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나라 박정희>´대통령이 담대해야 반대자도 큰다´
유신반대 교수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두번 칭찬받은 사연
‘박정희 학교’에 온 유신 반대 교수
김대중 정부의 집권세력과 추종세력을 ‘김대중류’라고 하자. 연세대 명예교수 김동길과 ‘김대중류’의 같은 점은? 많은 사람들이 유신에 저항했던 민주 인사라는 데 수긍할 것이다. 다른 점은 없을까? 있다.
김동길은 ‘김대중류’(물론 ‘노무현류’도 포함된다)를 이른바 친북좌파로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민주 인사가 아니라 민주를 표방한 ‘사이비’라며 선을 긋고 있다.
대통령 박정희와 김동길의 다른 점은 너무 분명한데, 같은 점은 없을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이고 남자이고 이런 것 말고 없을 것 같지만, 있다.
3월5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의 김동길 교수 초청 제17회 조찬강연회는 박정희 대통령과 김 교수의 생각이 같은, 두 사고영역의 교집합(交集合) 부분을 공개하는 자리였다.
일단 김교수가 ‘박정희 사람들’의 모임에, 그것도 아침 7시반에 시작하는 조찬강연이라 누구라도 새마을운동하듯 집에서 새벽에 나와야 하는 행사에 참석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웠다.
‘박정희 학교’에 와서 강연을 하면서 박 대통령을 비난하기도 멋쩍고 그렇다고 칭찬으로 치켜세우자니 선비의 훼절이 두려워 이래저래 난처할 듯싶은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그는 사실에 근거한 직설적 화법에 특유의 해학과 풍부한 암시를 곁들여 변함없는 지론(持論)을 실타래 풀듯 술술 풀어나갔다.
‘겨레의 오늘을 걱정하면서’ 제하의 김 교수 강연은 시종일관 국가보위와 대한민국 정체성 수호에 역점을 두어 ‘김대중류’의 대북관(對北觀)을 맹렬히 질타하면서 절묘하게 박정희 시대에 접근했다.
예컨대 박정희 시대는 “권력이 튼튼하니까 유신에 반대해도 나라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며 남북 분단의 안보 현실에 대한 대통령의 강력한 국가 장악력을 긍정했다. 이어서 김교수는 “그랬는데 그 뒤로는 점점 한심한 정권만 들어서고 있다”며 간첩을 잡지 않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잃어버린 10년’과 맥아더장군 동상을 철거하겠다던 좌파들의 소동에 이어 최근의 촛불시위를 거론했다.
김 교수는 “촛불시위도 하루 이틀 하고 집에 돌아가야지 석달 열흘을 계속하면 어쩌자는 거냐”며 혼란과 분열 책동에 분노의 화살을 날리고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촛불시위도 제대로 막지 못하면서 산불이 나면 그때는 어쩔 것인가”라며 대공(對共) 경각심을 일깨웠다.
“미국이 왜 한국 대통령 궁둥이를 때리는가”
김 교수는 “나는 북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며 북쪽을 너무도 잘 아는 월남 실향민임을 전제, 김정일에게 “핵무기, 미사일 이런 것 안된다. 그 돈으로 굶주리는 동포들을 먹여라. 이렇게 분명히 언급해야 하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그게 없다”고 우유부단함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지난 2월 방한했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북한이 남한과 대화를 거부하면서 미국과 대화하자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라는 발언을 듣고 “역시 미국답더라”며 우리의 대북자세가 확고하지 못함을 개탄했다.
김 교수는 특히 지난 대선 때 국민이 압도적인 표차로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킨 것에 좌파정권의 종식과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의미를 부여하고, 그렇게 국민이 힘을 실어주었음에도 “나를 따르라”는 말을 못하고 애매모호하게 지난 1년을 허송해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가 하면 김교수는 요즘 자신의 홈피 메인화면에 ‘이명박 대통령에게’라는 제목을 달아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을 촉구하는 글을 집중적으로 올리고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그의 불신은 그 결론인 듯 보인다.
이날의 강연에서 참석자들의 관심을 끈 것은 “큰 권력과 싸워야 커진다”는 이를테면 ‘상대적 동일시(同一視) 논법’. “대통령이 담대해야 그가 잘못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도 체면이 선다”며 이명박 정부의 가벼움을 우회적으로 조롱, 참석자들의 폭소를 자아낸 김교수는 그 자신을 “박 대통령 때문에 유명해진 사람”이라고 못박아 말하고 “그러나 나보다 더 유명해져 대통령도 되고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사람이 있다”며 ‘좌(左)대중 우(右)명박’을 태권도 옆차기로 번갈아 걷어차는 듯한 해학과 독설을 끊임없이 이어갔다.
당연히 박정희 대통령을 어떻게 말할지가 궁금했다. 김 교수는 “악수 한번 안해본 박 대통령에게 두번 칭찬을 들었다”고 말해 의외의 놀라움을 주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김동길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긴급조치 위반, 즉 유신정치에 대한 저항이다. 고뇌하는 70년대 지식인사회에서 용기있는 저항의 상징인 그가 박 대통령에게 ‘칭찬’을 들었다니 자못 흥미로웠다.
이야기는 이렇다.
“긴급조치 반대한다고 골목에 가다가 맞아 죽는 것 아니다. 징역 15년이 아주 정해져 있다. 그거 살고 나오면 나에게도 광복이지. 15년 판결받고 항소하지 않았다. 판사가 깎아줘서 나가봐야 또 들어올 텐데 뭐하러 들락날락하는가 싶어 그대로 눌러 앉아 있었는데 형집행정지로 1년밖에 안살고 나왔다.”
이렇게 말한 그는 “항소한 사람은 절차가 있어서 오히려 나보다 하루 늦게 나오더라”고 사족을 달아 다시 한번 참석자들을 웃겼다.
그가 들려준 첫번째 비화는 출감하고 얼마 안되어 미 하원의원 프레이저가 인권문제를 조사하러 한국에 왔을 때의 일이다. 프레이저가 초청하는 자리에 갔더니 야당 지도자들이 다 모여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프레이저 앞에서 하는 말이 한국인으로서 너무 자존심이 상해 차마 들어줄 수가 없더라는 것.
그래서 그가 “미국이 왜 한국 대통령 궁둥이 때리느냐”고 쏘아붙이고 “대통령 정치를 반대한다고 감옥 보내면 들어갔다 나오고 하면서 민주주의도 발전하는 거다”라고 말해 다들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 말이 대단한 화제가 되어 어찌어찌 청와대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박 대통령이 전해 듣고는 “김 교수 말이 맞아”라고 고개를 끄덕이더라고 했다. 한국 대통령이 박정희 자기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미국의 내정간섭은 옳지 않다는 뜻이었다.
김 교수는 10월유신에 대해서 “박 대통령이 보는 조국의 현실이 그러했겠지만 그러나 그건 잘못이다라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 법”이라며 “이런 사람 그대로 둬서 지금까지 강단에 서고 있다”는 것.
그리고 두번째 비화는 주한미군 철수에 관한 것이다.
미국의 카터가 대통령 당선되기 전 후보 시절에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들고나와 안보 불안이 가중될 때 김 교수의 조선일보 칼럼이 또다시 화제가 되었다. “미국이 자기 나라 군대 빼가겠다는데 할 말 없다. 그렇게 되면 조국을 지키기 위해 나부터 녹슨 총이라도 들고 나가겠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그 칼럼을 읽은 박 대통령이 측근들에게 “김교수 애국자야”라고 말했던 것.
어느날 느닷없이 서울시장(정상천)한테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서울시장이 자기한테 볼일이 없을 텐데 점심을 함께 모시고 싶다고 정중하게 요청해와 만나 보니 조선일보 칼럼을 읽은 박 대통령의 말을 전하면서 대통령 측근이 서울시장에게 전화해 “김 교수 좀 대접해 드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풍자 독설의 백미(白眉) “김대중 대통령 만수무강하시라”
김 교수는 이날 원고 없이 두꺼운 대학노트에 메모한 것을 보면서 강연을 했는데 ‘박정희 사람들’에게 10여 차례 박수를 받고 폭소도 자아내면서 묘한 표정을 짓기도. 그런데 어딘가 허전하고 외로워 보였다. 나이 탓이 아니다.
국내외의 큰 관심사가 온통 경제문제뿐이라 먹고 살기 힘들다는 아우성 속에서 지난날의 안보강연을 한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반미친북이 도대체 뭔가. 미국을 왜 이유없이 반대하는가. 6.25때 미국이 안도와 줬으면 오늘의 한국이 있는가. 대한민국을 뒤집어엎으려는 세력 그대로 두고 간첩을 잡지 않으면 나라는 망한다.”
이런 식의 안보 강연은 묵은 것, 현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사고방식이라는 대중의 인식이 김대중 이후 잃어버린 10년 동안의 산물이라는 점에 상당한 분노가 깔려 있었다.
김 교수는 특히 2000년의 6.15선언 때 김정일을 “믿을 만한 식견 있는 인물”이라고 말한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을 성토하면서 “몰래 퍼주는 돈이 입금 안됐다고 오지 말라고 해서 하루 늦게 평양에 간 게 다 드러나지 않았느냐. 그게 믿을 만한 식견있는 인물이라니 제 정신인가. 권노갑, 박지원 측근들 다 감옥에 보내고 시치미 떼다가 도저히 안되겠으니까 잘사는 형이 못사는 동생을 만나러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 있냐고 고백하더라”는 것. 그러면서 “그 돈 가지고 핵무기를 만들었다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를 물으면서 거침없는 비난을 퍼부었다.
김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을 가리켜 ‘똑똑한 사람’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여러차례 반복했다.
“그 사람이 박정희대통령기념관을 짓겠다고 할 때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면서 김 대통령이 취임하고 경북지방에 가서 “박 대통령은 이 민족에게 자존심을 심어준 위대한 지도자”라고 높이 평가한 말을 비난했다.
그러면 야당할 때 왜 반대만 했는지,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한 잘못을 고백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박 대통령에게 대들어 유명해지고 그 덕을 제일 많이 본 사람이 “박 대통령 덕분에 이만큼 컸다, 이 말을 해야 되는데 그걸 안하는 게 괘씸하다”는 것이며, “그 사람은 약속을 못지킨 일은 있어도 평생 거짓말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 그러기에 나는 더욱 김대중 대통령의 만수무강을 진심으로 빈다”고 말해 잠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더니 “제발 잘못을 깨우치고 고백도 하고 가라는 뜻”이라고 말해 또한번 폭소를 자아냈다.
강연 도중 틈틈이 박 대통령에 대한 김 교수의 언급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 것을 안다, “그 덕에 지금 우리가 밥술이나 먹게 된 것을 인정한다”, “용인술이 탁월했다”, “다정다감한 면도 있더라”는 정도로 비교적 짤막하게 끊고 넘어가는 식이었다.
김교수는 ‘김대중류’ 즉 ‘사이비 민주’들과 선을 분명히 그으면서 그들에게 ‘민주화의 공’을 도둑맞았다는 피해의식이 다분해 보였고, 특히 그들의 친북 성향에 대해 남다른 분노를 갖고 있었다. 아울러 “박정희 대통령 때는 목표와 방향이 분명했는데 지금은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혼란스럽다”며 국가보위를 맡겨 믿고 따를 수 있는 당당한 리더십이 없음을 개탄했다.
요즘 그렇지 않아도 북한이 남쪽에다 대고 연일 공갈 협박을 해 뒤숭숭해지는 판국이라 이날 참석자들은 ‘겨레의 오늘을 걱정하면서’ 제하의 김 교수 강연을 상당히 경청하는 분위기였고 대북 경각심이 흐트러져서는 안되겠다는 것이 대체적인 중론이었다.
이날 강연회에는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김정렴 회장을 비롯해 김용환(제25대 재무부장관), 박진환(박대통령 경제담당 특보), 임방현(전 청와대 대변인), 김계원(박대통령 비서실장), 윤주영(전 문화공보부 장관), 고병욱ㆍ박기석(전 건설부장관), 정래혁(전 국방부장관), 동훈(전 국토통일원 차관), 배청(전 감정평가원장)씨 등이 참석했고, 이밖에 정광모(전 언론인), 송복(연세대 명예교수), 정일화(언론인), 지만원(군사평론가)씨 등의 얼굴도 보였다.
----------------------------------------------------------------------
이 글은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좋아하는 모임(http://www.516.or.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