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젠더프리에 33명 멀티캐스팅까지…1인극의 ‘대담’한 실험


입력 2025.04.29 08:34 수정 2025.04.29 08:34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최근 연극계에선 대규모 멀티캐스팅, 젠더프리 캐스팅 등으로 1인극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대담한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1인극의 장단점은 명확하다. 배우 한 명의 에너지와 역량으로 무대를 채우는 1인극은 배우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동시에, 극의 전체 밀도를 한 배우에게 의존해야 하는 본질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배우의 컨디션이나 해석 방향에 따라 편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한한다는 단점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세종문화회관

이런 가운데 공연계에 자리잡은 멀티 캐스팅 시스템은, 1인극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달 30일부터 5월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되는 연극 ‘화이트래빗 레드래빗’(WHITE RABBIT RED RABBIT)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다. 총 33회의 공연에 무려 33명의 배우를 캐스팅하면서, 배우가 각각 단 한 번의 무대에 오르게 된다.


특히 이 작품은 대규모 멀티 캐스팅 외에도 사전에 배우에게 대본을 주지 않고 연출도, 리허설도 없다는 파격적인 구성을 내세웠다. 배우는 무대에 오른 뒤에야 처음 보는 대본을 읽어나가며 지시에 따라 즉흥적으로 연기를 펼치는 식이다.


작가 술리만푸어가 이란 당국의 검열을 피해 만든 작품으로, 32개국 이상에서 공연됐고 2017년 국내 초연 당시 손숙을 비롯해 이호재, 예수정, 하성광, 손상규 등이 출연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번 시즌엔 박정자와 박상원, 남명렬 등 베테랑 배우부터 김도연 등 신진 배우들까지 출연한다. 원태민이 30일 공연의 스타트를 끊는다.


‘화이트래빗 레드래빗’ 외에도 최근 몇 년간 1인극에 멀티캐스팅의 보편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내달 6일까지 대학로티오엠에서 공연하는 연극 ‘지킬 앤 하이드’는 최정원, 고윤준, 백석광, 강기둥이 캐스팅됐고, 내달 16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개막하는 1인극 ‘보이스 오브 햄릿’에는 옥주현, 신성록, 민우혁, 김려원이 출연한다. 이들 작품들은 최소 4명 이상의 멀티캐스팅에 남녀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이는 단일 배우 의존성을 극복하고 작품 자체의 생명력을 다각화하는 효과를 낸다. 동일한 텍스트와 설정 안에서도 배우의 성별이나 나이, 연기 스타일, 삶의 경험 등에 따라 자신만의 해석과 개성으로 새롭게 작품을 구현해내는 실험의 장과 같다. 이를 통해 관객들을 능동적인 해석과 비교 과정으로 이끌면서 자연스럽게 참여를 유도하는 장치가 된다. 남녀의 성별을 가리지 않는 젠더프리 캐스팅도 마찬가지로 작품이 다루는 주제 의식을 특정 성별의 문제가 아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도록 한다.


단순히 캐스팅의 변화를 넘어 연극 생태계 전반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한 공연 관계자는 “멀티캐스팅은 여러 명의 배우들에게 1인극이라는 도전적인 무대에 설 기회를 제공하고, 동일한 역할을 다른 배우들과 함께 준비하고 공연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으며 배우 개인의 성장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또 “창작자들에게도 실험적이고 도전적 무대를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 되면서 연극계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