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을 들여 측면 자원 애슐리 영, 중앙 수비수 필 존스, GK 데헤아 등을 영입하긴 했지만, UAE 석유 재벌 셰이크 만수르 구단주가 버티고 있는 ‘지역 라이벌’ 맨시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오히려 스콜스 은퇴와 맞물려 대체자를 구하지 못해 전력약화가 우려됐다. 중원을 지켜야 할 플레처는 지난해 11월 바이러스성 장염으로 이탈한 지 오래다.
시즌 중반에는 주축들이 줄부상으로 하나둘 나가 떨어졌고, 지난해 12월31일 블랙번전에서는 박지성과 하파엘의 중앙 미드필더 조합을 꾸리기도 했다. 중앙 미드필더 캐릭이 중앙 수비수로 출전하는가 하면, 윙 자원인 발렌시아가 윙백으로 나서기도 했다. 뒤죽박죽, 고육지책 그 자체였다.
그러나 맨유는 현재 프리미어리그 정상을 향해 순항하고 있다. 무려 20년간 맨유를 ‘통치’하고 있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지도력과 구성원들의 끈끈한 조직력, 그리고 팬들의 한결 같은 응원에 힘입어 언제나 그랬듯 잉글랜드 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프리미어리그 최다우승팀 맨유는 유럽대항전에서 예상 밖으로 조기 탈락한 점이 아쉽지만, 가장 큰 타이틀인 프리미어리그 우승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실패한 시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어린 선수들의 경험이 쌓인 뒤 맞이하는 다음 시즌이 더 기대되는 맨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매 시즌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며 대한민국은 물론 아시아 전역을 흥분시켰던 박지성(31·맨유)은 최근 6경기 연속 결장, 마음 편히 즐길 수 없는 상황이다. 출전 횟수가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리그에서는 9경기 선발에 그쳤다. 부상으로 빠졌던 나니(22경기)-발렌시아(19경기)-영(17경기)보다 훨씬 적고, 긱스(12경기)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난달 18일 울버햄턴과의 29라운드 이후 계속 벤치에만 머물고 있다.
이렇게 오래 그라운드에 서지 못한 것은 부상과 재활 기간을 제외하면 극히 드문 일이다. 몸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교체명단에만 이름을 올릴 뿐 그라운드를 밟지 못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박지성이 출전 기회를 잡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포지션 경쟁자들의 눈부신 활약
박지성은 맨유에서 주로 윙 포지션으로 활약한다. 국가대표 시절에는 중앙 미드필더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지만 퍼거슨 감독은 특별한 변수가 없으면 박지성을 윙으로 배치한다. 문제는 경쟁자들의 활약이 눈부시다는 점이다.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안토니오 발렌시아. 맨유가 리그 1위로 올라선 배경에는 그의 활약이 크게 자리한다. 매 경기 공격 포인트를 기록, 루니와 함께 공격의 선봉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최근 부상에서 복귀한 루이스 나니 역시 골을 터뜨리는 등 공격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긱스는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2005년만 해도 박지성은 긱스의 장기적 대체자로 분류됐지만, 8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긱스는 경기마다 나이를 잊은 듯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뛰어난 스피드와 탁월한 골감각을 자랑하는 영은 기복이 있긴 하지만 팀이 필요로 할 때 공격 포인트를 기록,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반면 박지성은 시즌 초반을 제외하곤 활약이 미미했다. 시즌 중반에 접어들면서도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경기력으로 경쟁자들 사이에서 비교우위를 점하는데 실패했다.
스콜스 복귀
올 시즌 맨유 최고의 영입 작품은 무엇일까. 매 경기 슈퍼세이브를 선보이는 스페인 출신의 데 헤아? 10대답지 않은 투지와 수비력으로 맨유 주전을 꿰찬 필 존스?
모두 훌륭한 영입인 것은 분명하지만 최고의 보강은 바로 폴 스콜스의 복귀이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하자 대다수 언론은 그의 대체자를 영입해야 한다며 요란을 떨었고, 퍼거슨 역시 웨슬리 스네이더르(28·인터밀란) 대한 관심을 숨기지 않으면서 유럽 무대 전역에 걸쳐 대체자를 물색했다.
결국, 퍼거슨 감독의 선택은 유스 출신의 톰 클레벌리였다. 뛰어난 활약을 펼치지만 스콜스 정도는 아니었다. 그나마 그가 부상으로 쓰러지고 다른 부상자들이 속출하는 과정에서 퍼거슨 감독은 스콜스를 다시 불러들였다. 복귀하자마자 맨유 중원에 큰 힘이 되면서 경기를 조율해 나갔다. 스콜스 복귀로 서서히 상대팀을 조여 가는 맨유 특유의 포지션 축구가 가능하게 됐고, 리그 후반기 1위로 오르는 밑거름이 됐다.
하지만 이는 분명 박지성에게는 또 다른 종류의 악재였다. 중앙에서도 수준급 활약을 펼치는 그에게 스콜스 복귀는 큰 벽이었다. 물론 왕성한 활동량과 팀을 위한 헌신적인 움직임이 박지성의 큰 장점이지만, 중앙에서 가장 요구되는 정확한 패싱력은 단연 스콜스가 우위이기 때문이다.
긱스는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각종 토너먼트 컵 대회 ‘조기 탈락’
올 시즌 맨유는 총 4개의 컵 대회에 참가했다. 칼링컵은 8강전에서 크리스탈 팰리스에 불의의 패배를 당했고, FA컵에서는 박지성이 1골을 넣었지만 리버풀에 1-2로 졌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6년 만에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충격에 휩싸였고, 조 3위 자격으로 나간 유로파리그에서는 빌바오전 2연패로 16강 탈락했다. 최근 몇 년간 유럽 최정상급 팀으로 군림했던 위용에 비하면 믿기 어려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컵 대회 조기탈락은 시즌 경기 수 감소로 이어졌다. 이는 곧 로테이션 시스템 가동의 필요성이 스러지는 것을 의미했다. 로테이션 시스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박지성에게 이런 현상은 당연히 떨떠름 할 수밖에 없다. 1골 싸움에 운명이 바뀌는 유럽클럽대항전은 수비가담이 뛰어나고 상대 측면 공격수를 봉쇄하는 박지성이 빛을 발하는 무대였다. 그런 무대가 올 시즌엔 대폭 축소된 셈이다.
강력한 지역 라이벌 맨시티 등장
맨체스터 시티의 급성장은 맨유 1위 수성에 가장 큰 위협 요소였다. 프리미어리그 중하위권 팀이었던 맨시티는 2008년 만수르 구단주를 만난 이후 새로운 강팀으로 변모했다. 만수르 구단주는 ‘갈락티코’ 레알 마드리드 못지않게 매 시즌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 맨시티를 유럽 강호 반열에 올려놓았다.
마침내 공격적인 투자는 올 시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올 시즌 3월까지 맨유를 제치고 리그 1위를 달렸다. 현재는 맨유가 1위를 탈환하긴 했지만, 불과 2~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는 각축전이 벌이지고 있다.
이런 사태 속에서 맨유에는 더욱 공격적인 선발 라인업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아무리 수비를 잘해도 골을 넣지 못하면 축구에서는 승리의 과실을 먹을 수 없다. 경쟁자들에 비해 공격보다는 수비가 부각된 박지성 입장으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올 시즌 대부분 맨유는 2위를 달렸다. 1위도 아니고 2위의 위치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골이 필요했고 그러한 상황들이 박지성의 출전 기회 횟수를 더욱 제한적으로 만들었다.
박지성은 올 시즌 포함 7시즌 째 맨유에서 뛰고 있다. 그보다 맨유에서 오래 뛴 선수는 긱스, 스콜스, 루니 정도를 제외하고는 팀 내에 없다. 그리고 2012년 2월 6일(한국시각) 첼시전을 통해 맨유 소속으로 통산 20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도 작성했다.
올 시즌 활약이 미미하다고는 하지만 경기 스쿼드에는 꾸준히 명단에 올라있는 만큼 벤치의 신뢰도 무너지지는 않았다. 모두가 위기론을 얘기할 때 보란 듯이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게 했던 박지성이 남은 시즌 반전을 일으킬 가능성은 여전히 살아있다.
한편, 맨유는 22일 오후 8시 30분 에버턴을 홈으로 불러들이고, 맨시티는 23일 자정 울버햄턴과 원정경기를 치른다.[데일리안 스포츠 = 김준호 넷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