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보유 물량은 총 83조원 이상
美 회계 기준 개정·親 가상자산 정책 등 영향
"법정통화 신뢰 잃어...새 준비통화 요구에 부응"
전 세계 기업들의 비트코인 보유량이 지난해 4분기 대비 1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보유한 비트코인 총량은 약 68만8000개로 시가 83조5000억원 상당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친 가상자산 정책 추진 영향과 함께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의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16일 가상자산 자산운용사인 비트와이즈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기업들이 지난 1분기 동안 비트코인 총 9만5431개(약 11조원 상당)를 매입했다. 이는 전 분기 대비 16.11% 증가한 수치다.
비트코인을 보유하는 기업 수도 증가했다. 비트코인을 보유한 상장 기업 수는 79곳으로 전 분기 대비 17.91% 증가했다. 이 중 12개 기업이 이번 분기에 새롭게 비트코인을 구매했다. 이로써 전 세계 기업들이 보유한 비트코인은 총 68만8000 BTC에 달한다. 이는 전체 비트코인 공급량의 약 3.28%에 해당한다.
1분기 말 보유량 기준 1위는 스트래티지(옛 마이크로스트래티지, 52만8185 BTC), 2위는 마라홀딩스(4만7531 BTC), 3위는 라이엇플랫폼(1만9223 BTC)이다.
기업들이 이처럼 비트코인을 매입하는 이유 중 하나는 회계 기준의 개정이다. 지난해 12월 16일부터 적용된 미국 재무회계기준위원회(FASB)의 규정에 따라 기업들이 비트코인을 공정가치 기준으로 회계처리할 수 있게 됐다. 기존에는 가격 하락 시 손실만 반영되던 방식에서 벗어나 상승분도 회계적으로 반영할 수 있게 되면서 기업들은 비트코인을 보다 자유롭고 전략적으로 자산에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비트코인은 기업에게 인플레이션과 달러 가치 하락에 대응한 헤지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비트코인은 제한된 공급량(총 2100만 BTC)이라는 희소성과 탈중앙화 성격 덕분에 '디지털 금'으로 불리며 대체 자산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해왔다. 기업들은 전통 자산만으로는 방어하기 어려운 경제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비트코인을 자산 포트폴리오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다.
거텀 추가니 번스타인 애널리스트는 "비트코인은 향후 10년간 금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다"며 "비트코인은 새로운 시대의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기관 및 기업 재무 자산의 표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미국 유명 금융평가기관 DA 데이비슨의 연구 책임자 길 루리아도 "비트코인의 주요 용도는 가치 저장 수단이며, 경제 안정성 하락에 대한 헤지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이외 최근 비트코인에 투자해 대규모 수익을 낸 스트래티지의 사례도 기업들의 신규 매입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스트래티지는 전환사채를 발행해 조달한 자금으로 비트코인을 매입하고 있으며, 매입 이후 비트코인이 상승하면서 수조원 규모 미실현 수익을 거두고 있다. 스트래티지는 지난 7일부터 13일까지도 비트코인 3459개(약 4080억원)를 매수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스트래티지의 비트코인 매입 평단가는 원화 기준 약 9650만원(6만7556 달러)으로 알려졌다.
매트 호건 비트와이즈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현재 미국 행정부는 의도적으로 달러 약세 정책을 추진하고, 시장 혼란은 가중되고 있지만 비트코인은 장기적으로 상승 흐름을 지속할 것"이라며 "글로벌 경제 질서가 흔들리고 법정통화가 신뢰를 잃어가는 시기에 글로벌 디지털 가치저장 수단인 비트코인을 대체할 자산은 없다"고 전망했다.
이어 "관세 중심 무역 재편과 글로벌 탈달러화 흐름은 새로운 준비통화를 요구하게 될 것이며, 금이나 비트코인 같은 하드머니(hard money)를 찾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