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대선불복 늪에 빠진 문재인의 운명
<기자수첩>추종자들의 '선거무효'가 달콤한 구호라도 대권주자로서 품격 잃어서야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대선 불복종’ 논란에 휩싸였다. 문 의원은 지난 9일 부산시당 상무위원회의에 참석해 국가정보원(국정원) 정치·대선 개입 사건을 두고 “대선이 대단히 불공정하게 치러졌다”며 “그 혜택을 박근혜 대통령이 받았고, 대통령 자신이 악용했다”고 말했다.
문 의원의 이러한 발언은 매우 이례적이다.
대선 직후, 일각의 문 의원 지지자들과 박지원·이석현·정청래·김현 의원 등이 부정선거 문제를 제기하며 ‘당선무효소송’을 통한 대선 재검표(수검표)를 외쳤을 때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소송을 제기할 상황도 아니라는 판단”이라며 “새로운 출발을 받아들여 달라”며 지지자들을 다독였던 문 의원이다. 이렇게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에 ‘역시 젠틀맨’이란 말까지 나왔었다.
국정원 사건 수사 진행 과정을 지켜보던 당내 일부에서 ‘박근혜정부의 정통성’을 저격하는 목소리가 나왔을 때도 문 의원은 동요하지 않았다. 지난달 16일 대선 당시 자신을 담당했던 ‘마크맨’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박 대통령이 (현 상황을) 책임져야 한다”면서도 “선거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며 대선 결과에 대해선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7월 11일 현재, ‘젠틀맨 문재인’은 달라진 모습이다.
같은 당 박범계 의원이 대선 당시 국정원 사건이 제대로 밝혀졌다는 전제를 상정한 뒤 “그랬다면 대한민국 대통령은 문재인”이라고 말하거나 임내현 의원이 ‘선거 원천 무효 투쟁’을 경고하는 등 현 정권의 정통성을 뒤흔드는데 대해 이를 말리거나 다독이는 모습은 없다. 오히려 그는 9일, 이 발언들을 받아 증폭시키는 ‘증폭제 역할’을 했다.
문 의원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뒤이어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과 민주당 박지원·전해철 의원이 발언 해석에 오해가 있다며 나섰지만, 세 인사의 말 또한 자세히 뜯어보면 결국 ‘선거 무효’ 주장으로 귀결된다.
세 인사는 결단코 무효 주장이 아니라고 했지만, 김 본부장은 해명 과정에서 박 대통령을 “권력기관의 불법으로 인해 수혜를 받은 당사자”라고 지칭했고, 박 의원은 “박 대통령이 수혜자니 그에 대한 책임론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 의원은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과정 불법행위에 대해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종합해보면, 박 대통령이 국정원이라는 권력기관의 불법적인 행동으로 표를 받아 당선됐다는 뜻으로 ‘박근혜정부 = 불법 정부’라는 말과 같아진다. 그런데 민주주의 사회에서 ‘불법 정부’란 있을 수 없다. 다시 정부를 세워야하는 노릇이 되는데 그 말은 결국 ‘선거 무효’를 주장하는 게 아닌가. 이것이 현 상황에서 ‘대선 불복종’과 무엇이 다른가.
물론 국정원의 정치·대선 개입 문제는 심각하게 다뤄야할 사안이며, 문 의원 측의 방점이 전혀 ‘선거 무효’ 또는 ‘대선 불복종’에 있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 고쳐 쓰지 말고, 오이밭에서 신발끈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 오해를 받고 싶지 않다면, 애초부터 의심 살 말들을 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아니면 해당 사건으로 문 의원이 현 박 대통령을 제치고 확실하게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는 ‘정확한 증거’를 내놓는 게 맞다. 그렇게 된다면 이는 ‘대선 불복종’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말은 뒤로 빠지고, 명확한 ‘선거 무효’가 된다.
그러나 이도저도 아니면서 대선이 끝난 지 6개월여가 지났음에도 정권을 이리저리 흔드는 것은 그야말로 정치 역사의 ‘좋지 않은 선례’를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향후 누가 승기를 잡을지 모르는 ‘정권 다툼’에서 이는 문 의원에게 독(毒)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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