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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역사에 내려놓는 장밋빛 역사의 전설


입력 2013.01.10 14:07 수정         데일리안 스포츠 = 이한철 기자

세계선수권·올림픽 제패한 한국역도 신화

정든 바벨 내려놓고 오는 23일경 은퇴식

장미란이 세계를 들어 올리며 국민들에게 안겨준 자부심은 여전히 유효하다.

‘여자 헤라클래스’ 장미란(30)이 15년 역도인생을 접는다.

장미란은 10일 오후 고양시청에서 공식 은퇴 기자회견을 갖고 코트를 떠나는 심경과 향후 계획 등을 밝혔다. 23일경에는 은퇴식도 가질 예정.

무엇보다 지난 2년간 계속된 크고 작은 부상이 은퇴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도 출전 자체가 무리라는 주위의 평가에도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겠다며 혼신의 힘을 다했던 장미란은 이제 바벨을 내려놓고 제2의 삶을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이던 1998년 아버지의 권유로 역도를 처음 시작한 장미란은 바벨을 잡은 지 10일 만에 참가한 도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천부적인 재능을 과시했다.

2002년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된 장미란은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은메달을 따내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아쉽게 은메달에 그쳤지만 2005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그야말로 ‘1인 독주시대’를 열어젖혔다.

특히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장미란은 그야말로 경쟁자 없는 절대강자였다. 당시 유일한 라이벌로 꼽혔던 무솽솽(28·중국)이 부상 여파로 불참하면서 관심은 오직 세계신기록 수립 여부에 쏠렸다. 기대대로 장미란은 합계, 인상, 용상 모두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듬해 열린 2009 고양역도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장미란은 자신이 갖고 있는 용상 세계신기록을 다시 한 번 끌어 올리며 세계선수권대회 4연패라는 신화를 썼다.

그러나 2010년 1월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가 장미란의 선수생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장미란이 타고 있던 승용차를 승합차가 뒤에서 들이받는 큰 사고가 발생한 것. 당시엔 가벼운 접촉사고 정도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달랐다.

장미란은 심각한 목 디스크에 시달리며 제대로 된 훈련에 임하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바벨을 들었을 때 왼쪽으로 기우는 버릇이 생겼다. 왼쪽 근육이 오른쪽에 비해 크게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2010 세계선수권 대회 은메달,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며 건재를 과시했고 올림픽 2연패를 향한 도전도 계속됐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역도에 대한 관심을 뿌리칠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훈련을 거듭할수록 몸 상태는 계속 악화됐고 이 틈을 타 저우루루(중국)와 타티야나 카시리나(러시아)의 기량이 급성장했다. 전성기가 지난 장미란이 무섭게 성장한 신예들과 경쟁하기엔 무리였다.

결국 장미란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인상 125Kg, 용상 164Kg, 합계 289Kg을 들어 올려 전체 4위로 대회를 마쳤다. 자신의 최고기록인 326Kg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기록.

하지만 계속된 잔부상에도 올림픽 무대까지 도전을 포기하지 않은 집념은 국민들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했다. 특히 바벨을 놓친 장미란이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한 뒤 바벨에 손으로 입맞춤을 하는 모습은 전 세계 역도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짧은 순간은 땀과 눈물로 가득 찬 장미란의 인생을 고스란히 응축한 것으로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했다.

장미란이 세계를 들어 올리며 국민들에게 안겨준 자부심은 여전히 유효하다. 비록 선수로서는 은퇴하지만 장미란이 그려나갈 제2의 역도인생이 기대되는 이유다.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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