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인척 부당 대출부터 직원-브로커 공모 금품수수까지
단기 성과 치중 지적…“재발 방지 시스템 구축” 약속
“내부통제 강화 힘써야…뼈 깎는 노력 필요” 목소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은행권들을 향한 경고가 현실화 될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이 금융지주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취급을 비롯해 지점 직원과 브로커가 손잡고 금품을 수수하는 등 다양한 대규모 부당대출을 잇따라 저지른 것으로 밝혀지면서다.
부당 대출을 넘어서 관련 후속 대응도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 KB국민·우리·NH농협은행 등은 이복현 원장의 매운맛 카드에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본원에서 열린 ‘2024년 지주·은행 주요 검사결과 설명회’ 후 기자 브리핑에서 “이번 (금융지주·은행 주요 검사 결과)에 보면 성과주의 실패 사례가 (은행권에서) 계속 발생되고 있다”며 “부실한 내부통제나 불건전 조직문화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응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금감원은 이 날 지난해 국민·우리·농협은행 현장 검사를 통해 482건, 3875억원 규모의 부당대출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들 은행의 상황을 살펴보면 손태승 우리금융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을 비롯해 은행 직원과 브로커가 공모해 금품을 수수한 사례도 등장했다. 더 나아가 금융사 임직원이 단기성과를 위해 다른 직원과 공모해 대출서류를 조작하는 등 내부통제를 무력화했다.
이를 두고 금감원은 이들 은행이 중장기적인 경영 전략에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단기 성과에 치중하도록 핵심성과지표(KPI)를 설계해 사태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우리은행은 정기검사를 통해 기존에 확인된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의심대출 350억원 이외에 다수 임직원이 관여된 부당대출 380억원을 추가 적발(총 730억원)했다. 730억원 중 451억원(61.8%)은 현 경영진 취임 이후 취급됐다.
더 나아가 우리은행 전현직 고위 임직원 27명(본부장 3명, 지점장 24명)이 단기성과 등을 위해 대출심사 및 사후관리를 소홀히해 부당대출 1604억원을 취급했다.
우리은행은 손 전 회장이 행장 재임 시절 대폭 완화시킨 여신 관련 징계 기준을 현재까지 방치해 여신 관련 사고자 상당수가 견책 이하의 경징계를 받는 데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징계 예정자에 대해 합리적 기준 없이 제재 완료 전 포상·승진을 시행함으로써 인사의 공정성을 저해하고 징계 효과가 면탈된 사례도 있다.
동양생명과 ABL생명의 인수합병(M&A) 단계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절차 준수도 미흡했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자회사 M&A 안건을 논의하기 위한 리스크관리위원회가 개최되기도 전에 해당 안건을 이사회에 부의하기로 미리 결정했고 주식매매계약 당일 리스크관리위원회와 이사회를 불과 20분 간격으로 개최함에 따라 리스크관리위원회 심의 내용이 이사회 안건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지주의 자회사 편입 관련 인허가권을 가진 금융당국이 인허가를 승인하지 않을 경우 계약금을 몰취하는 조항이 주식매매계약에 포함됐는데도 이러한 중요사항이 공식 이사회 석상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과거 우리금융이 여타 자회사를 인수할 때는 인허가 실패 시 계약금을 반환받는 조건이었다.
앞서 우리금융은 지난달 15일 동양·ABL생명 인수를 위한 자회사 편입 신청서를 금융위에 제출한 바 있다. 이에 금감원은 정기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금융의 경영실태평가를 빠르게 마무리할 전망이다.
이 원장은 동양·ABL생명 자회사 편입관련 요소를 감안해 최대한 빠르게 심사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건(자회사 편입 심사신청)에 대해서는 원칙대로 처리하고 싶다”며 “이 달 중으로 금융위에 송부해야 금융위가 다음 달 내에 판단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번 검사 결과에 대해 우리은행은 재발 방지에 힘쓰겠다는 입장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적사항을 빠른 시일 내에 개선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 구축을 완료하겠다”며 “실질적 내부통제, 조직문화 개선, 윤리경영 강화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고객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은행의 내부 통제 미흡도 심각했다. 한 팀장은 시행사·브로커의 작업대출에 조력해 허위 매매계약서 등 관련 서류를 제공받아 대출이 가능한 허위 차주를 선별하고 대출이 용이한 업종으로 변경하도록 유도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부당대출 892억원을 취급했다. 일부 대출에 대해 금품 및 향응을 받은 정황을 확인됐다.
또 대출 취급 시 징구한 임대차계약서가 허위로 의심되는 정황이 있었는데도 추가적인 확인절차 없이 시설자금대출을 취급하거나 여신서류를 직접 위·변조하는 방법으로 가계대출을 부당하게 취급한 사실을 파악했다.
NH농협은행은 지점장 및 팀장이 브로커·차주와 공모해 허위 매매계약서를 근거로 감정 평가액을 부풀리거나 여신한도·전결기준 회피를 위해 복수의 허위 차주 명의로 분할해 승인을 받는 등의 방법으로 부당대출 649억원을 취급했다. 일부 대출에 대해 차주 등으로부터 금품 1억3000만원을 수수한 정황을 확인했다.
이 원장은 “이번 검사는 금융권에 만연한 양적성장과 외형팽창에 집중한 나머지 단기적 성장주의에 대한 고질적 문제를 과감하게 드러내자는 목적으로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며 “그간 책무구조도 도입 등 내부통제 강화에 힘썼지만 금융권은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