전략적 준비자산 편입 추진
인플레이션 방어·산업 선점 등 목적
EU는 회의적..."자산 안정성 검증 안 돼"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을 국가 전략적 준비자산으로 편입하는 데 각국 여론이 갈리고 있다. 미국에선 전략적 준비자산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유럽연합(EU)은 다소 회의적이다.
4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신시아 루미스 미국 상원의원은 비트코인을 국가 전략적 준비자산으로 포함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미국 경제의 장기적 안정을 목표로 하며, 정부가 향후 5년간 100만 비트코인을 매입한 뒤 최소 20년 동안 보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시아 루미스 의원은 대표적인 친 가상자산파 정치인으로, 최근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디지털 자산 소위원회 위원장으로 공식 취임한 바 있다.
전략적 준비자산이란 통화 당국이 무역 불균형이나 환율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보유하는 통화, 원자재 등의 '현금화가 가능한' 자산을 말한다. 현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준비자산은 금, 외화, 특별인출권(SDR) 등이다. 미국은 달러 가치 안정성과 위기 시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준비자산을 쌓아왔다.
해당 법안이 상원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최소 60표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루미스 의원은 루미스 의원은 워싱턴 D.C.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현재 여러 의원과 논의를 진행 중이며, 법안 통과를 위한 양당 협력체 구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비트코인의 전략적 준비자산을 공언해왔다. 지난해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서 "미국 정부가 현재 보유하거나 미래에 획득하게 될 비트코인을 100% 전량 보유하는 게 내 행정부의 정책이 될 것"이라며 "이것은 사실상 미국의 전략적 비트코인 비축량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가 차원의 논의와 별개로 미국 15개 주에서도 비트코인을 전략적 준비자산에 포함시키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자산 전략자산 비축 추진에 동의한 미국의 주정부는 펜실베이니아, 플로리다, 텍사스, 오하이오, 앨라배마,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뉴햄프셔, 오클라호마, 매사추세츠, 와이오밍, 유타, 애리조나, 일리노이, 켄터키 등이다. 이 중 애리조나와 유타주는 법안 처리 절차가 가장 빠른 것으로 나타났으며 2개 주 모두 백악관 및 상원 심사 단계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이 비트코인을 전략적 준비자산에 포함시키려는 이유는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발행이 사실상 무제한인 달러 등 법정화폐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 하락이 불가피하다. 반면 비트코인은 희소성이 있는 자산으로, 기존 통화와 달리 발행량이 2100만개로 제한돼 있다. 채굴량이 제한된 금과 유사한 성격이다. 이미 전략적 준비자산에 편입된 금과 함께 비트코인을 경기 불황이나 통화 가치 하락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 이용하겠다는 구상이다. 또 수년 사이 급성장하고 있는 비트코인을 위시한 가상자산 시장의 선도적 입지를 확보, 향후 금융·경제 분야에서 주목받는 디지털 자산과 블록체인 관련 분야를 선점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미국이 디지털자산의 전략자산 비축에 적극적 기조를 보이는 반면 유럽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체코 중앙은행이 비트코인 등 다양한 디지털자산을 국가 전략적 준비자산으로 포함하는 것을 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유럽중앙은행(ECB)이 즉각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EU의 이같은 조치는 비트코인의 변동성에 우려하며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기조로 분석된다. EU는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성이 크다고 판단해 이를 전략자산으로 보유하는 것이 재정 안정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또한 유럽중앙은행은 자체 디지털유로 개발에 집중하고 있어 비트코인과 같은 탈중앙화된 자산보다는 중앙은행이 직접 통제하는 디지털 화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유럽연합 이사회는 중앙은행의 준비자산이 유동성, 안전성, 안정성을 갖춰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자산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은 비트코인을 중앙은행 준비자산 목록에 포함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혁 디스프레드 리서처는 "미국은 가상자산 산업을 국가 경쟁력 강화의 수단으로 보고 있고 규제 완화 등 친가상자산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EU는 2024년도 연말부터 미카(MiCA)법을 시행하며 가상자산 시장 확대보다는 우선적으로 안정적인 시장 형성을 위한 명확한 규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각 국은 가상자산 산업 규제에 대해 상반된 입장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