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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넘나든 탈세, 부끄러운 한국 부자의 자화상


입력 2013.05.30 11:06 수정 2013.05.30 11:09        김재현 기자

40년간 해외로 빼돌린 금액 890조원 국경 허문 탈세

김영기 국세청 조사국장이 지난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브리핑실에서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역외탈세혐의자 23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세청이 역외 탈세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역외 탈세 혐의 정황도 구체적이다. 그만큼 국경을 넘나들면서 의도적으로 탈세했을 가능성 짙다는 얘기다.

현재 혐의가 드러나 조사 중인 혐의자는 모두 23명으로 법인사업자 15명, 개인사업자 8명이다. 여기에는 조사대상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수 있는 법인기업도 포함돼 있다.

최근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에 의해 영국령 버진아이랜드 등 일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 12명이 공개되면서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역외 탈세가 심각하다는 판단에서 이뤄진만큼 국세청과 관체청의 대대적인 공조 조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특히 관세청은 이번조사를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 범칙조사 51개팀 247명을 총동원하기로 했다.

"40년간 해외로 빼돌린 금액 890조원"

한국 부자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재벌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한국부자의 역외 탈세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CJ그룹의 비자금 조성과 탈세 혐의가 세상에 알려지자 기막힌 역외 탈세의 사실이 새삼 재주목받고 있다.

조세 피난처에 은닉한 검은 돈 규모가 중국 1조1890억 달러(1362조원), 러시아 7980억 달러(914조원)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다.

영국에서 활동 중인 조세 정의 네트워크(Tax Justice Network)가 지난해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말 기준으로 조세 피난처에 숨겨놓은 전 세계 수퍼리치들의 금융 자산 규모가 최소 21조 달러(2경4000조원)에서 최대 32조 달러(3경7000조원)에 이른다.

21조 달러는 미국(15조648억 달러)과 일본(5조8553억 달러)의 국내 총생산(GDP)를 합친 규모와 맞먹는다.

물론 추정한 자료이기는 하지만 역외경제(자국보다 규제가 덜한 해외 시장)에 숨겨진 자산 규모가 이처럼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처음이었다.

스위스, 버뮤다, 케이먼 군도, 마샬 군도 등과 같은 세계 각지의 조세 피난처에 자금을 운용하고 있는 전 세계 부자들을 대략 935만명으로 추정되며 전 세계 70억 인구의 0.13%가 세계 금융자산의 30%, 해외 은닉 자산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싸이 대통령'의 저자 김준환 유한대 교수는 "한국 재벌이나 슈퍼리치들이 해외로 빼돌린 890조원에 대해 연 수익률을 3%로 가정하고 30%의 소득세를 부과하면 대략 매년 8조원의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슈퍼리치만의 탈세, 그를 쫓는 포청천

최근 탈세 기법들은 세계화와 정보 기술 발달로 인해 과거와 달리 점차 지능화되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한국 부자들이 주로 애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탈세 사례들은 △부의 편법 대물림 △세금없는 고소득 전문직 △대포통장과 사이버 △변칙 국제거래 이용 대물림 △역외 탈세 창구 해외 금융 계좌 등 5개 유형이다.

국세청은 올해 들어서만 83건의 역외탈세를 조사해 탈루세액 4789억원을 추징했다. 2006년에는 1503억원에 불과했던 것이 2010년 5019억원, 2012년 8259억원을 기록했다.

대부분 조세 피난처를 통해 해외에 자산을 은닉하거나 자금을 우회 투자해 세금을 탈세하는 치밀한 수법이 동원됐다.

홍콩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우회 투자해 벌어들인 소득 모두에 대해 세금 신고를 누락하고 해외 금융계좌 신고 의무도 불이행했던 예를 들면 이렇다.

중견기업 사주인 A씨는 홍콩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홍콩의 상장법인(제조)에 우회 투자한 후 투자법인으로부터 35억원의 배당금을 지급받았다. 동시에 이 법인 주식 매각에 따른 105억원의 양도 차익을 얻었지만 세금 신고를 누락했다.

투자수익과 투자금은 다시 같은 페이퍼컴퍼니를 우회해 한국인을 전문으로 상대하는 홍콩 현지 은행의 프라이빗 뱅킹 해외펀드에 예치했다. 펀드에서 발생한 소득 69억원도 마찬가지로 탈세했다.

이뿐만 아니다. 펀드가 청산된 후에도 회수 자금을 또 다른 홍콩의 해외 비밀 계좌로 관리하면서 해외 금융계좌 신고 의무도 불이행했다.

결국 A씨는 조세당국으로부터 소득세 등 152억원을 추징 당했고 해외금융계좌 미신고에 따른 과태료를 받게 됐다.

변칙적인 국제거래, 해외 비자금·탈세 만연

외국에 금융계좌를 열기 위해선 해외 금융계좌를 신고해야 한다.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도는 지난 2011년 6월 전격 도입해 시중 중이다.

도입된 달에 이뤄진 해외 금융계좌 첫 신고결과 신고건수는 525건, 신고계좌 수는 5231개, 신고금액은 총 11조4800억원으로 조사됐다. 개인 신고율은 10.1%에 그쳤다.

점차 신고율이 오르는 듯 했지만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최근 들어 10명 중 2명꼴만 국세청에 신고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는 재벌기업 등이 조세회피처에 설립한 페어퍼컴퍼니를 통한 금융계좌는 대부분 신고되지 않았던 것으로 의심을 받고 있다.

지난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해외금융계좌 신고현황'을 보면 지난해 개인 신고대상자 1400명 가운데 신고자는 302명으로서 21.6%의 신고율에 불과했다.

특히 조세회피처에 개설한 계좌정보의 신고율은 더욱 낮을 것으로 판단된다. 대표적인 조세 피난처로는 버뮤다, 사모아, 쿡 군도, 바하마 군도, 마셜 제도, 케이만 군도, 브리티쉬 버진아일랜드, 모나코, 안도라, 라뷰안 등이 있다.

해외 금융계좌 신고를 이행치 않은 혐의자들의 탈세 유형은 주로 국내 법인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변칙적인 국제 거래를 통해 해외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국내 소득과 재산 등 불투명한 자금을 해외에 예치하는 교묘한 수법이 동원되고 있는 현실이다.

대재산가인 B씨는 선친이 친인척 명읠 명의신탁해 놓은 법인 C사 주식에 대한 상속세 신고를 누락했다. B씨는 그 명의신탁 주식의 매각자금 450억원을 국내의 유령회사를 통해 해외 직접 투자 방식으로 유출하고는 해당 자금을 해외 부동산 구입 등에 유용했다.

이와 별도로 해외 현지법인의 가공경비를 계상하는 방법으로 136억원의 해외 비자금을 조성해 홍콩 등에 개설한 사주 일가의 해외계좌 은닉도 적발된 사례도 있다.

김자봉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재벌가들의 탈세 혐의 조사가 현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해결의 단초가 될 수 있다"면서 최근 유럽에서 탈세를 방지키 위한 탈세방지개혁 가운데 주류, 유류, 역외탈세, 법인 실소유자 은닉관계 등 네가지 부문을 집중적으로 관리 조치하는 벤치마킹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우리도 이런 식의 타겟팅을 따라서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면서 "조용히, 신속히, 효과적인 플랜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재현 기자 (s89115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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