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만 하면 끝" 출연료 미지급 사태 왜?
'신의' '아들녀석들' 등 수십억 미지급
신생기획사-열악한 제작 현실 문제
지난 해 10월 종영한 드라마 '신의'는 100억 원 대의 제작비가 투입한 대작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지금은 출연 배우와 스태프 대부분이 출연료를 받지 못해 '출연료 미지급' 드라마가 됐다. 현재 미지급금만 10억 원 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죽하면 주인공 김희선은 미지급 출연료 1억 3600만 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내서 승소했다. 결국 '신의'의 출연료 및 임금 미지급 사건으로 인해 연출을 맡았던 김종학 PD가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올해 방영된 MBC 드라마 '아들녀석들'은 아예 외주제작사인 투비엔터프라이즈 대표가 7억 원 상당의 출연료를 미지급한 채 외국으로 도주했다. 이로 인해 이성재가 1억1천만 원, 나문희가 7천9백만 원, 서인국이 4천7백만 원 등을 못 받는 등 대다수의 출연자들이 출연료를 지급받지 못했다. 현재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이하 한연노)과 MBC가 출연료 미지급을 대비해 마련해 놓은 5억 원의 보증금액을 활용해 미지급 사태를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그렇지만 이번 경우는 보증금을 전부 사용해도 2억 원의 미지급금이 남게 된다.
지난 해 한연노는 KBS를 상대로 외주제작 업체의 촬영을 전면 보이콧하는 강수를 쓰기도 했으며 단체 소송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 동안 한연노 등 연예계 관련 노조들이 파업 등의 강수를 둘 때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던 연예기획사들도 출연료 미지급 사태에선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예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연매협)가 직접 한연노의 촬영 거부를 공개 지지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출연료 미지급은 조로 조단역 배우들을 중심으로 벌어졌다. 주연급 스타 배우들은 드라마 촬영을 앞두고 미리 출연료를 전액 지급받는 등의 방식으로 출연료 미지급 사태를 피해왔다. 그러다 보니 주연급 스타 배우들은 이미 출연료를 다 받은 상황에서 조․단역 배우들만 출연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관련 노조의 파업 역시 조․단역 배우들 중심으로 이뤄졌고 대중 영향력이 강한 주연급 스타 배우는 관망하는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이제는 주연급 스타 배우들도 출연료 미지급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김희선은 아예 소송을 제기했으며 이성재도 1억 원 넘는 출연료를 받지 못했다. 모두가 출연료 미지급을 받지 않는 방식으로 상향평준화가 이뤄지길 바랐지만 결과는 모두가 받지 못하는 하향평준화가 이뤄진 셈이다.
최근 한연노가 밝힌 출연료 미지급 드라마는 대략 다음과 같다. SBS 드라마 '신의' 6억4천만 원, '더 뮤지컬' 2억8천만 원, SBS 플러스 '그대를 사랑합니다' 2억9천만 원, KBS '국가가 부른다' 2억5천만 원, '도망자' 4억5천만 원, '프레지던트' 5억5천만 원, '정글피쉬2' 3천4백만 원, MBC '아들 녀석들' 6억8천만 원, '오자룡이 간다' 11억 원. 말 그대로 심각한 상황이다.
◆ 신생 기획사가 문제
한연노를 비롯한 관련 단체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신생기획사다. 지난 달 19일 MBC 드라마 '아들 녀석들'을 비롯한 방송 3사 출연료 미지급 사태와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연 한연노는 “그동안 출연료를 미지급한 외주제작사 및 검증 되지 않은 신생 외주제작사 드라마의 제작을 전면 보이콧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미 한연노는 방송국과의 협상 과정에서도 이 부분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아예 출연료 미지급으로 물의를 빛은 몇몇 외주제작사를 블랙리스트에 열려 두고 방송사에 해당 외주제작사에는 편성을 주지 말라는 주장을 거듭해왔다. 한 관계자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외주제작사들이 회사 이름과 대표이사만 바꿔 새로운 외주제작사인양 겉모습만 바꿔 또 편성을 받아 다시 출연료를 미납한 사례도 있다”면서 “아무리 어려워도 최대한 출연료를 해결하려하는 건실한 외주제작사들도 분명 있지만 습관처럼 출연료를 미지급하거나 무조건 대박만 꿈꾸고 드라마 외주 제작에 나섰다가 출연료를 미지급한 채 슬그머니 회사 문을 닫는 신생 외주제작사도 많다”고 지적했다.
◆열악한 현실, 관건은 판권
유독 드라마에서만 이런 상황이 자주 반복된다. 영화의 경우에도 종종 출연료와 임금이 미납되는 경우가 발생하지만 이런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 만큼 적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영화는 제작사가 만들고 드라마는 외주제작사가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 김기덕 감독은 영화 '뫼비우스'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자 몇몇 장면을 수정해 재심의를 신청했다. 당시 김기덕 감독은 재심의 신청 이유를 “연출자로서 아쉽지만 저를 믿고 연기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마음을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독립영화인 '뫼비우스'는 배우와 스태프가 무임금으로 영화 제작에 나선 뒤 수익이 나면 이를 분배한다. 따라서 국내 개봉을 못해 수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배우와 스태프에게 돌아갈 몫도 사라진다. 강한 자존심으로 국내 영화계에서 이단아로 불리기도 했던 김기덕 감독이지만 제작자로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영화가 수익을 내려면 극장이 중요하다. 얼마나 많은 극장에서 오랜 기간 상영되느냐에 따라 수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형 배급사와 극장 체인의 힘이 절대적이다. 또한 극장 체인을 갖고 있는 대기업 배급사들은 투자사를 겸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제작사들이 책임감을 갖는 이유는 극장에겐 상영권만을 줄 뿐 모든 판권은 제작사의 몫이기 때문이다. 행여 해외 판권에서 대박이 날 수도 있으며, 다운로드 시장 등 부가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반면 드라마는 방송사에 예속돼 있다. 드라마 역시 방송사에 방영권만을 넘겨주고 판권을 모두 가져갈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외주제작사는 방송사에서 일정 수준의 제작비를 받아서 외주제작한 뒤 드라마를 방송국에 납품하는 방식이다.
중국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들은 한국 드라마 시장이 중국보다 훨씬 뒤쳐져 있다고 얘기한다. 중국은 드라마 제작사가 먼저 드라마를 사전제작한 뒤 방송사들과 방영권 협상을 벌여 방영 방송사를 결정한다. 물론 모든 판권은 제작사의 몫이다. 출연료가 미지급되거나 생방송 수준으로 촉박하게 드라마가 제작되는 일도 없다.
출연료 미지급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한연노 등 관련 단체들은 방송사가 책임지라고 주장하고 방송사들은 이미 출연료를 외주제작사에 지급했으므로 2중 지급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만약 중국 등 해외처럼 방송사가 드라마 제작사로부터 방영권만 산 경우라면 방송사에 출연료 미지급을 해결하라는 주장은 억지일 수 있다. 그렇지만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방송사는 외주제작사에 외주를 발주한, 말 그대로 갑이다. 드라마가 예상외의 대박을 올릴 지라도 거기서 발생하는 예상외의 수익 역시 대부분 방송사의 몫이 된다.
영화계에선 한 편의 영화가 대박이 나면 제작사가 엄청난 수익을 올린다. 제작자 겸 감독인 강우석 감독이나 이준익 감독은 모두 1000만 대박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두 감독 모두 1000만 관객으로 번 수익을 이전 작품 손해액을 메우고 차기작 준비에 투자했다고 얘기했다.
반면 드라마는 아무리 대박이 나도 외주제작사는 그저 조금 더 수익을 올릴 뿐이다. 한류 드라마로 해외 판권 시장에서 대박이 날 지라도 이는 방송사의 잔치일 뿐이다. 이런 구조적인 한국 드라마 외주 시스템의 병폐가 거듭된 출연료 미지급 사태를 불러오고 있다.
결국 대안은 현재의 드라마 외주 제작 시스템의 대대적인 수정인데 이를 위해서는 방송사들이 먼저 ‘갑’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렇지만 드라마 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얘기한다. 결국 현재의 드라마 출연료 미지급 사태는 본질적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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