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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족쇄' 벗은 이재용,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 [박영국의 디스]


입력 2025.02.04 11:25 수정 2025.02.04 12:12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사법리스크로 경영활동 제약' 변명의 여지 사라져

뉴삼성 선언, 조직 쇄신, M&A 등 봉인 해제

사회적 기대 속 '삼성 위기 돌파' 결과물 보여줘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부당합병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기일을 마친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이 회장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 받았다. ⓒ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3일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며 지긋지긋한 ‘재판 족쇄’에서 발을 빼게 됐다. 그의 재판에 쏠려 있던 세간의 관심은 이제 삼성전자 위기 돌파를 위한 그의 경영행보로 옮겨가게 됐다.


이 회장은 대한민국 재계에서 상징성이 가장 큰 인물이다. 오랜 기간 재계 서열 1위 자리를 지켜온 삼성을 이끄는 총수라는 자리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경제, 산업은 물론 정치와 이념적 이슈에서도 중심에 서 있게 만든다.


경제가 어려워질 때도, 취업난이 심화될 때도, 코로나19로 마스크가 부족할 때도 이재용을 찾는다. 심지어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져도 이재용은 소환된다.


기업인, 소위 자본가를 적대시하는 진보 좌파와 노동계의 화살도 그에게 집중된다. 이재용을 잡아넣는 게 그들에게는 자본주의의 수괴(?)를 상대로 승리했다는 상징적 만족감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이후 무려 8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사법리스크에 시달린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이재용 회장의 재판 과정이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재계와 보수 우파는 그와 삼성전자가 가진 경제적 영향력을 들어 사법리스크의 조기 해소를 주장했고, 노동계와 진보 좌파는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물일수록 더 엄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며 엄벌을 촉구했다.


두 진영의 대립은 지난해 삼성전자 위기론이 본격화되고 대외 불확실성 증대에 따른 한국 경제 위기론까지 더해지면서 변화를 맞았다.


“검찰이 수시로 웬만한 회사 자료를 갖고 심심하면 내사를 한다. 배임죄 이런 것으로 조사를 하면 회사가 망해 버린다. 삼성도 현재 그러고 있는 것 같다. 이재용 회장이 항소를 당해서 재판에 끌려 다니는데 의사결정이 되겠느냐. 이제는 기업인을 배임죄로 수사하고 처벌하는 문제를 공론화할 때가 된 것 같다.”


이 발언은 놀랍게도 진보 야당의 수장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입에서 나왔다. 지난해 11월 20일 ‘국내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한 일반투자자 간담회’에서의 발언이다.


외연 확장을 위해서는 ‘경제를 도외시하고 이념에만 매몰된’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는 차기 대권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되지만, 삼성의 위기 극복과 우리 경제의 재도약이 이재용 회장의 사법리스크 해소와 무관치 않음을 진보 진영의 수장이 인정했다는 점에서 상징하는 바가 컸다.


이후로 이재용 회장이 책임경영 차원에서 삼성전자 등이기사로 복귀해야 한다는 주장이 진보진영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권한만 챙기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비난 섞인 어조지만, 등기이사 복귀 요구는 ‘사법리스크 해소’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과거보다는 확실히 전향적인 분위기로 받아들여진다.


비록 일부 시민단체와 노동단체에서 이 회장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긴 했지만 대세는 ‘빨리 재판 족쇄를 풀고 나와 삼성과 국가 경제를 위기에서 구하라’는 쪽으로 모아졌다.


결국 이재용 회장을 둘러싼 사법리스크는 해소됐다. 재판부의 무죄 판결에 오롯이 법리적 판단만 적용됐는지, 삼성과 국가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는 그를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부라도 개입됐는지 모를 일이지만, 재판부를 떠나는 그의 어깨에는 사회적 기대가 묵직하게 실렸다.


응원과 동정이 섞였던 이전의 시선과 달리 앞으로 그를 향하는 눈초리는 매서울 수 있다. “위기론의 원흉이었던 사법리스크가 사라졌으니 이제 위기 돌파를 해 보라”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동안은 사법적 파장을 우려해 ‘뉴삼성 전략’과 같은 선언적 메시지를 자제하고, 불안한 입지로 인해 조직 쇄신이나 M&A에 소극적이었을지 몰라도 이젠 봉인이 해제됐다. 변명의 여지가 사라진 것이다.


삼성과 같은 덩치의 초일류 기업이 위기에서 단숨에 극적인 반전을 이루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 할지라도 많은 이들은 이 회장에게 그 일을 해내길 기대한다. 2025년 2월 3일 이후의 삼성이 그 이전과 확연히 달라져야 하는 이유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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