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노무현의 남자'가 퇴장하는 정치무대엔 무엇이 남을까?
“저는 예전에 지지율이 올라갔던 대선 예비후보…이제 저는 백수인데요.”
유시민 진보정의당 전 의원이 지난해 12월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의 광화문 유세에서 한 말이다. 한때는 전도유망한 대선 예비후보로 활약했지만, 현재는 정의당 소속 ‘전’ 의원이 된 소회를 압축해 밝힌 것이다. 그런 유 전 의원이 19일 정계와 ‘잠정적 결별’을 선언하고 정말 ‘백수’가 됐다.
유 전 의원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너무 늦기 전에 내가 원하는 삶을 찾고 싶어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난다”고 적었다. 유 전 의원은 대통령만 해보지 않았을 뿐 당 대표·대선주자·장관 등을 고루 거쳐본 인물이다. 스스로의 정치적 판단력이 있다는 얘기다. 이날의 은퇴 선택은 ‘구(舊)바람’이 돼가는 자신의 가치를 인식한 결정일 것이란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유 전 의원의 현재까지의 정치적 삶은 ‘백바지’로 대표되는 ‘노무현의 남자’로 요약된다. 그는 이해찬 전 대표의 보좌관에서 ‘노무현의 열린우리당’ 전신인 개혁국민정당 대변인으로 활약하다 2003년 4.24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16대 국회에 진출했다. 그리고 국회 출근 첫날 ‘백바지’를 입고 출근하면서 유명한 ‘백바지 유시민’을 탄생시켰다.
당시 유 전 의원은 의원선서를 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 발언대에 올랐다가 한나라당과 민주당으로부터 “당장 밖으로 나가라”는 고함을 들었다. 그의 목 없는 티셔츠와 흰색 면바지, 캐주얼 재킷이 몰예의하다는 평을 받은 것이다. “열심히 하겠다는 취지에서 편한 복장으로 나온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결국 유 전 의원 다음 출근에서 정장으로 옷차림을 바꿨다.
신선한 해프닝 뒤 그는 더욱 승승장구했다. 국민의 뇌리에 깊숙이 각인됐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때는 ‘노무현의 해’였다. 2002년 문성근 씨와 개혁국민정당을 창당해 노무현 대통령을 지원했던 만큼 유 전 의원은 참여정부에서 신임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참여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내며 그야말로 ‘실세의 시대’를 겪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끝없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유 전 의원은 열린우리당을 당내 갈등으로 탈당한 뒤 대통합민주신당에 참여해 당내 대선 예비후보 경선에 참여하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 그러나 대통합민주신당은 창당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해산됐다. 그는 다시 참여정부 시절 인사들과 구 열린우리당 인사들이 주축이 된 국민참여당 창당에 참가해 당 대표를 지내고,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나서면서 재기를 노렸다. ‘세 넓히기’에 주력한 것이다.
하지만 신당의 세 넓히기란 만만치 않았다. 결국 유 전 의원은 민주노동당과 새진보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와의 합당으로 탄생한 통합진보당에 국민참여당을 합류시킨다. 그러나 지난해 통진당은 비례대표 부정 경선 사태 등을 겪으며 계파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다시 통진당과 정의당으로 쪼개지게 된다. ‘한때 실세’였던 유 전 의원과 함께 3~4개의 당이 흥망성쇠를 경험한 것이다. 이때 그는 ‘정당 브레이커’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도 얻게 된다.
결론적으로 통진당 분당에 이어 야권 대선 패배, 동고동락한 노회찬 의원이 ‘안기부 X파일’로 의원직이 상실되는 등 ‘정치적 피로감’이 겹치자 유 전 의원 스스로 한 템포를 쉬기 위해 정계은퇴를 선언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그의 은퇴는 잠정적이며, 다시 돌아올 것이란 분석이 많다. 자신의 정치적 유효기간이 끝난 것을 알고 잠시 물러나기는 했지만, 신선도를 높인 새 상품으로 거듭나 다시 정가(政家)에 등장하려는 전초전이라는 것이다.
향후 유 전 의원은 선거를 통해 정당과 정치인 자신의 입지를 넓히는 직업적 정치인 활동보다 강연 등을 통한 간접적인 ‘정치적 활동’을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유 전 의원이 트위터에 남긴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이를 뒷받침한다는 분석이다. 유 전 의원은 오는 4.24재·보궐선거에서 노 전 의원의 지역구(서울 노원병)에 출마가 검토됐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은퇴로 대답을 대신했다. ‘직업 정치인’을 내려놓겠다는 의미다.
대신 유 전 의원은 3월께 출간될 ‘어떻게 살 것인가’의 집필 활동에 몰두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는 저자 사인회나 강연도 열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등 유 전 의원은 수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그는 지난 1월 트위터를 통해선 이번 저서에 대해 “살아온 이야기, 사는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 그런 거랍니다”라고 전해 자서전 형식을 띠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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