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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 예술영화, 극장가 한 축으로 [지금, 외화 명작 시대①]


입력 2025.02.28 07:09 수정 2025.02.28 07:09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서브스턴스', 50만 돌파, 장기흥행 중

해외 예술영화 흥행 현상, 극장 수익원 다변화 이끌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침체한 한국 영화계가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상업영화가 흥행은 고사하고 손익분기점조차 넘지 못하고 줄줄이 퇴장했다. 영화계 자양분을 제공하던 독립‧예술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개봉 편수가 줄었고, 개봉하더라도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해외 예술영화들이 뜻밖의 흥행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다. 2023년부터 시작된 이런 분위기에 명작들의 재개봉작들까지 깜짝 흥행케 했다.


ⓒ미디어 캐슬, 찬란

'괴물'(Monster, 56만) '추락의 해부'(Anatomy of a Fall, 10만) '가여운 것들'(Poor Things, 15만) '악마와의 토크쇼'(Late Night with the Devil, 10만)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20만) 그리고 현재 두 달 넘게 걸려 있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 50만)까지 해외 예술영화들이 한국 관객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재개봉 작품으로는 ‘더 폴: 디렉터스 컷’(The Fall)이 대표적이다. 국내 개봉 16년 만에 재개봉해 15만 관객을 돌파했다. 2002년 개봉 당시 2만 관객에서 무려 5배 이상의 기록이다. 이에 타셈 싱 감독이 내한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 외에도 '러브레터'(Loveletter, 10만)와 지난해 9월 재개봉한 음악 영화 '비긴 어게인'(Begin Again, 20만)이 재개봉작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였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올해에도 '멜랑꼴리아(Melancholia)', '렛미인'(Let me in), '미드나인 잇 파리'(Midnight In Paris) '원더'(Wonder), '500일의 썸머'(500 Days Of Summer), '위플래쉬'(Whiplash), 등의 재개봉작들이 개봉했거나,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극장가도 움직였다. CGV는 예전의 명작을 다시 찾아보는 관객이 늘어나고, 재개봉작에 대한 호응도 높아짐에 따라 지난해 11월부터 '명작을 어필하다, CGV 월간 재개봉 어바웃 필름' 정기 재개봉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CGV는 매달 1편의 작품을 선정해 약 2~3주 동안 전국의 극장 체인에서 상영하며, 지금까지 '캐롤'(Carol), '매트릭스'(The Matrix), '색계'(Lust, Caution) 등을 스크린에 걸었다.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도 명작 단독 재개봉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메가박스는 재개봉 영화, 리마스터링 작품들이 극장가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자 컴퓨터 비전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인쇼츠’와 4K 콘텐츠 수급 및 극장 상영을 위한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체결, 4K 리패키징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MZ세대의 소비 성향과 맞물리며 흥행으로 이어졌다. 젊은 관객들은 콘텐츠 홍수 속에서 차별화된 경험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선택하는데 최근 흥행한 예술영화들의 공통점은‘ 뻔하지 않다는 점’으로 2030 젊은 관객층 니즈에 부합한다.


'서브스턴스'는 CGV 연령별 예매분포에 따르면 20대 32.9%, 30대 34.8%, 40대 17%, 50대15.4%의 비율이었으며 '러브레터'는 10대 3.9%, 20대 32.5%, 30대 34.3%, 40대 18.5%, 50대 10.%를 나타냈다. 지난해 상반기 개봉했던 '존 오브 인터레스트' 역시 10대(2%), 20대(33.4%), 30대(36.2%), 40대(14.1%), 50대(14.3%)로 2030세대들의 유입이 컸다.


새로운 극장 관객층이 ‘뻔하지 않은 장르’를 선호한다는 것은 이 ‘흥행 작품’들의 성향을 보면 알 수 있다


'서브스턴스'는 바디 호러 장르를 내세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바디 호러는 인간의 신체가 변형, 왜곡, 파괴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신체를 둘러싼 두려움과 불쾌감을 강조하는 장르로, 영화가 말하는 외모지상주의와 자기혐오에 대한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그려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기존 홀로코스트 소재 영화와 달리 유대인이 박해받거나, 살해당하는 자극적인 장면이 없다. 하지만 공간 설정 및 음향으로 러닝타임 내낸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더 폴: 디렉터스 컷'의 경우 아날로그 감성이 젊은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안겼다. 24개국 명소를 배경으로 촬영했던 장면들을 CG 없이 영화로 만들어, 4K 리마스터링해 감독판으로 재개봉했고, 이 사실이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꼭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라고 소개됐다.

이 흐름은 국내 극장가에서 관심 있게 봐야 할 중요한 축으로 인식되고 있다. 해외 예술영화 흥행 현상이 일시적이 아닌 지속적으로 이어질 경우, 기존에 상업영화 중심의 편성이 아닌, 다양한 장르와 형식의 작품을 통해 극장 수익원의 다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명작 재개봉의 경우, 기존에 제작된 작품을 활용하기 때문에 신규 콘텐츠 제작과 마케팅 비용이 절감되며, 이는 배급사와 극장 모두에게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제공한다. 재개봉과 해외 예술영화가 흥행하면서 해당 감독들의 이전 작품도 함께 주목받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영화제와 시네필 관객층의 확대를 유도하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해외 예술영화의 흥행이 극장가에 긍정적 신호로 읽힐 수 있지만, 국내로 고개를 돌리면 마냥 즐겁게 받아들일 수 없다. ‘예술영화’를 찾는 관객들의 시선이 ‘한국 예술영화’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23년 한국 독립·예술영화 매출액은 전년 대비 6.4%, 관객수는 8.6%가 감소했다. 전체 영화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8% 수준이다.


해외 예술영화들은 유명 국제영화제나 시상식에서 주목받으면 바로 한국에서도 관심받으며 흥행에 성공하지만, 한국 독립영화는 완성도가 높아도 외면받고 있다. 국내외 영화제에서 수상해도 마찬가지다.


배우 조현철이 연출한 '너와 나'는 호평은 받았지만, 관객 수는 4만 명에 그쳤고 '장손' 역시 부산국제영화제 등 유수의 영화제를 휩쓸었지만 3만 명에 만족해야 했다. 이 수치마저도 선전했다는 평가다. '어른 김장하'(2만7000여 명), '비밀의 언덕'(1만6000여 명), '괴인', '드림팰리스', '막걸리가 알려줄 거야'(각각 1만2000여 명) 등도 작품성에 비해 아쉬운 성적을 거뒀다.


올해도 개봉 예정인 한국 상업영화의 숫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외화와 예술영화을 향한 관심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극장가는 예술영화와 명작 재개봉을 통해 새로운 관객층을 끌어들이고, 영화 산업 전반에 걸쳐 균형 있는 콘텐츠 전략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한국 영화계는 독립영화 및 상업영화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어떻게 대응해 지속적인 관객 유입을 이끌어낼 것인지에 대한 숙제도 안게 됐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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