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부실자산 매입에 전세사기 피해 지원…이젠 지방 ‘악성 미분양’ 매입
추가 재정부담 없다지만…분양전환 실패시 손실로 부채 가중
재무위험기관 분류한 정부 이중적 태도…재무구조 개선 요원
정부가 지방 미분양 해소를 위해 또 다시 LH 카드를 꺼내들면서 LH에 과도한 부담을 안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지적이 나온다. 재무 리스크가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인데 특히 정부가 높은 부채비율을 이유로 재무위험기관으로 분류해 놓은 상황에서 이율배반적인 태도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가 공공 주도의 주택공급 확대를 비롯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자산 매입 및 전세사기 피해지원 업무까지 매번 LH를 전면에 내세워 정책을 추진하는 탓에 LH의 재무건전성이 더욱 악화할 수 있단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토부는 최근 발표한 ‘지역 건설경기 보완방안’에서 LH를 통해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일명 ‘악성 미분양’ 3000가구를 직접 매입한다는 계획이다.
매입한 아파트는 분양전환형 ‘든든전세주택’으로 공급한다. 분양전환형 든든전세는 최장 8년까지 임대로 거주한 후 임차인이 분양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이다.
그동안 서울·수도권에서 공급된 든든전세주택은 세 자릿수 경쟁률을 기록할 만큼 수요가 대거 집중된 바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공급된 든든전세 64가구 모집에는 1만9898명이 접수해 평균 31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아직 구체적인 매입 지역이나 매입 가격, 선정 기준 등은 정해지지 않았다. LH는 관련 내용이 마련되는 대로 업무를 전담할 부서나 TF 등을 꾸려 상반기 중 매입 공고를 낼 계획이다.
국토부는 매년 LH가 추진하는 매입약정 사업 예산과 인력을 활용하는 만큼 추가적인 재정부담은 없을 거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지방의 분양 상황은 서울과 온도 차가 크다. 이미 지방에서도 외면한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을 공공임대로 돌리더라도 수요가 받쳐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제때 임차인을 모집하지 못해 장기간 공실로 남거나 향후 분양 전환에 실패하면 이는 고스란히 LH의 손실로 잡힐 수밖에 없다. 기존 사업 예산으로 매입 비용을 충당하더라도 분양 전환 전까지 유지·보수 및 관리 등 부수적으로 투입되는 비용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양지영 신한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부 수석은 “LH가 준공 후 미분양을 매입하는 방안은 단기적으로 지방 미분양 적체를 해소하는 데 효과적일 순 있으나 시장 안정화 효과는 제한적”이라며 “매입 가격 역시 과거 금융위기 당시 30~40% 할인된 가격으로 매입했던 전례를 고려하면 건설사와 가격 조율이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마당쇠’ LH…부동산 PF·신축매입·미분양 해소 등 업무 과부하
정부는 지난해 부동산 PF 부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LH를 앞세워 최대 3조원 규모로 PF 사업장 매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공급부족 우려가 심화하자 공공 주도의 주택공급 확대 방안도 발표했다.
여기에 전세사기 피해지원을 위해 LH 경매차익을 활용하는 방안, 빌라 등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를 위해 신축매입임대 사업 확대 방안을 발표할 때도 LH를 내세웠다.
부동산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LH에게 중추적인 역할이 부여되면서 내부에선 볼멘소리가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국토부의 ‘치트키’(만능열쇠)라는 웃픈 별명까지 붙여지는 상황이다.
특히 LH에게 부여되는 역할에 비해 재정 투입을 무한정 늘릴 수 없단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전반적인 주택경기 침체로 자체 수익이 급감한 상황이다. 한때 주요 수익창구 역할을 하던 토지 판매 실적은 대폭 쪼그라들었고 한때 ‘벌떼입찰’ 논란까지 불거졌던 공공택지에 대한 민간의 관심도 시들해진 상태다.
LH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보면 비용 측면에서 영향이 없을 수 없다”며 “비용도 비용이지만 업무를 맡아 할 인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분양 매입 업무를 담당할 인력을 결국 내부에서 보충하게 될 텐데 이렇게 되면 1인당 업무량은 지금보다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이미 업무 과부하가 걸린 상태에서 어떤 동기 부여할 만한 것들도 없이 업무만 계속 추가되니 직원들 사기만 떨어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매입했던 미분양은 이후 시장 상황이 좋아지면서 분양 전환까지 어떻게 이뤄졌지만 이번에 사들이는 미분양은 6~8년 뒤 과연 분양이 수월하게 될 것인지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재무구조 개선 시급한데 부채 리스크 키우는 정부
문제는 LH가 이미 높은 부채비율로 인해 재무위험기관으로 분류된 상태라는 점이다. 이번 지방 미분양 매입 업무까지 더해지면 재무구조는 더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LH의 중장기(2024~2028년) 재무관리계획안에 따르면 지난 2023년 154조5000억원이었던 부채 규모는 오는 2028년 236조1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부채비율은 238%로 높아질 전망이다.
LH의 재무구조 개선을 요구해 온 정부가 부채비율 목표를 2027년 208%에서 2028년 232%로 완화하기로 했으나 이마저도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현재와 같은 이중적인 태도로 일관한다면 LH의 재무 안정성을 담보하긴 힘들 것이라는 진단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공공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면 결국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며 “지방은 공급 과잉 및 수요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단기 지원책으로 살아나기 힘들어 결국 LH만 부채를 떠안게 되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1기 신도시 재건축을 비롯해 3기 신도시 조성 등 LH가 주택 공급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데 부수적인 업무가 계속해서 더해지면 결국 어느 것도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