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일회용 컵 보증금제 자율적 확대로 입장 선회
“재활용보다 재사용에 초점 맞춰 일회용 컵 억제해야”
실효성 논란이 지속돼 온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결국 자율 시행으로 전환됐다. 정부는 지자체 자율에 맡겨 여건에 맞게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전국 확대’ 기조는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어 새로운 묘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는 올해 발표한 ‘주요 업무 추진 계획’에 일회용 컵 보증금제 적용 지역과 상권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지역 여건에 맞는 대상·기준·방식을 적용하고, 중심 상권과 대형 시설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전국 의무화하는 기존 방침에서 지자체 자율에 맡겼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커피나 음료를 일회용컵에 담아 판매할 때 소비자로부터 300원의 보증금을 받고 컵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것이다. 당초 전국적으로 시행해야 했던 이 제도는 유예를 거쳐 2022년 12월부터 제주와 세종에서만 시범사업 형태로 시행되고 있다.
환경부는 당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반발 등을 이유로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확대를 늦추고 지자체 자율에 맡기겠다고 방침을 정했다. 식당이나 카페 등 식품접객업과 집단급식소에서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 조치도 철회했다.
정부의 이 같은 입장 선회 때문인지 일회용컵 보증금 참여율과 반환율은 급감하고 있다. 보증금제 전국 시행에 대한 정부의 미적지근한 태도, 사실상 일회용품 규제 정책 포기 등이 영향을 미치면서 매장 참여율은 50%대로 떨어지고 컵 회수율도 하락하고 있다.
정부 정책 변화는 환경 분야 선진국들의 흐름에 역행한다. 유럽 국가들은 최근 몇 년 새 보증금제 적용을 확대하고 재생원료 사용을 의무화하는 분위기다. 지난 4월 유럽연합(EU)의 ‘포장 및 포장재 폐기물 규정(PPWR)’ 합의안 가결에 따라 플라스틱 사용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 관계자는 “유럽은 일회용 규제를 향해 전진 중”이라며 “보증금제를 통해 수거율을 높여 재활용하는 경제수단과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율 향상이란 직접 규제 방식의 투트랙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프랜차이즈에서 해당 제도를 실행해야 하는데, 가맹점주가 과도한 부담을 지게 된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되고 있다. 정책을 정교하게 설계해 적용 대상을 늘리는 한편 지원안을 병행해야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보증금제를 도입하려면 매장 내 무인회수기, 라벨부착기 등을 비치해야 한다. 비표준용기 회수처리 비용을 환급 기관인 환경부 산하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에 선입금하는 의무도 주어진다. 정부에서 지정한 회수처리 체계를 도입하는 것을 꺼리는 프랜차이즈가 늘어난 이유다.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소비자가 반납하는 컵이 보증금 대상인지 확인하는 '반납 라벨'은 개당 6.99원으로 가맹점주가 직접 사서 붙여야 한다”며 “여기다 보증금 카드수수료와 회수한 컵의 처리 비용까지 더하면 가맹점주들은 음료 한 잔을 팔 때마다 약 14원의 손해를 본다”고 설명했다.
일회용 컵 사용량을 줄이기 어렵다면 차선은 재활용을 늘리는 것이다. 재활용, 특히 ‘고품질 재활용’을 위해선 ‘같은 재질의 컵’끼리 모아져야 하기에 각 브랜드에서 고객에게 내준 컵을 자체 수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의 전언이다.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매장에선 다회용 컵을 사용하고, 음료를 매장 밖으로 가지고 갈 때만 일회용 컵을 써서 매장으로 돌아오는 일회용 컵이 쓰도록 장려하고 있다. 카페와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회용 컵 사용량이 여전히 많고 관련 정책은 유명무실해지고 규제 역시 완화된 상태다.
다만 기업 자체적으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도 하다. 일례로 스타벅스 코리아는 테이크아웃 컵 대신 개인 컵 이용을 선택한 고객에게 400원 즉시 할인 혹은 별 1개 적립할 수 있도록 리워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고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고 바라보고 있다. 현금 반환이라는 강제성 제도 보다는,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의 태도와 일관성도 중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환경부 내부에서는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지금처럼 크게 주목받을 사업이 아니고 다른 더 중요한 환경정책이 많다는 입장이지만 합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정부가 돼야 한다고 바라보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정부가 무인 수거 자판기를 곳곳에 설치해 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일회용품을 줄일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때다”며 “소비자의 재미와 흥미를 유발할수 있는 다양한 캠페인도 뒷받침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